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마태복음 2:1-8

1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셨다. 그런데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와서
2 말하였다.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에 계십니까?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습니다.”
3 헤롯 왕은 이 말을 듣고 당황하였고, 온 예루살렘 사람들도 그와 함께 당황하였다.
4 왕은 백성의 대제사장들과 율법 교사들을 다 모아 놓고서, 그리스도가 어디에서 태어나실지를 그들에게 물어 보았다.
5 그들이 왕에게 말하였다. “유대 베들레헴입니다. 예언자가 이렇게 기록하여 놓았습니다.
6 ‘너 유대 땅에 있는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가운데서 아주 작지가 않다. 너에게서 통치자가 나올 것이니, 그가 내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릴 것이다.'”
7 그 때에 헤롯은 그 박사들을 가만히 불러서, 별이 나타난 때를 캐어묻고,
8 그들을 베들레헴으로 보내며 말하였다. “가서, 그 아기를 샅샅이 찾아보시오. 찾거든, 나에게 알려 주시오.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할 생각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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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탄생하실 때 예수님의 탄생의 소식을 듣고 기뻐하며 찾아가 경배하고 함께 했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멀리서 동방의 박사들이 메시야로 태어나신 예수님을 별을 보고 따라와 경배하고 귀한 예물을 드리며 예수님을 맞이했습니다. 밤에 들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이 천사들이 전하여 준 예수님의 탄생의 소식을 듣고 들판에 양들을 놔두고 달려가 마굿간에서 태어나 구유에 뉘이신 예수님을 경배하고 맞이했습니다.

더 나아가 요셉과 마리아는 하나님의 뜻과 명령을 따라 성령으로 잉태한 아이를 임신한 중에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 들였고 예수를 낳기까지 마리아와 잠자리를 하지 않고 예수님의 탄생을 준비하고 베들레헴에 내려가서 아기를 낳고 하나님의 명령대로 그 이름을 예수라고 했습니다. 누가복음 2장을 보면 시므온과 안나가 메시야로 오실 예수님을 볼 것을 믿고 태어나신 예수님을 기쁨으로 맞이했습니다.

이 땅에 오신 구세주 메시야 예수님을 기다림으로, 믿음으로, 순종으로, 기쁨으로 맞이하고 경배한 자들이 축복의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예언과 약속의 말씀대로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동정녀의 몸을 빌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제는 초림이 아닌 재림의 예언과 약속의 말씀을 우리가 기다림으로, 믿음으로, 순종으로, 기쁨으로 맞이하는 축복의 사람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님의 탄생을 기다리며 기뻐하며 맞이한 사람들이 있었음과 동시에 예수님의 탄생을 기다리지도 않고, 관심도 없고, 만왕의 왕이요 만유의 주님이시며, 메시야 구원자이신 예수님이 탄생하셨음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분을 만날 수 있는 축복과 특권을 내 던져 버린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바로 헤롯왕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의 탄생을 알리는 밝은 빛을 멀리 동방에서부터 보고 찾아온 동방의 박사들이 예루살렘 성에 도착하여 헤롯 왕을 찾아가 질문합니다. 1-2절입니다.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셨다. 그런데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와서 말하였다.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에 계십니까?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습니다”동방박사들이 말한 ‘유대인의 왕’이란 구약 성경에 약속된 메시야,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실 구원자, 우리의 모든 삶의 문제에 답이 되시고 하나님의 집으로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되시는 생명의 주님이신 메시야 구원자라는 의미입니다.

그 당시 로마제국으로부터 권력을 받아 이스라엘의 한 부분을 대리 정치하는 왕으로 있던 헤롯 왕은 ‘유대인의 왕’이라는 말의 의미를 바로 깨닫지 못했습니다. ‘유대인의 왕으로 태어난 이” 를 바로 알았다면 그도 역시 기뻐하며 동방박사들과 함께 성탄의 자리를 찾아 나섰을 것입니다. 하지만 헤롯 왕은 태어나신 유대인의 왕이라는 말의 의미를 자신이 그동안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해서 차지한 왕의 자리를 위협하는 정치적 위협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렇기에 3절을 보면 “헤롯 왕은 이 말을 듣고 당황하였고, 온 예루살렘 사람들도 그와 함께 당황하였다” 라고 되어 있습니다. 메시야 구원자 하나님이 태어나신 일은, 이 땅에 인간의 몸을 입고 어린 아이로 태어나게 된 일은 놀랄입니다. 기뻐할 일입니다. 반기고 환영하고 영접해야 할 일입니다. 그런데 헤롯 왕은 당황했습니다. 정확한 표현을 한다면 기겁한 것입니다. 두려워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바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제대로 들을 때, 예수님의 복음의 메시지를 들을 때 당황해 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모든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이라는 진리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은 당황합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생명을 주신 생명의 주님이시오 당신의 삶의 주인이시라는 말을 들으면 당황합니다. 지금까지 내 인생이 내 것이라고 생각하고 내가 내 삶의 주인이라고 생각하며 하나님의 뜻과 명령이 아닌 내 뜻, 내 원함, 내 생각, 내 감정대로 살아온 것이 죄라는 것을 들으면 당황합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기겁하고 두려워합니다. 그것이 진리인데 거부하고 못 들은척 합니다.

