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고린도전서 13:11

11 내가 어릴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았습니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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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의 장이라고 잘 알고 있는 고린도전서 13장의 말씀은 어느 교회보다 많은 은사를 받은 성도들이 있었지만 분열과 다툼의 문제로 가득한 고린도 교회를 회복시키기 위해서 보낸 편지 가운데 있는 말씀입니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사도 바울로부터 복음을 받고 말씀을 공부했고, 말씀에 능통하다고 하던 아볼로가 와서 가르쳤고, 예수님의 수제자였던 베드로에게까지 와서 가르침을 받았던 교회였습니다. 방언, 병 고침, 예언, 행정, 가르침, 영분별, 기적까지 행하는 은사를 받은 성도들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나는 바울파다, 베드로 파다, 아볼로 파다, 나는 그리스도 파라 라고 하며 서로 다투고 있었습니다. 교만함으로 서로를 비난하고 미워하고 있었습니다. 더 나아가 성도들 간에 세상 법정에 고소하며 싸우고 있었습니다. 우상에 드려진 고기를 먹을 수 있다 없다를 가지고 먹는 성도들은 먹지 못하는 성도들에게 믿음이 없다고 비웃었고 고기를 먹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성도들은 먹는 성도들을 비난하고 정죄했습니다.

그러한 다툼과 싸움, 하나되지 못하고 깨어진 관계 속에 있는 고린도 교회 성도들을 향해 사도 바울은 “너희는 육에 속한 자들이다. 영적으로 어린아이다” 라고 책망합니다. 영적으로 성숙하고 성장하지 못한 어린아이들이기 때문에 너희 가운데 시기와 싸움이 있는 것이다 라고 알려 줍니다. 그리고 영적으로 성장한 사람의 모습, 성도가 가장 추구해야 할 가장 좋은 은사가 바로 사랑이라는 것임을 결론적으로 알려줍니다. 사랑이 하나됨을 이루는 해결 방법이고 그 사랑으로 행하지 않는 모든 은사와 섬김, 모든 것은 아무런 유익이 되지 않음을 고린도전서 편지를 통해서 알려 준 것입니다.

사도 바울 자신도 영적으로 어린아이와 같은 때가 있었다고 말합니다. 그것이 11절의 말씀입니다. “내가 어릴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았습니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습니다” 어린아이와 같이 말하고, 어린아이와 같이 깨닫고, 어린아이처럼 생각했었던 때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죄 용서함을 받고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성도가 되지만 그렇다고 한 순간에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여전히 세상에 살던 모습대로, 나 중심의 죄성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배워 나가고 그 뜻을 순종하는 삶을 통해 점점 어린아이에서 영적인 아버지와 어머니로 성숙해 가야 하는 것입니다.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은 것이 당연합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어린아이의 모습을 버리고 영적으로 성숙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먼저 본문에서 어릴 때, 어린아이와 같이 말하고, 깨닫고, 생각하는 것은 어떤 모습입니까? 어린아이는 특징은 상대를 배려하지 않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 내 뜻, 내 욕심 버리지 못합니다. 내 뜻대로 되지 않으면 견디지 못합니다. 가게에서 원하는 것 사주지 않으면 울고, 소리치고, 드러눕고 땡깡 피우는 것 어린아이가 하는 모습이 아닙니까? 자기 조절을 못합니다. 자신이 하는 말과 행동이 얼마나 창피한 것을 모릅니다.

내게 조금이라도 손해 보면 견디지 못합니다. 웁니다. 소리 지릅니다. 어린아이일수록 편가르기를 좋아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 내 말을 들어 주는 사람하고만 놉니다. 어린아이의 특징은 자신이 항상 옳다고 생각합니다. 자기 생각, 자기 판단, 자기 주장이 가장 옳고 맞고, 가장 좋은 것인 줄 압니다. 다른 사람의 조언과 생각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자기가 가장 똑똑하고 지혜롭고 자신이 세상에서 최고인줄 압니다. 그렇기에 늘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비난하고, 지적하고, “이렇게 했어야 한다. 저렇게 했어야 한다. 내가 맞고, 나는 당했고, 저 사람이 잘못했다” 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어린아이의 특징은 섬김을 받으려고만 합니다. 희생하고 손해 보고 양보함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어린아이의 말과 생각과 깨달음을 버릴 수 있습니까? 어떻게 어린아이에서 성장하고 성숙할 수 있습니까? 히브리서 5:13 “대저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자요” 하나님의 말씀을 경험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뜻을 경험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나의 창피한 어린아이의 모습을 보고 버려야 합니다. 우리가 본받고 따라야 할 예수님의 성품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설교 말씀을 듣고 성경을 많이 읽고 공부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쓰여진 말씀이 살아서 내게 들려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부딪혀 오고, 그 말씀대로 믿음으로 순종함하는 나의 죄성을 이기고, 이기심과 욕심, 나의 뜻을 내려놓는 말씀대로 행함의 훈련속에 새로워지고, 자라나고, 영적으로 성숙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나의 미련하고 이기적인 어린아이의 모습을 거울처럼 보아야 합니다. 나의 주관적인 생각과 편협적이고 온전하지 못한 생각과 기준으로 내가 가장 옳다고 생각하고, 내가 하는 일이 의롭고 정당하다고 생각하고, 사랑없이 내가 하는 일이 그 사람을 바로 잡고, 교회를 위한다고 생각하는 교만함과 착각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내가 하는 말과 행동이 얼마나 교만하고 날카롭고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와 아픔, 고통을 주며 하나됨을 깨트리는 죄인가를 말씀을 통해, 성령님의 조명 가운데 깨달아야 돌이키고 그러한 어린아이의 미련함을 버릴 수 있습니다.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음을 버리고 영적으로 성숙된 사람은 어떠한 사람입니까? 다른 것이 아닌 사랑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성품인 사랑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그것이 고린도전서 13장에서 알려 주는 결론입니다. 4절부터 7절까지 “사랑은 오래 참고, 친절합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으며, 뽐내지 않으며, 교만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무례하지 않으며, 자기의 이익을 구하지 않으며, 성을 내지 않으며, 원한을 품지 않습니다. 사랑은 불의를 기뻐하지 않으며, 진리와 함께 기뻐합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 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딥니다”

