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갈라디아서 6:17-18

17 이제부터는 아무도 나를 괴롭히지 마십시오. 나는 내 몸에 예수의 상처 자국을 지고 다닙니다.
18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여러분의 심령에 있기를 빕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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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교회는 사도바울이 안디옥 교회를 통하여 첫 번째 선교를 나갔을 때 갈라디아 지역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전함으로 그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와 주님으로 믿는 이방인들로 세워진 교회였습니다. 하지만 오직 하나님의 은혜요 선물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진리를 교회 안에 들어온 유대인들이 이방인들도 율법대로 할례를 받아야 하고 율법을 지켜야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율법주의를 강요했습니다.

할례를 받는 것이 곧 하나님의 백성의 표식이고 구원의 표식이라고 율법과 할례를 강요했고 많은 갈라디아 성도들이 그 말에 넘어가 십자가의 복음이 아닌 할례를 받으며 유대인들의 율법을 따르는 율법주의로 돌아선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 바울은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것은 율법을 온전히 지킴으로 구원을 받게 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 율법을 통하여 죄를 깨닫고 자신의 힘으로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에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구원의 길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믿게 하려는 것임을 분명하게 다시한번 전파한 것입니다.

바울은 구원의 길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 외에는 없음을 자신이 바리새인으로, 율법주의자로, 율법대로 8일 만에 할례를 받았고, 율법으로는 흠이 없는 자로 살아 왔지만 그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후에 분명히 깨달았기에 참된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였고 받아 들였던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이 그 십자가의 복음에서 떠나 율법주의로 돌아서는 것을 보았을 때 안타깝고 고통스러웠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17절에 “이제부터는 아무도 나를 괴롭히지 마십시오” 라고 외치는 것입니다. 복음으로 다시 돌아서라는 것입니다. 율법주의에서 벗어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는 말이 “나는 내 몸에 예수의 상처 자국을 지고 다닙니다”라고 선포합니다. “나는 내 몸에 예수의 상처 자국을 지고 다닙니다”개역성경에는 “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라고 번역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고백한 “ 나는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라는 말의 의미는 어떤 의미입니까? 구원 받은 성도된 우리가 가져야 할 흔적은 육신의 할례의 흔적, 즉 율법을 지킴으로 내 의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와 사랑에 합당한 성령의 열매를 드러내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예수의 상처, 예수의 흔적이라는 말의 원어가 헬라어로 ‘스티그마타’입니다. 이 말의 의미는 옛날 소나 양, 짐승에다 소유주의 것이라는 표시를 하기 위해 소유주를 나타내는 문양이나 글씨를 불에 달구어 그 짐승에 몸에 지져서 낸 표식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몸에 그러한 예수의 표식, 스티그마, 상처, 흔적을 가졌다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지시고 손과 발에 못이 박히고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에는 십자가의 흔적이 있었습니다. 바로 손과 발에 박히셨던 못자국과 옆구리에 창자국이었습니다. 요한복음 20장을 보면 예수님의 부활을 의심하고 믿지 않았던 도마에게 모든 제자들이 다 모인 자리에서 나타나셔서 그 상처와 흔적을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흔적을 본 제자들은 기뻐했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십자가의 흔적은 그 분이 진짜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이고, 이제는 부활하셔서 구원의 약속이 성취되었음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의 흔적이 진정 예수님이 메시야시이요 구원자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했기 때문입니다.

진정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으로 우리가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함을 받게 되는 구원의 복음을 믿고 그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따르는 성도는 예수님과 같이 삶에 못자국과 창자국, 고난의 흔적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말씀대로, 성령의 인도하심대로 따르는 삶은 예수님이 받으신 고난과 상처와 내려놓음과 죽기 까지 순종해야 하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율법주의자들이었던 바리새인들처럼 스스로 율법을 잘 지키는 겉모습의 모습을 통해 “나는 의롭다. 나는 너희들과 다르다” 라고 자신의 의를 드러내고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다른 사람을 비난하고 정죄하는 삶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죄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사랑하시어 그들을 살리시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서 하늘의 영광을 버리시고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서 인간들의 비난과 수모와 조롱, 그리고 침 뱉음, 채찍에 맞으심, 그리고 손과 발에 못이 박히시고 십자가 위에 달려 피 흘려 죽으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십자가의 복음이 무엇인지 바로 깨달았습니다. 예수님께서 구원을 이루시기 위해 받으신 고난과 상처와 삶을 알았습니다. 그렇기에 부활하신 예수님, 자신의 죄를 용서하시고 사도로 택하여 주신 예수님을 따르고 그 복음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수많은 고난과 고통, 상처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이것이 진정 구원 받은 자, 예수님을 따르는 자의 모습이라는 것을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 라고 선포한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무엇을 자랑하십니까? 예수님의 흔적이 내 삶에 있습니까? 우리는 예수님을 위하여, 말씀대로 살기 위해, 영혼을 살리고 세우기 위해, 예수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해 받은 낮아짐과 순종, 겸손함으로 받은 예수의 흔적이 있어야 합니다. 육체의 할례의 흔적을 자랑하는 자가 아닌 진정 예수 그리스도의 상처와 십자가의 흔적을 구하는 십자가의 사람이 되기를 간구하며 나아가기를 축원합니다.

Category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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