분명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복된 소식이요 기쁨의 소식이지만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이 복된 소식이요 기쁨의 소식으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바로 아는 영적인 지식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헤롯 왕과 같이 당황해 합니다. 불쾌해 합니다. 불안해합니다.

그러할 때 예수님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겸손함과 결단함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내가 알지 못했던 영적인 지식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들었을 때 나의 죄성은 거부합니다. 당황해합니다. 불쾌해 합니다. 그러한 불편한 마음이 성령님께서 말씀으로 찌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4:12절에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예레미야 23:29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 말이 불같지 아니하냐 반석을 쳐서 부스러뜨리는 방망이 같지 아니하냐” 라고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

나의 마음을 찌르는, 나의 잘못된 생각과 마음과 행동을 불편하게 하고, 당황하게 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당황스럽지만 그러할 때 거부하지 마시고 인정하시고, 회개하시고, 그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들이는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러할 때 용서와, 회복과 성장과 하나님의 축복으로 인해 기뻐하고 기뻐하는 신앙으로 서게 됩니다.

동방의 박사들을 보십시오. 10절을 보면 “그들은 그 별을 보고, 무척이나 크게 기뻐하였다” 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의 탄생하심과 마굿간 말구유에 뉘인 예수님을 보았을 때 크게 기뻐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귀한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드리며 엎드려 경배했습니다. 태어나실 예수님이 구원자이신 메시야 하나님이심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날, 예수님께서 재림하는 날에도 두 종류의 사람들로 나뉘어질 것입니다. 영광스러운 예수님을 다시 만날 때 기뻐하고 기뻐하는 소수의 성도들이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을 믿고 기다리며 준비하며 살았던 성도들입니다. 주님께 받을 상을 기대하며 하늘에 보화를 쌓고 믿음으로 살았던 성도들입니다. 그들을 향해 예수님께서는 기쁘게 안아주시고 영광의 면류관, 생명의 면류관, 썩지 않을 면류관과 하늘의 상을 베푸시며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하늘나라의 잔치에 참여하라” 라고 칭찬하실 것입니다.

반면에 마지막 날, 예수님께서 재림하는 날, 영광스러운 예수님을 다시 만날 때 당황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는 말이 정말이었어. 이제 어떻하냐?” 라며 두려움에 머리를 감싸고 울부짖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이 땅에서 자신만을 위해, 이 세상이 다 인줄 알고 죄 가운데 살았던 사람.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죽은 믿음으로 껍데기 신앙으로 살았던 사람. 저와 여러분들은 헤롯과 같은 당황하는 자가 아닌 동방박사들과 같이 주님의 오심을 크게 기뻐함으로 맞이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의 탄생의 소식에 헤롯 왕은 기뻐함과 영접함이 아닌 당황했고 불안해했고 결국 인간적인 방법, 사단의 도구가 되어 악한 살인을 벌입니다. 기뻐하는 마음, 감사하는 마음, 경배하는 마음, 드리는 마음으로 성탄을 맞이해야 하는 데 헤롯은 살육의 칼을 가지고 성탄을 맞이하는 악한 자가 되었습니다. 16절입니다. “헤롯은 박사들에게 속은 것을 알고, 몹시 노하였다. 그는 사람을 보내어, 그 박사들에게 알아 본 때를 기준으로, 베들레헴과 그 가까운 온 지역에 사는, 두 살짜리로부터 그 아래의 사내아이를 모조리 죽였다”

태어난 메시야를 찾으러 온 동방박사들에게 찾으면 자신에게 꼭 알려 달라고 부탁을 하고 보냈었습니다. 어디에 있는 곳을 알면 당장 달려가 죽이려는 마음이었지만 동방박사들에게는 8절에 “그들을 베들레헴으로 보내며 말하였다. “가서, 그 아기를 샅샅이 찾아보시오. 찾거든, 나에게 알려 주시오.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할 생각이오” 라고 말합니다. 입술로는 자신도 찾아가 경배하겠다고 말하지만 속 마음에는 죽이고자 하는 마음으로 가득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헤롯의 마음과 계략을 알았기에 탄생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돌아가는 동방박사들에게 헤롯에게 가지 말고 돌아가라고 하셔서 그들은 먼길을 돌아 자신들의 나라로 돌아갑니다. 후에 이 사실을 안 헤롯 왕은 16절에 박사들에게 속은 것을 알고, 몹시 노하여 자신의 악한 마음 그대로 아무 죄없는 베들레헴과 그 지경의 아이들을 모두 죽이는 잔혹한 살인을 벌입니다.

