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하박국 3:16-19

16 그 소리를 듣고 나의 창자가 뒤틀린다. 그 소리에 나의 입술이 떨린다. 나의 뼈가 속에서부터 썩어 들어간다. 나의 다리가 후들거린다. 그러나 나는, 우리를 침략한 백성이 재난당할 날을 참고 기다리겠다.
17 무화과나무에 과일이 없고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을지라도, 올리브 나무에서 딸 것이 없고 밭에서 거두어들일 것이 없을지라도, 우리에 양이 없고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18 나는 주님 안에서 즐거워하련다.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 안에서 기뻐하련다.
19 주 하나님은 나의 힘이시다. 나의 발을 사슴의 발과 같게 하셔서, 산등성이를 마구 치닫게 하신다.이 노래는 음악 지휘자를 따라서, 수금에 맞추어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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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은 본문은 하박국 선지자의 마지막 기도요 찬양입니다. 조국인 남 유다가 하나님을 거역하고 우상의 죄를 회개하지 않는 완고함으로 바벨론에 의해 멸망을 당함을 봅니다. 나라가 망하고, 하나님의 성전은 완전히 불타 폐허가 되고, 성벽은 무너지고, 백성들은 포로가 되어 끌려 갑니다. 절망과 폐허, 낙망의 상황입니다.

그러할 때 하박국이 기도한 기도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구하는 기도였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구원하심과 회복임을 알기에 회복과 부흥을 간구하는 기도였습니다. 그것이 2절의 기도였습니다. “주님, 내가 주님의 명성을 듣습니다. 주님, 주님께서 하신 일을 보고 놀랍니다. 주님의 일을 우리 시대에도 새롭게 하여 주십시오. 우리 시대에도 알려 주십시오. 진노하시더라도, 잊지 마시고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개역성경으로는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진정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사람은 힘들고 어려운 문제와 고난과 고통, 그리고 소망이 보이지 않는 절망의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바라며 회복과 부흥을 위한 기도를 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회복과 부흥을 주시기를 원하시는 분이심을 알고 믿기에 기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박국은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능력을 알고 믿었습니다. 그렇기에 3-15절에 하나님께서 이집트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신 그 놀라운 기적과 능력, 여호수아를 통하여 가나안 민족을 물리치고 승리케 하신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들을 기억하고 나열하면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기도를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하나님의 긍휼과 회복을 구하는 기도, 하나님의 능력을 알고 구원을 위해 기도하는 성도와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 하박국이 하나님을 알고 믿기에 기도한 기도의 내용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기쁨과 찬양의 기도였습니다.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구절입니다. 17-18절입니다. “무화과나무에 과일이 없고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을지라도, 올리브 나무에서 딸 것이 없고 밭에서 거두어들일 것이 없을지라도, 우리에 양이 없고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주님 안에서 즐거워하련다.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 안에서 기뻐하련다”

하박국 선지자는 “나는 주님 안에서 즐거워하련다.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 안에서 기뻐하련다”라고 외칩니다. “즐거워하련다. 기뻐하련다” 라고 외치고 있는 상황이 어떠한 상황입니까? 16절을 보십시오. “그 소리를 듣고 나의 창자가 뒤틀린다. 그 소리에 나의 입술이 떨린다. 나의 뼈가 속에서부터 썩어 들어간다. 나의 다리가 후들거린다. 그러나 나는 우리를 침략한 백성이 재난당할 날을 참고 기다리겠다”

