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고린도전서 3:1-4

1 형제자매 여러분, 나는 여러분에게 영에 속한 사람에게 하듯이 말할 수 없고, 육에 속한 사람,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 같은 사람에게 말하듯이 하였습니다.
2 나는 여러분에게 젖을 먹였을 뿐, 단단한 음식을 먹이지 않았습니다. 그 때에는 여러분이 단단한 음식을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사실 지금도 여러분은 그것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3 여러분은 아직도 육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가운데에서 시기와 싸움이 있으니, 여러분은 육에 속한 사람이고, 인간의 방식대로 살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4 어떤 사람은 “나는 바울 편이다” 하고, 또 다른 사람은 “나는 아볼로 편이다” 한다니, 여러분은 육에 속한 사람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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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을 믿는 성도들이 모인 교회는 어떠한 교회이겠습니까? 그것은 예수님이 명하신대로, 예수님이 보여주신 사랑, 받은 그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는 교회, 화목하여 하나됨을 이루는 교회일 것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고린도 교회는 하나됨이 아닌 바울파와 아볼로파, 게바파, 그리스도파로 나뉘어서 분쟁이 있는 교회였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그리스의 항구도시이기에 여러 민족들이 섞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여러 목회자들이 와서 말씀을 가르쳤기에 고린도교회 교인들 가운데도 바울에게서 또 아볼로에게서 각각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교인들 가운데에는 아볼로가 지적이고 학문적인 사람이었으니까 지적이고 학문적인 신앙형태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볼로파였을 것입니다. 반면에 바울은 요즘 말로 한다면 성령파에 가까운 뜨거움이 있었기에 그것을 좋아하는 분들은 아마 바울을 좋아했을 것입니다. 유대지역에서 정착한 성도들이라면 이스라엘 출신이요 예수님의 수제자였던 베드로를 더 좋아했을 것입니다.

아볼로는 아프리카 알렉산드리아 지역 출신이였고, 바울은 다소지역, 베드로는 팔레스타인 지역 출신이였기에 출신과 고향에 따라 나뉘어 졌을 경우도 배제할 수 없을 것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자기와 연관되는 비슷한 것이 있으면 더 친근감을 가지는 것이지요. 아마 바울파, 아볼로파는 바울 또는 아볼로와 여러가지 인간적인 조건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이지 않았겠나라는 생각을 가집니다. 그로 인해 파벌이 교회 안에 나누어져서 다투고 있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인간적인 조건이 중심이 되어 모여 파를 만든 사람들을 ‘육신에 속한 사람’‘영적인 어린아이’라고 말합니다. 1절을 보십시오. “형제자매 여러분, 나는 여러분에게 영에 속한 사람에게 하듯이 말할 수 없고, 육에 속한 사람,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 같은 사람에게 말하듯이 하였습니다”육에 속한 사람이란 교회에 다니기는 하면서도 하나님이 아닌 자신의 본성과 감정, 판단과 생각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 뜻을 따르지 않습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 성령의 인도를 받지 않습니다. 육신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지 않고, 자기 중심의 삶을 삽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 예수를 믿었으면서도 이전 것은 버리지 못하고 신앙과 인격이 미성숙한 상태에 놓인 사람을 말합니다.

육에 속한 사람을 “어린 아이”라고 표현합니다. 나이는 들었지만, 신앙 생활은 오래 했다고 하지만 어떤 말이나 행동, 결정을 할 때 무엇이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무엇이 덕이 되고, 무엇이 예수 그리스도를 본 받는 섬김과 희생과 순종인지 분별하지 못하고 어린아이처럼 행하는 것입니다. 어린아이들은 어떤 말과 행동이 바른지, 적절한지, 부끄럽지 않은 것인지, 명예로운 것인지, 품위있는 것인지, 덕이 되는 모습인지 모릅니다.

어린아이는 이기적입니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지, 교회와 공동체, 관계에 하나됨을 무너트리는지, 어려움을 주는지 생각하지 않고 자기 감정과 생각대로 합니다. 자기만 좋으면 그만인 것입니다. 자기 생각만 옳고, 자기 주관적이고 편협적인 판단으로 살아갑니다. 어린 아이는 시기심이 많습니다. 안타깝게도 고린도 교회안에 성도들이 이런 육에 속한 모습,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이었기에 교회 안에 분쟁과 다툼이 있었다고 결론짓는 것입니다.

분열과 분쟁, 타툼의 원인은 누구의 잘못, 누구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육신의 모습을 보이고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 어린아이와 같은 이기적인 마음, 자존심과 내 뜻을 내려놓지 않는 고집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서 본문 3-4절에 육에 속한 사람의 특징을 시기와 분쟁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아직도 육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가운데에서 시기와 싸움이 있으니, 여러분은 육에 속한 사람이고, 인간의 방식대로 살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어떤 사람은 “나는 바울 편이다” 하고, 또 다른 사람은 “나는 아볼로 편이다” 한다니, 여러분은 육에 속한 사람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죄악된 우리 인간의 본성은 이웃을 미워하고 시기하고 질투합니다. 그래서 사촌이 땅을 사면 배 아프다는 말이 있는 것입니다. 형제가 나보다 더 나은 재능과 은사가 있을 때, 열심히 섬길 때 인정해주고, 칭찬하고, 박수쳐 주는 것이 마땅한데 헐뜯고 깎아 내리고 비난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잘못하고 실수할 때 사랑의 마음으로 위로하고 격려하고 바로 잡아 주려고 애써야 하는데 비난하고 정죄하기 쉽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나는 육에 속한 자의 모습이 있지 않는가 돌아보기 원합니다. 어린아이와 같은 시기와 분쟁, 비난의 마음과 생각으로 누군가를 대하고 있는지 아니면 영에 속한 사람, 영적인 부모와 같은 모습으로 누군가 연약하고 부족하면, 격려하고 위로하고, 칭찬과 인정함으로 사랑으로 세워주는 모습으로 살아가는지를 살피고 어린아이의 모습인 분쟁과 나뉨, 시기와 비난을 버리고 하나됨을 위해 십자가의 은혜 속에 희생과 낮아짐, 사랑과 배려, 인내와 기도의 삶을 살아가는 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Category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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