이 헤롯의 모습이 2000년 전 과거의 한 사람의 모습이 아닌 이 시대의 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아닙니까? 여전히 내가 왕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뜻을 깨닫게 하셔도 거부하면서, 겉으로는 자신도 경배하고, 화목하고, 잘되기를 바란다는 거짓을 말하며 내 뜻대로 되지 않으면 결국 인간적인 분노함을 제어하지 못하고 미움과 원망과 비난, 살인을 저지르는 모습을 보이며 살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헤롯 왕은 성탄의 주님을 맞이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알지도, 믿지도 않는 자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탄의 주님을 맞이하지 않은 더 놀라운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바로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이었습니다. 동방박사들이 헤롯 왕에게 유대인으로 태어난 왕이 어디 있느냐는 질문에 헤롯왕은 메시야에 대해, 구원자에 대해, 어디서 태어날지 전혀 알지 못하기에 당황했고 성경에 가장 박식하고 이 일에 대해 가장 잘 안다는 자들을 불러와 물어보았습니다. 4절입니다. “왕은 백성의 대제사장들과 율법 교사들을 다 모아 놓고서, 그리스도가 어디에서 태어나실지를 그들에게 물어 보았다”

그러자 그들은 너무나 분명하게 그 답을 알고 있었습니다. 5절입니다. “그들이 왕에게 말하였다. “유대 베들레헴입니다. 예언자가 이렇게 기록하여 놓았습니다” 그들은 정확하게 미가서에서 예언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베들레헴에서 메시야가 태어날 것을 대답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안다고 하고, 믿는다고 하고, 예배한다고 하고, 백성들에게 가르치는 자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구원자요 메시야로 태어나신 예수님의 자리에 그들은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탄생의 소식을 동방의 박사들로부터 들었고 그들이 알지 못한 장소까지 알고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베들레헴까지의 거리는 단 9km 떨어진 가까운 거리였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하나님께서 그렇게 예언해 주신 메시야를 기다리는 마음도 없었습니다. 반기는 마음도 없었습니다. 자신들의 권력과 지위, 명예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죽은 신앙의 사람들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진정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대로 구원자, 메시야를 기다리는 신앙이었다면 동방박사들의 메시야 탄생의 소식을 들었다면 먼저 발벗고 뛰어 나가지 않았겠습니까? 우리는 저들이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라고 손가락질 하지만 이 시대에도 똑같은 유형의 신앙으로 교회를 차지하고 있는 성도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머리로는 알지만 베들레헴으로 달려가는 발이 없고, 예수님 앞에 진정 엎드리며 드리는 손이 없이 말로 떠드는 예수님을 기뻐하지도, 환영하지도, 순종하지 않는 모습으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안다는 것은 중요합니다. 행동으로 옮기기 위한 앎은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성경을 배워야 합니다. 하지만 그 앎이, 지식이 하나님의 뜻과 명령을 행하는 손과 발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진정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와 주님, 메시야로 믿는 참된 지식이요 믿음인 것입니다.

성경에서 가장 슬픈 구절 중의 하나가 요한복음 1:11절일 것입니다. “그가 자기 땅에 오셨으나, 그의 백성은 그를 맞아들이지 않았다” 예수님을 맞아 들이지 않는 사람들은 결국 멸망을 당했습니다. 헤롯 왕, 대 제사장, 서기관들, 바리새인들. 그러나 이 구절이 11절에서 끝나지 않고 12절로 연결됩니다. “그러나 그를 맞아들인 사람들, 곧 그 이름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주셨다”

진정 예수님의 탄생을 기뻐하는 자들은 바로 예수님을 구세주와 주님으로 맞아 들인 사람입니다. 마음에 영접한 사람입니다. 엎드려 절하며 동방박사가 드린 황금, 유향, 몰약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내 삶의 왕으로, 제사장이요 인도자로, 부활의 주로 믿고 순종하며 따라가는 자들입니다.

이 시간 기도할 때 먼저는 내가 하나님을, 예수님을 거부하는 자가 아닌 영접하는 자, 기쁨과 감사함으로 맞이하는 자가 되기를 기도하기 원합니다. 나의 잘못과 죄를 찌르는 진리의 말씀을 받고 들을 때 당황하고 거부하고 반항하는 자가 아닌 인정하고, 회개하고, 받아들여 따르고 순종하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기도하기 원합니다. 이번 성탄만이 아닌 이제는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이 시대의 동방박사들과 같이 하늘을 바라보며, 말씀의 빛, 성령의 빛의 인도하심을 따라 믿음으로, 기쁨으로, 감사함으로 살아가는 자가 되어 마지막 날에 칭찬과 하늘의 영원한 상을 받는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Category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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