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갈라디아서 2:1-6

1 그 다음에 십사 년이 지라서 나는 바나바와 함께 디도를 데리고 다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습니다.
2 내가 거기에 올라간 것은 계시를 따른 것이었습니다. 나는 이방 사람들에게 전하는 복음을 그들에게 설명하고, 유명한 사람들에게는 따로 설명하였습니다. 그것은, 내가 달리고 있는 일이나 지금까지 달린 일이 헛되지 않게 하려고 한 것입니다.
3 나와 함께 있는 디도는 그리스 사람이지만, 할례를 강요받지 않았습니다.
4 몰래 들어온 거짓 신도들 때문에 할례를 강요받는 일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우리를 노예로 만들고자 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누리는 우리의 자유를 엿보려고 몰래 끼여든 자들입니다.
5 우리는 그들에게 잠시도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복음의 진리가 언제나 여러분과 함께 있게 하려고 한 것입니다.
6 그 유명하다는 사람들로부터 나는 아무런 제안도 받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어떤 사람들이든지, 나에게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겉모양으로 판단하지 않으십니다. 그 유명한 사람들은 나에게 아무런 제안을 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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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바로 알고 믿고, 그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고 있는지 매일 점검하며 살아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매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 앞에 서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우리는 다시 검증받아야 합니다. 인본주의 즉 사람, 내가 우선으로 살아가는 이 시대, 자본주의 즉 돈이 최고라고 믿고 돈이 우선되는 물질주의 속에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고 믿는 자로서 인본주의가 아닌 하나님께서 삶의 중심이 되는 신본주의, 십자가의 정신을 앞세워 십자가를 따르는 십자가 복음주의로 살아가고 있는지 철저히 검증받아야 됩니다.

바울은 자신이 그러한 복음을 믿고 살고 전하고 있는지를 검증 받기 위해서 예루살렘에 와서 사도들을 만납니다. 바리새인들처럼 율법주의나 사람을 의식하는 겉 신앙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에 합당한 믿음과 순종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본문 3-4절을 보십시오. “나와 함께 있는 디도는 그리스 사람이지만, 할례를 강요받지 않았습니다. 몰래 들어온 거짓 신도들 때문에 할례를 강요받는 일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우리를 노예로 만들고자 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누리는 우리의 자유를 엿보려고 몰래 끼여든 자들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방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만을 전하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와 주님으로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는다고 전했습니다. 이방인들은 바울이 전한 복음을 그대로 받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유대인 가운데는 이방인들에게 예수님의 십자가의 복음만이 아닌 할례도 받아야 구원을 받게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로 인해 갈등과 논쟁이 일어났습니다.

바울이 예루살렘에 다시 올라와 사도들을 만나려고 했던 이유가 바로 이 문제였습니다. 할례를 받아야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하는 유대인들의 주장을 바울은 4절에 “몰래 들어온 거짓 신도들 때문에 할례를 강요받는 일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우리를 노예로 만들고자 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누리는 우리의 자유를 엿보려고 몰래 끼여든 자들입니다”라고 규탄하며 고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3절에 바울은 자신이 헬라인, 즉 그리스인인 유대인들이 볼 때 이방인이었던 디도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을 때 억지로 할례를 받게 하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도 분명 구약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할례를 받으라고 하신 명령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할례를 받으라고 명하신 뜻은 할례를 받음으로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라는, 세상과 다른 삶을 살아야 할 사람이라는 것을 각인시켜 주기 위함이지 할례를 구원을 주는 방법으로 주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자신의 복음을 제출하고 검증받는 자리에 함께 갔던 헬라인 디도에게 할례를 받게 하지 않았습니다. 디도의 삶 속에 예수 그리스도를 분명히 믿는 믿음과 그의 삶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함으로 변화된 외적인 삶의 열매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외적인 형식보다도 내적인 본질, 즉 복음의 진리를 알고 믿고 살아가고 있느냐가 구원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5절에 사도 바울은 “우리는 그들에게 잠시도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복음의 진리가 언제나 여러분과 함께 있게 하려고 한 것입니다”라고 율법의 행위나 형식인 할례와 같은 것을 행해야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하는 소리에 조금도 굴복하지 않았다고 말하며 그것은 복음의 진리가 아니라고 분명하게 답변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에 나오는 사도 바울이 주장하는 것은 복음의 진리입니다.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십자가의 복음의 진리는 할례와 같은 형식을 통해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조금 더 넓혀 간다면 단지 주일에 교회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는 행위나, 세례나 침례를 받은 것이나, 교회에서 주는 직분이나 어떠한 봉사나 섬김 같은 선한 행위를 통해서가 아닌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 속에 담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죄 용서하심과 우리를 축복하시기 위해 우리의 삶을 맡기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주님 되심을 믿고 따르는 순종함의 믿음에 구원이 있다는 것입니다. 진정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바로 알고 믿을 때 받은 구원과 용서, 하나님의 자녀요 성도가 되었음을 아는 정체성으로 인해 우리의 삶 속에 진정 빛과 소금의 삶,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믿음의 삶, 섬기고 사랑하는 성령님의 충만함속에 성령의 열매와 예수님의 인격이 나오는 것임을 기억하고 복음의 진리 안에 거하시는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복음의 진리가 우리 안에 가득할 때 우리의 삶은 풍성해집니다. 담대해집니다. 모든 일에 자유하게 됩니다. 감사와 기쁨이 넘치고 그 복음을 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시간 기도할 때 복음의 진리가 확연하게 깨달을 수 있는 영적인 깨달음과 복음의 진리가 마음에 가득하여 세상의 유혹과 가치관에 휘둘리며 살아가는 자가 아닌 복음의 진리되신 예수님을 든든히 붙들고 모든 일 가운데 승리하며 복음의 사역자로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Category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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