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고린도전서 16:21-24

21 나 바울은 친필로 인사의 말을 씁니다.
22 누구든지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저주를 받으라! 마라나타, 우리 주님, 오십시오.
23 주 예수의 은혜가 여러분과 함께 있기를 빕니다.
24 나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러분 모두를 사랑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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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은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보내는 편지를 마치는 인사의 말입니다. 그래서 21절에 “나 바울은 친필로 인사의 말을 씁니다” 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 다음 구절이 우리를 놀라게 합니다. 22절을 보십시오. “누구든지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저주를 받으라” 라고 말합니다. 이 말씀의 의미가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 자는 구원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 주는 것입니까? 그렇기에 하나님의 영원한 저주를 받지 않기 위해 벌벌 떨며 주님을 사랑하라는 뜻입니까? 그런 의미로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우리들에게 “누구든지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저주를 받으라” 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말의 의미는“누구든지 주자과 사랑의 관계에 있지 못한 자는 저주 아래 있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누구든지 주님의 사랑의 깨닫지 못한 자는 참된 사랑, 하나님이 명하신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는 계명을 지킬 수 없다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의 의미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특정 행위, 즉 예배를 드리지 않거나, 헌금을 하지 않거나, 봉사를 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과 화목하지 못하여 여전히 원수되어 있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알듯이 구원은 행위를 통해 얻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이 말하는 선한일, 사랑의 행위인 기부, 헌금, 봉사, 섬김을 많이 하기 때문에 천국에 가고 그런 선한 일을 안해서 지옥에 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가 절대 용서 받을 수 없는 엄청난 죄의 값을 십자가 위에서 보혈의 피를 흘리고 생명을 대신하여 대속하여 주신 그 놀라운 사랑과 은혜를 깨닫고 구세주와 주님으로 믿고 영접할 때 그 믿음으로 구원을 받고,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아버지와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에 하나님의 집, 아버지의 집인 천국에 가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과, 주님과 사랑의 관계 속에 있느냐는 것입니다. 주님의 사랑을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며 그 사랑에 엎드려져 그 사랑으로 순종의 삶을 살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은, 하나님과 주님과 사랑의 관계로 연결되어 있지 안다면 그 끝은 결국 저주입니다. 그래서 시편에 주를 사랑하지 않는 교만한 자들의 저주에 관한 내용들이 많이 나옵니다. 시편 2:12절을 보십시오. “그의 아들에게 입맞추어라. 그렇지 않으면 그가 진노하실 것이니, 너희가, 걸어가는 그 길에서 망할 것이다. 그의 진노하심이 지체없이 너희에게 이를 것이다”

“그의 아들에게 입 맞추어라” 즉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 엎드려 구세주와 주님으로 인정하는 그리스도로 믿고 영접하라.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진노하심으로 망하게 될것이다” 라는 하나님과 화목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진노아래 있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다시 본문 속에 고린도 교회 성도들을 생각해 볼 때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예수를 믿지 않는 자들이었습니까?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 자들이었습니까? 아닙니다. 그들은 복음을 듣고 믿는다는 자들이었습니다. 주님을 사랑한다고 하는 성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 안에 사랑의 모습이 없기에 일어나고 있는 많은 다툼과 싸움, 서로를 비난하고 경멸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서 “영적인 어린아이다. 가장 큰 사랑의 은사를 구하라” 더 나아가 “모든 일에 사랑으로 행하라” 라고 명하신 것입니다, 그들이 주님과의 관계 속에서 복음에, 십자가에, 그리고 하나님께서 베푸신 그 놀라운 사랑을 깨닫지 못하고 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자신을 구원을 받았다고 하면서 주님의 사랑을 경험하지 못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을 받아본 자만이 사랑을 할 수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랑이 없는 곳에서는 사랑이 나올 수 없다는 뜻입니다. 우리 스스로 안에는 아가페의 사랑, 주님을 사랑하는 사랑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라야만 비로소 사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한1서 4:19절에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진정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한 사람은 세상이 할 수 없는 사랑으로 주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7장에 예수님의 발에 귀한 옥합을 깨트려 부어 드린 마리아를 보십시오. 주님께 받은 사랑이 너무나 크기에 일년 연봉이나 되는 귀한 향유를 아낌없이 부어 드리는 사랑을 보인 것입니다.

진정 하나님을 경험한 사람은 예수님이 다시 오실 날을 기다리며 그 사랑의 삶을 살게 되어 있습니다. 모든 일에 사랑으로 행한 것만 남는 다는 것을 알기에, 그 사랑을 베푸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를 고대하는 마음으로 이 땅에 소망이 아닌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살아갑니다. 그렇기에 22절에 “마라나타, 우리 주님, 오십시오” 라고 외치는 것입니다. 이 고백이 요한계시록 22장 마지막 절에도 나오는 고백이 아닙니까?

오늘 말씀을 통해 사랑을 구하는 기도가 우리의 기도가 되기를 원합니다. “주님의 사랑을 깊이 깨닫게 하여 주옵소서. 내가 받은 죄의 용서의 은혜가 얼마나 큰지를 알게 하셔서 다른 영혼을 용서하는 마음을 주옵소서. 내가 받은 주님의 그 크신 사랑을 깨달아 모든 일에 감사와 기쁨으로 사랑의 마음으로 겸손함, 온유함, 자기 유익을 구치 않고 다른 사람의 유익을 구하는 삶, 긍휼함, 오래 참음과 친절함의 사랑을 행하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오직 주님 오실 그날을 사모하며, 천국을 바라보며 이 땅에 수많은 어려움과 역경이 있지만 주님의 사랑에 매여 평강을 누리며 살게 하옵소서”

Category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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