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빌립보서 3:7-11

7 그러나 나는 내게 이로웠던 것은 무엇이든지 그리스도 때문에 해로운 것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8 그뿐만 아니라, 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귀하므로, 나는 그 밖의 모든 것을 해로 여깁니다.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고, 그 모든 것을 오물로 여깁니다. 나는 그리스도를 얻고,
9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으려고 합니다. 나는 율법에서 생기는 나 스스로의 의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오는 의 곧 믿음에 근거하여, 하나님에게서 오는 의를 얻으려고 합니다.
10 내가 바라는 것은, 그리스도를 알고, 그분의 부활의 능력을 깨닫고, 그분의 고난에 동참하여, 그분의 죽으심을 본받는 것입니다.
11 그리하여 나는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는 부활에 이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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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바울은 우리가 조심해야 할 사람들, 우리가 피해야 할 삶의 모습이 바로 육신을 자랑하는 삶, 즉 개와 악한 일꾼, 할례를 주장하는 모습이라고 알려 주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진정 만나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과 은혜로 죄 용서함을 받고 구원 받음을 진정 깨달은 성도라면 절대 자신의 의를 자랑하지 않습니다. “내가 옳다, 내가 이만큼 애쓰고 섬겼다” 교만한 마음을 갖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닫기에 겸손함으로 예수를 자랑하고, 십자가를 자랑하는 삶을 삽니다.

세상 사람들, 예수를 믿는다고 하지만 영적인 눈이 열리지 않은 껍데기 신앙,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지 못한 사람들은 자신의 육신을 자랑합니다. 세상의 학력과 지위, 돈과 부를 자랑합니다. 자신의 성공을 자랑합니다. 자신이 안되면 자식까지 들먹이며 자랑합니다. 그 자랑에 주변 사람들은 “그래 너 잘났다” 라고 시기합니다. 속으로 부러워도 합니다. 자신이 그런 것을 얻지 못한 것에 대해 부모 탓, 집안 형편 탓, 남편 탓을 합니다.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세상의 자랑을 얻는 것이 삶의 목표가 되고 세상의 자랑을 얻기 위해 애씁니다.

바울도 자신이 그런 사람이었다고 고백합니다. 자신은 세상에 자랑할 만한 것들을 이미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고 자신이 가진 세상의 가문, 학위와 신분, 열심을 자랑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를 만나고, 예수를 믿은 후에 그러한 것들이 더 이상 자랑꺼리도 아니고 귀한 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고백합니다. 7절에 “그러나 나는 내게 이로웠던 것은 무엇이든지 그리스도 때문에 해로운 것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8절에 “그 모든 것을 오물로 여깁니다”

어떻게 과거에 귀하고, 중하다고 생각하고 붙들었던 가문, 학위, 명예, 부 같은 것들을 해로 여길 수 있게 되었습니까? 그 이유는 예수를 믿으면 우리가 진정 자랑할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는 변화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진정 예수를 믿어 빛 되신 예수님께서, 성령님께서 내 안에 들어오시면, 성령님께서 성경의 말씀을 조명하시고 깨닫게 하시면 무엇이 정말 중요한 것이고, 무엇이 자랑할 것인지를 깨달을 수 있는 영적인 눈과 분별력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몰랐지만 예수를 믿기 전에는 우리는 영적인 장님이었습니다. 영적으로 죽어 있는 자였습니다. 사단에 속한 자였습니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세상의 것만 보고 살았습니다. 에베소서 2:3절 “우리도 모두 전에는, 그들 가운데에서 육신의 정욕대로 살고, 육신과 마음이 원하는 대로 행했으며, 나머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날 때부터 진노의 자식이었습니다”사단에 속해 있었기에, 영적인 눈이 멀었기에 죄가 죄인 줄도 모르고 죄 가운데 살았습니다. 세상 사람들처럼 이 세상의 부와 명예, 성공, 인정받는 것이 최고 인줄 알고 그것이 속절없는 사단의 거짓된 것임을 알지 못하기에 그런 것들을 간절히 얻기를 바라고, 누리기를 바라고, 자랑하기를 원하며 욕심대로 죄 가운데 살았습니다.