지금 하박국이 서 있는 상황은 그 당시 가장 강대국이었던 바벨론 나라가 이스라엘을 쳐들어 전쟁에 패했습니다. 나라를 빼앗겼습니다. 많은 백성들이 죽임을 당하고 소유를 빼앗겼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포로로 잡혀 갔습니다. 식민지가 되었습니다. 전쟁으로 인해 황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나라를 빼앗긴 고통으로 인하여 나의 창자가 뒤틀리고 나의 입술이 떨리고 뼈가 속에서부터 썩어 들어가고 다리가 후들거립니다” 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하박국은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나는 즐거워하련다. 나는 기뻐하련다” 라고 결단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18절 “나는 주님 안에서 즐거워하련다.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 안에서 기뻐하련다”도저히 감사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감사하고 기뻐하고 즐거워하겠다는 것입니다. 말이 그렇지 환난 속에서 즐거워하고 기뻐한다는 것은 어려운 것입니다. 본성을 거스리는 일입니다. 감정을 거스리는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진정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믿음의 사람들은 없을지라도 찬양했습니다. 상황이 감사할 상황이 아닐지라도 찬양했습니다. 욥이 그러지 않았습니까? 한순간에 모든 소유를 잃었습니다. 사랑하는 자녀를 잃었습니다. 그런데 욥기 1:20-21 “이 때에 욥은 일어나 슬퍼하며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민 다음에 머리를 땅에 대고 엎드려 경배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모태에서 빈손으로 태어났으니 죽을 때에도 빈손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주신 분도 주님이시오 가져가신 분도 주님이시니 주님의 이름을 찬양할 뿐입니다”욥은 슬퍼했습니다. 옷을 찢었습니다. 아픔으로 인해 머리를 밀었습니다. 그것이 자연스러운 행동입니다. 힘들 때 울고, 아플 때 슬퍼하는 것 정상입니다.

그러나 믿는 자는, 신앙의 사람은 그 슬픔의 자리에 머물러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예배의 자리로, 찬양과 감사의 자리로 나가는 사람입니다. 엎드려 경배하며 믿음으로 선포하는 사람입니다. “주신 분도 주님이시오 가져 가신 분도 주님이시니 주님의 이름을 찬양할 뿐입니다”그렇지 않습니까? 우리가 이 땅에 올 때 가지고 온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맨손이었습니다. 지금까지 내가 가지고 있는 것 누가 주신 것입니까? 주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참된 믿음이란 어떤 고난과 역경이 다가와도, 가진 것이 사라지고 가진 것이 없을지라도 감사하는 모습입니다.

그래서 하박국도 17-18절에 “무화과나무에 과일이 없고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을지라도, 올리브 나무에서 딸 것이 없고 밭에서 거두어들일 것이 없을지라도, 우리에 양이 없고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주님 안에서 즐거워하련다.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 안에서 기뻐하련다” 라고 욥과 같은 찬양을 합니다. 다윗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박국이, 욥이, 다윗이 없을지라도 감사할 수 있었고 찬양할 수 있었던 것은 선하신 하나님을 믿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손을 의지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린아이가 부모의 손을 의지하고 곁에 있으면 두렵지 않은 것처럼 하박국이 그렇게 “즐거워하겠다, 기뻐하련다”라고 찬송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긍휼과 회복, 구원의 능력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19절에 “주 하나님은 나의 힘이시라” 라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전쟁과 풍랑과 어떤 어려움과 고통이 다가올지라도 하나님은 나의 힘이요 나의 구원자이심을 믿기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환난이 닥칠찌라도 하나님의 힘을 믿었기 때문에 찬양 수 있었습니다. 시편 18편에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내가 어떤 악조건에 있을지라도 사랑과 감사의 고백을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의 힘은 유한적입니다. 우리의 힘을 믿으면 염려 걱정이 떠날 날이 없습니다. 그러나 어떤 환난과 고난 중에서도 하나님이 나의 힘이 되심을 알고 믿으면 낙심의 자리에서도 감사할 수 있는 성숙함이 나오는 것입니다. 상황이 어렵습니까? 고난 가운데 있습니까? 내 손에 아무것도 없습니까? 그러할지라도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고 감사하는 믿음의 사람들, 감사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원합니다.

