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요한복음 19:28-29

28 그 뒤에 예수께서는 모든 일이 이루어졌음을 아시고 성경 말씀을 이루시려고 “목마르다” 하고 말씀하셨다.
29 거기에 신 포도주가 가득 담긴 그릇이 있었는데, 사람들이 해면을 그 신 포도주에 듬뿍 적셔서 우슬초 대에다가 꿰어 예수의 입에 갖다 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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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 28절에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하신 다섯 번째 말씀은 “목 마르다” 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내가 목마르다.I am thirsty”(요한 19:28)입니다. 분명 예수님은 육체적으로 목이 마르셨을 것입니다. 밤새 심문을 받고 재판을 받았습니다. 사형 선고를 받고 매를 맞고 채찍에 맞으시며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까지 오르셨습니다. 손과 발에 못이 박히시고 십자가 위에 달리시기까지 먹지도 마시지도 않으셨습니다. 그동안 수많은 땀과 피를 쏟으셨습니다. 육체적 고통 중 가장 심한 게 바로 목마름의 고통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육신의 몸을 가지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위에서 상처보다 목이 타는 갈증이 있으셨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내가 목마르다 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하신 “내가 목마르다” 라고 하신 그 말씀은 단순히 당신 자신의 고통만을 호소하는 말씀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십자가 위에서“목마르다”라고 하신 말씀은 의도적으로 하신 말씀입니다. 즉 참으실 수 있지만 의도를 가지시고 하신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28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는 모든 일이 이루어졌음을 아시고 성경 말씀을 이루시려고 “목마르다” 하고 말씀하셨다”이미 성경에 예언되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하신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고통 받으실 것을 곳곳에 이미 예언하고 있습니다. 시편 22:15절에 “나의 입은 옹기처럼 말라 버렸고, 나의 혀는 입천장에 붙어 있으니, 주님께서 나를 완전히 매장되도록 내버려 두셨기 때문입니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시편 69:3 “내가 부르짖음으로 피곤하며 내 목이 마르며” 시편 69:21 “저희가 쓸개를 나의 식물로 주며 갈할 때에 초로 마시웠사오니”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목마르다고 할 때 로마 병정들이 조롱 삼아 준 신 포도주를 받아 마시는데 이것 역시 성경 예언의 성취입니다. 본문 29절에 “거기에 신 포도주가 가득 담긴 그릇이 있었는데, 사람들이 해면을 그 신 포도주에 듬뿍 적셔서, 우슬초 대에다가 꿰어 예수의 입에 갖다 대었다”

예수님께서 “목마르다”라고 하신 목마름의 고통은 우리들의 죄로 말미암아 당할 목마름을 대신한 것입니다. 여기서 목마름은 인간의 죄로 인한 고통, 저주, 하나님의 심판 등을 의미합니다. 즉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 해서 그 모든 고통, 저주, 심판을 대신 받으신 것입니다. 우리가 아직 경험하지 않았지만 죽음 후에 하나님의 죄의 심판으로 가게 되는 지옥의 형벌의 가장 큰 고통이 바로 목마름의 고통이라는 것을 누가복음 16장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거지 나사로와 부자가 죽은 후에 경험하는 지옥의 모습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부자가 지옥 불에서 고통당하며 아브라함에게 품에 있던 나사로를 보내어 손가락 끝에 물 한 방울을 찍어 내게 달라고 간구합니다. 그토록 목마름의 고통을 지옥에서 당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목마름의 고통은 단지 죽음 후에 경험하는 지옥의 형벌만이 아닌 이 땅에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모시지 않는 자들이 경험하며 삽니다. 세상을 살면서 마음에 채우지지 않는 목마름으로 삽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마음의 만족을 위해 무엇인가 열심히 구합니다. 그러나 어디서도, 무엇으로도 참 만족을 얻지 못합니다. 예수님이 만나 주신 사마리아 우물가의 여인을 보십시오. 남자가 자신의 목마름을 채워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다섯 번이나 남자를 갈아치워 봤지만 목마름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자는 다시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신 것입니다.

단지 손가락질 받았던 사마리아 여인만이 아니었습니다. 요한복음 3장을 보면 그 당시 국회의원이요 종교지도자였던 세상 사람들에게 인정과 존경, 모든 것을 다 가진 것 같았던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찾아왔었습니다. 누가복음 18장을 보면 부자 젊은 관원이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해야 구원을 받습니까?” 라는 질문을 합니다. 세상의 부요함이 있었지만 마음에 채워지지 않는 영적인 목마름이 있었던 것입니다. 세상에 가장 부자였고 천명의 처첩과 온갖 보화, 궁전과 그 외의 모든 것을 가졌던 솔로몬 역시 “헛되고 헛되다. 그것으로 만족함이 없다” 라고 고백하지 않습니까? 광야에서 목말라 하다가 겨우 물을 발견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나 기뻐하고 환호했겠습니까? 그런데 마셔보니 마실 수 없는, 목마름을 채울 수 없는 쓴물, 마라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목마르다” 라고 하신 말씀은 역설적으로 예수님만이 목마름을 채워주실 수 있으신 분이심을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한 나무를 가르키시고 그것을 물에 던지자 마실 수 있는 단물, 목을 축일 수 있는 마실 물이 되었습니다. 그 나무가 바로 예수님이 달리신 십자가로 받아 들일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요한복음 7:37-38절에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라고 선포하셨고 사마리아 여인에게 요한복음 4:13-14절에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라고 선포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를 목마르지 않게 하시려 대신 목마름을 받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바로 생수이십니다. 우리를 만족케 하시는 샘물이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위에서 “목마르다” 하신 말씀 속에 나는 지금 무엇에 목말라하며 살고 있는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여전히 세상의 욕심과, 나의 원함, 고집과 뜻을 이루기 위해 목말라하며 살아가는 자가 아닌 더욱 주님의 은혜와 사랑과 사명에 목말라하며 살아가는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사도 바울이 골로새서 1:24절에 고백한 고백과 같이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라는 갈망함으로 살아가는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Category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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