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갈라디아서 4:20-31

20 이제라도 내가 여러분을 만나 어조를 부드럽게 바꾸어서 말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여러분의 일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당황하고 있습니다.
21 율법 아래에 있기를 바라는 사람들이여, 나에게 말해 보십시오. 여러분은 율법이 말하는 것을 듣지 못합니까?
22 아브라함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한 사람은 여종에게서 태어나고 한 사람은 종이 아닌 본처에게서 태어났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23 여종에게서 난 아들은 육신을 따라 태어나고, 본처에게서 난 아들은 약속을 따라 태어났습니다.
24 이것은 비유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 두 여자는 두 가지 언약을 가리킵니다. 한 사람은 시내 산에서 나서 종이 될 사람을 낳은 하갈입니다.
25 ‘하갈’이라 하는 것은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 산을 뜻하는데, 지금의 예루살렘에 해당합니다. 지금의 예루살렘은 그 주민과 함께 종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26 그러나 하늘에 있는 예루살렘은 종이 아닌 여자이며, 우리의 어머니입니다.
27 성경에 기록하기를,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자여, 즐거워하여라. 해산의 고통을 모르는 여자여, 소리를 높여서 외쳐라. 홀로 사는 여자의 자녀가 남편을 둔 여자의 자녀보다 더 많을 것이다” 하였습니다.
28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은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들입니다.
29 그러나 그 때에 육신을 따라 난 사람이 성령을 따라 난 사람을 박해한 것과 같이, 지금도 그러합니다.
30 그런데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아라. 여종의 아들은 절대로, 종이 아닌 본처의 아들과 함께 유업을 받지 못할 것이다” 하였습니다.
31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여종의 자녀가 아니라 자유를 가진 여자의 자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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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이 잘못된 율법주의자들의 열심을 인해 그들에서 설득당하여 참된 십자가의 복음을 버리고 율법주의자들에게 개종되어 그들의 편이 되어 버린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을 책망한 후에 다시 은혜의 복음, 십자가의 복음을 바로 알고 돌이키라고 율법주의 아래에 들어간 성도들에게 권면하는 내용입니다.

그래서 20절을 보면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라도 내가 여러분을 만나 어조를 부드럽게 바꾸어서 말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여러분의 일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당황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좀 강하고 강경한 어조로 “어떻게 너희가 복음에서 그렇게 빨리 떠나갈 수 있느냐? 너희의 감격은 어디에 있느냐?” 라고 책망했지만 이제는 부드러운 어조로, 타이르고 이해 될 수 있도록 다시 한번 설명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두 아들 이스마엘과 이삭을 비교하여 율법과 복음의 차이를 설명합니다.

22-23절입니다. “아브라함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한 사람은 여종에게서 태어나고 한 사람은 종이 아닌 본처에게서 태어났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종에게서 난 아들은 육신을 따라 태어나고, 본처에게서 난 아들은 약속을 따라 태어났습니다” 우리가 잘 알듯이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의 몸 종이었던 하갈을 통해 인간적인 방법으로 얻은 아들이고 이삭은 아브라함의 본처인 사라를 통해 하나님의 약속으로 태어난 아들입니다.

두 여자와 두 아들은 두 가지 언약을 상징한다는 것입니다. 24절입니다. “이것은 비유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 두 여자는 두 가지 언약을 가리킵니다. 한 사람은 시내 산에서 나서 종이 될 사람을 낳은 하갈입니다” 하갈과 그를 통해 낳은 이스마엘은 율법의 종이 될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라와 그를 통해 낳은 아들 이삭은 하나님의 약속과 언약을 통해 낳은 약속의 자녀라는 것입니다.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은 율법을 따르려고 했습니다. 그런 모습을 21절에 “율법 아래 있기를 바라는 사람들이여” 라고 바울은 말합니다. 율법 아래, 율법을 따르려고 했던 하갈을 통해 태어난 이스마엘은 결국 어떻게 되었습니까? 30절입니다.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아라. 여종의 아들은 절대로, 종이 아닌 본처의 아들과 함께 유업을 받지 못할 것이다” 즉 아브라함의 유업, 즉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유업을 하나도 받지 못하고 쫓겨났습니다.

다시 말해서 율법을 지킴으로 하나님의 유업, 하나님의 나라, 의롭다 함, 구원을 받지 못함을 분명하게 알려 주는 것입니다. 율법을 지키고 사는 것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율법을 온전하게, 완전하게 지킬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율법을 주신 것은 구원을 위함이 아니라 죄인됨을 깨닫게 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고, 하나님의 언약을 붙들게 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하지만 율법의 행위를 지키면 내가 뭔가를 성취한 것 같고, 의로워 보이고, 다른 사람과 달라 보이고 뭔가 더 우월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교만한 마음, 만족하는 마음을 줍니다. 그것이 율법주의의 유혹이요 함정이 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인간적인 방법으로 하갈을 통해서 얻은 이스마엘을 통해서 유업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람의 생각이었습니다. 유대인들도 우리는 아브라함의 자손이기 때문에, 율법을 받은 백성들이기 때문에 당연히 구원받을 것이라는 인간적인 생각을 했습니다. 율법에서 말하는 제사를 드리고, 헌물을 드리고, 절기를 지키는 눈에 보이는 율법의 행위를 하면 구원을 받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런 모습이 바로 하갈을 통해 낳은 이스마엘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율법의 종으로는 하나님의 언약과 하늘의 유업을 받지 못하고 오직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기다림 가운데 사라를 통하여 인간적인 생각과 기준으로는 불가능한 나이에 태어난 이삭이 모든 유업을 차지하게 되었다는 것을 분명하게 끄집어냅니다.

이 비유의 목적은 한가지입니다. 율법을 따라 율법의 종이 되어 내 힘과 능력으로, 인간적인 노력과 행위로 하나님의 유업을 이어 받고자 했던 하갈과 이스마엘이 쫓겨났고 오직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언약을 믿음으로 낳은 이삭이 모든 유업을 받은 것의 의미를 깨달으라는 것입니다. 즉 내 힘과 노력으로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과 하늘의 유업을 받는 것이 아닌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에 담긴 하나님의 언약을 믿음으로 구원과 하늘의 유업을 받는 것임을 분명히 깨닫고 율법의 행위, 나 의 노력과 의로움을 추구하는 율법의 종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속에 자유함과 감사함과 감격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복음의 사람, 은혜의 사람으로 기쁨과 섬김의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복음의 진리, 복음에 담겨진 하나님의 언약을 모르는 사람들은 율법을 추구합니다. 율법의 행위로 구원을 받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사라가 아니라 자기 생각대로, 인간적인 지혜로 하갈과 동침함으로 아들 이스마엘을 얻었습니다. 이스마엘을 통하여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겠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던 것입니다.

지금 갈라디아 교회가 하는 일이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율법 아래에 있고자 하는 것은 하갈을 통해 아들을 얻으려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율법의 행위로 구원을 받으려고 하면 결국 쫒겨 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오늘 말씀을 통하여 기도해야 할 것은 복음의 진리를 바로 알고, 복음에 담겨져 있는 구원과 은혜를 깨달아 율법의 행위로 나의 의를 드러내는 율법의 종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임을 깨달아 감사와 감격, 은혜와 축복의 통로가 되는 자유한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Category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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