교회 가까이에 파네라 빵집 (Panera Bread) 라는 곳에 새벽 기도 후에 커피를 마시러 자주 가는 편입니다. 사실 커피를 좋아하기보다 그곳에 꿀이 늘 놓여져 있는데 저는 달달한 맛을 좋아하기에 커피에 꿀과 우유를 듬뿍 넣어서 마십니다. 커피 종류 가운데 ‘라떼’라는 말이 이탈리아 말로 ‘우유’를 뜻하는데 그래서 나름대로 ‘꿀 라떼 커피’를 마시는 겁니다. 늘 일정량의 커피와 우유, 꿀을 넣어서 마시기에 마실 때 좋아하는 단맛의 당도가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똑같이 ‘꿀 라떼 커피’를 만들어 마셨는데 달지가 않는 것입니다. “똑같은 양의 꿀을 넣었는데 왜 안달지?” 라고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커피 컵을 보니 보통 때는 작은 종이컵으로 마셨는데 그날은 아무 생각없이 큰 종이컵에 커피를 담은 것입니다. 커피 컵이 크니까 단 맛이 약해진 것이지요.

그때 언젠가 읽었던 짧은 글이 떠올랐습니다. 한 스승이 한 젊은 제자를 두었는데 그 제자는 별 일 아닌데도 늘 불만과 불평을 하는 제자였습니다. 그러자 스승은 그 제자를 불러서 작은 물 컵에 큰 수저에 소금을 넣어 한 모금 마시게 하며 물 맛이 어떤지 말하라고 했습니다. 그 제자는 한 모금 마시자마자 인상을 찌뿌리고 신경질적으로 물을 내 뱉으며 “너무 짭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스승은 같은 큰 수저에 소금을 퍼서 큰 대야의 물에 넣고 저은 후에 그 물을 마시게 하고 “맛이 어떠냐? 짜지 않느냐는?”라고 질문했습니다. 그러자 제자는 “전혀 안 짭니다. 그저 시원합니다”라고 그 물을 마셨습니다. 그러자 스승은 제자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인생의 고통은 소금과 같다. 그런데 짠맛의 정도는 담는 그릇에 따라 달라진다. 네 속에 불평과 원망, 고통이 있다면 네 마음이 컵과 같이 작은 것이다. 작은 컵이 되지 말고 넓은 호수가 되어라”

우리가 살다보면 생각지 않은 짠 소금이 내 안에 들어옵니다. 우리로 불평하게 만고 화나게 하는 일들입니다. 그러한 짠 소금이 내게 들어오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문제는 그 짠 소금이 아니라 얼마나 내 마음이 넓느냐의 문제인 것입니다. 내 마음이 넓다면 아무리 짠 소금일지라도 아무런 고통을 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내 마음이 종기만하다면 그 고통은 견디지 못하게 짤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 속에 인간적으로 원하지 않는 고통의 소금들을 만나게 됩니다. 하지만 그 고통의 소금은 피해야 할 대상도, 싸워야 할 대상도 아닙니다. 오히려 품어야 할 대상입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사람들이요 하나님의 허락 속에 일어난 일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그 고통이 어떤 불평의 요소가 된다면 우리의 마음은 아직 작은 컵에 불과한 겁니다. 그 고통을 느끼지 않는 방법은 우리의 마음을 호수의 크기로 넓히는 일입니다. 그러면 짠 맛 대신 시원한 맛이 느껴지게 될 겁니다. 빌립보서 2:5절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너희 안에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으라” 예수님의 그 넓은 사랑의 마음으로 “모든 것을 덮어 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딥니다” 라는 넓은 마음의 신앙인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Category목회자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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