이 사랑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입니다. 우리가 목표로 두어야 할 삶의 모습입니다. 성숙한 사람이 오래 참습니다. 성숙하지 않은 어린아이와 같은 사람은 자신에게 조금만 손해가 나고, 감정이나 자존심을 건드리면 참지 못합니다. 성숙한 사람이 친절합니다. 비록 나를 어렵게 하고 기분 상하게 한 사람에게도 예의를 갖춥니다. 어쩔 수 없이, 앙심을 품으면서 겉으로 안그런 척 하면서 하는 것이 아닌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모든 것을 품어 주는 마음으로 친절함을 베푸는 것입니다.

성숙한 사람은 누가 잘해서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으면 함께 기뻐하며 칭찬해 주고 박수쳐 줍니다. 반면에 어린아이와 같은 육신의 사람들은 시기합니다. 어떻게 하든 끌어 내리려고 합니다. 어린아이와 같이 미숙한 육신의 사람은 어떻게 하든 자신이 칭찬을 받으려고 하고, 자신이 한 것처럼 뽐냅니다. 다른 사람이 받아야 할 인정과 칭찬도 자신의 것으로 돌리려고 합니다. 성숙한 사람은 자기의 이익이 아닌 다른 사람의 이익을 구합니다. 그들이 잘되는 것을 기뻐합니다. 비록 상대방이 잘못하고 실수해도, 더 나아가 악의를 품고 대해도 성을 내거나 원한을 품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덮어주며, 믿어주며, 모든 것을 바라며 견디어 내는 사람이 성숙한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그것이 사랑입니다.

자세히 보면 나이는 들었는데, 성경을 많이 알고, 직분도 받았는데, 신앙생활도 오래했다고 하는데 하는 말이나, 어떤 일이 생겼을 때 갖는 생각이나 행동을 보면 부끄럽기 짝이 없는 어린아이의 모습을 보이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바울은 본명이 사울입니다. ‘큰 자’ 라는 뜻입니다. 세상적으로 사울은 큰자가 되었습니다. 최고의 학문을 배웠고 학력을 가졌습니다. 스스로를 이렇게 자랑했습니다. 빌립보서 3:5절에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인간적으로, 세상적으로 보면 큰 자였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향한 열심과 율법으로는 흠이 없는 자라고 스스로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러했을 때 그가 했던 행동들은 무엇이었습니까? 믿는 성도들을 멸시하고, 핍박하고, 정죄하며 잡아 들여 죽이는 일이었습니다. 사랑이 아닌 미움과 자기 의에 사로 잡혀 살아가는 악한 자였습니다. 그런데 자신은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산 것입니다. 그런데 다메섹 성으로 가는 길에 예수님께서 만나 주십니다. 말씀을 통해서, 복음을 통해서 자신이 하나님을 핍박하는 엄청난 죄를 짓고 살아가고 있었음을 깨닫고 완전히 무너집니다.

그것이 말씀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것이 참된 축복인 것입니다. 그 회개함속에 말씀으로 회복되어 복음의 사도로, 사랑의 사도로 모든 것을 바라며, 믿으며 견디는 삶을 살아갑니다. 사울이라는 ‘큰 자’ 라는 이름에서 ‘작은 자’ 라는 바울로 이름을 바꾸고 살아갑니다. 세상에서 작은 자가 되고 천국에서 큰 자가 되는 사랑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복음으로, 십자가의 사랑으로 하나님과 원수된 관계를 사랑의 관계로 회복시키며, 서로 원수되어 있는 유대인과 이방인들을 하나되게 하는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고, 가르쳐서 하나됨을 이루게 합니다. 참된 성숙은 그 놀라운 십자가의 사랑을 받고 깨달은 사람입니다. 진정으로 십자가의 사랑으로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사랑의 사람으로 성숙하게 됩니다. 어린아이의 말과 생각과 행동을 버립니다. 무례함, 교만함, 시기와 미움을 버립니다. 자신의 자존심을 버립니다. 자신의 뜻과 욕심, 자기 이익을 버립니다. 원한을 버립니다. 반면에 오래 참음의 사랑, 친절함의 사랑, 허물을 덮어주는 사랑, 모든 것을 덮어 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는 사랑을 합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이러한 성숙한 사랑의 사람으로 서서 사랑의 삶을 통해 천국에 큰 자가 되고 하늘의 상을 받는 하나 됨을 이루며 영적인 열매를 많이 맺어가는 삶을 살아가기 원합니다.

Category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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