하박국이 드린 찬양과 감사는 없는 중에 드린 감사였습니다. 우리가 잘 될 때, 많을 때, 넘칠 때 드리는 감사는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사업이 잘 될 때, 여유가 있을 때 드리는 것은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없는 중에 감사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17절 말씀을 보십시오. “무화가 나무에 과일이 없고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을지라도, 올리브 나무에서 딸 것이 없고 밭에서 거두어들일 것이 없을지라도 우리에 양이 없고 외양간에 소가 없을 지라도” 17절에 무려 6개가 없다는 것입니다. 무화과, 포도, 올리브, 밭에 식물, 우리에 양, 외양간에 소. 없다고 고백한 6가지는 살아가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추수할 것이 없습니다. 모든 것을 다 빼앗긴 상황입니다. 그러할 때 절망하고 원망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하나님이 살아 계시면 이럴 수 있습니까? 나는 정말 재수 없는 사람이라는 둥, 세상을 원망하고 하늘을 원망하고 다른 사람을 원망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모습일 것입니다.

그런데 17절 맨 마지막에 붙어있는 위대한 접속사가 있습니다. “무화가 나무에 과일이 없고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을지라도, 올리브 나무에서 딸 것이 없고 밭에서 거두어들일 것이 없을지라도 우리에 양이 없고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없을지라도” 라는 말입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고백합니다. 열매가, 식물이, 양과 소가 없을 지라도 그래도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이것이 하박국의 신앙의 고백입니다. 이것을 현대말로 번역한다면 “내가 지금 실패했을지라도, 병들었을지라도, 돈이 없을지라도, 기대했던 것이 무너지고, 원했던것이 이루어지지 않았을지라도 감사합니다” 이런 고백을 할 사람이 세상 사람들 중에 몇 명이나 되겠습니까? 없습니다. 이 고백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선하시고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는 우리 믿음의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고백이 아닙니까?

오늘은 실패와 역경이 있지만 나를 구원하실 하나님을 바라보며 감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좋은 조건에서만 감사하는 신앙은 아주 위험한 신앙을 가진 것입니다. 사업이 잘되기 때문에 감사하는 사람은 그 사업이 안될 때는 어떻습니까? 내 뜻대로 될 때만 감사하는 사람은 내 뜻대로 되지 않으면 그때는 감사가 아니라 원망과 불평이 되는 것입니다.

결국 하박국의 찬양과 감사는 하나님으로 인한 감사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시각으로 볼 때 인간적, 세상적 기준으로 볼 때 ‘없을지라도’에서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시각으로 보면 모든 것이 감사하게 되고 시험과 어려움 속에서도 찬양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담대함으로 인내와 순종함을 보일 수 있는 것입니다. 고난 때문에 하나님 품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실패와 건강이 무너짐으로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가 많습니다. 어려움을 통하여 자신을 돌아보게 되고, 겸손하게 되고, 자아가 깨어지고 부서짐을 통해 성숙하고 성장하게 된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하나님의 시각으로 보면 고난 뒤에는 하나님의 손길과 축복이 보이기에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계획한 대로 일이 안되고 안 풀렸을 때 우리는 안달하고 마음이 상했지만 시간이 지난 후에 그때 그 일이 안된 것이 나에게 잘된 일이구나 라고 느꼈던 때가 있지 않았습니까? 당장은 어렵고 힘들고 ‘없을지라도’ 이지만 그 속에 하나님의 숨은 손길이 있습니다. 범사에 감사한다는 것은 그 악조건 언덕 뒤에 있는 하나님의 축복을 알기에 감사하며 변화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신앙이요 행복할 수 있는 원리입니다.

하나님의 시각과 영적인 눈으로 볼 수 있을 때 우리는 하박국의 고백을 할 수 있습니다. 19절에 “주 하나님은 나의 힘이시다. 나의 발을 사슴의 발과 같게 하셔서 산등성이를 마구 치닫게 하신다” 하나님께서 뛸 힘을 주시는 것입니다. 없을지라도 감사함으로 사슴과 같이 높은 곳을 뛰는 인생을 살아가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ategory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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