하지만 영적인 눈이 열리면 그러한 세상의 것을 추구하며 산 삶이 얼마나 큰 죄인줄을 깨닫습니다. 세상이 주는 그 기쁨과 행복이 얼마나 헛된 것이고 무의미한 줄을 깨닫습니다.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임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인정 받아야 할 대상은 사람이 아닌 하나님임을 깨닫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하늘의 복이 참된 복이요 영원한 상임을 깨닫기에 하늘에 보화를 쌓는 지혜로움이 생깁니다. 그 지혜로움이 생길 때 이 땅에서 여유와, 담대함과, 포용과 용서와 사랑, 희생, 온유, 인내, 어려움 속에서도 기쁨과 소망 가운데 살아가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세상과, 사람과, 세상의 가치관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삶의 목적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러할 때 삶에 변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진정 예수를 만나고 십자가의 복음의 은혜를 깨달아 영적인 눈이 열리면 과거의 나의 모습과 오늘의 모습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주님이 주신 그 은혜와 사랑과 구원의 감격으로 주님을 위해 살아가는 변화가 생깁니다. 영혼을 섬기고, 세우고, 살리고자 하는 변화가 생깁니다. 용서하지 못할 사람을 용서하고, 감사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감사가 넘치고, 다른 사람을 끌어내리던 모습에서 올려주고, 넘어갈 수 없는 일들을 넘어가고, 참지 못할 일을 참아내고, 인내하고 충성하고 순종하는 모습으로 변화됩니다.

하나 되게 하고, 화목하게 하고, 힘이 나게 하는 모습으로 변화됩니다. 하나님을 위해 살고, 하나님의 교회의 일을 먼저 생각하고, 기도의 자리에 더 힘쓰고, “여기까지다” 라는 스스로 선을 긋는 모습에서 더 지경이 넓혀지고, 더 섬기고, 더 애쓰고, 더 나누고, 더 모이기에 힘쓰고. 변명과 상황을 넘어서는 변화가 나타나는 것이 믿는 자의 모습입니다.

바울이 그러한 변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10절에 “내가 바라는 것은, 다시 말해서 내가 소원하는 것, 자랑하는 것, 추구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알고 그 분의 부활의 능력을 깨닫고 그 분의 고난에 동참하여 그 분의 죽으심을 본받는 것입니다”라고 고백합니다. 진정 예수 믿는 사람은 바라는 것, 추구하는 것, 자랑하는 것이 달라집니다. 세상 사람들이 바라는 것, 추구하는 것, 자랑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을 바라고, 추구하고, 자랑합니다.

진정 예수 믿어 변화된 사람은 무엇을 바랍니까? 그리스도를 더 알기를 바랍니다. 더 가까이 가기를 바랍니다. 8절에 “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귀하므로” 가장 귀하게 여기는 것, 가장 우선으로 생각하는 것이 바로 예수를 알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찬송 453장을 찬송하는 것입니다. “예수 더 알기 원함은 크고도 넓은 은혜와 대속해 주신 사랑을 간절히 알기 원하네. 내 평생의 소원, 내 평생의 소원 대속해 주신 사랑을 간절히 알기 원하네”예수를 진정 믿는 자의 변화된 모습은 무엇보다 예수님을 아는 일, 가까이 하는 일, 섬기는 일, 말씀을 배우는 일, 말씀대로 살기를 원하는 것이 삶의 가장 바라는 것이 됩니다.

더 나아가 진정 예수 믿는 사람이 바라는 것, 추구하는 것이 10절을 보면 “그분의 고난에 동참하여 그분의 죽으심을 본받는 것입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과 사명을 위해 살기 위해서 고난에 동참하는 것을 꺼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내 뜻대로 살면 고난, 불편, 힘든 것 없습니다.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하지 않고. 내가 원하면 하고 내가 원하지 않으면 안하고. 내가 편하면 하고 내가 불편하면 하지 않고. 내가 성질내고 싶으면 성질내고, 내가 할 말 있으면 다 하고. 무슨 고난이 있습니까?

그러나 하나님 뜻대로 살려면 고난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기에, 말씀이기에 내가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기 때문에 고통스럽습니다. 더 고통스러운 것은 내가 하고 싶지 않은데 하나님의 뜻이기에 해야 할 때 고통스럽습니다. 하나님의 뜻, 하나됨을 위해, 하나님의 사명을 위해, 살려면 내가 포기해야 할 것 많습니다. 자존심, 내 편함, 내 생각, 내 뜻.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진정 믿고 아는 사람들은 그 고난에 동참합니다. 그 고난을 감수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도 그렇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고, 본받는 삶이 바로 10절의 말씀과 같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을 본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 구원, 사명, 화목케 함을 위해서 나를 죽이는 것입니다. 그것을 본받는 것입니다.

그러할 때 11절을 보십시오. “그리하여 나는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는 부활에 이르고 싶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진정 예수 믿어 예수 그리스도를 더 알기를 바라는 것이 삶의 목적이 되고, 간절한 소원이 되는 사람. 예수님의 고난, 주님의 뜻대로 살려고 나를 내려놓아 불편하고, 힘듬과 어려움과 고통을 인내하고 견디는 사람이 진정 부활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진정 구원 받아 하늘나라에서 하나님의 칭찬과 하늘의 상을 받는 다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이러한 참된 부활에 동참하는 자, 하나님의 칭찬과 하늘의 상을 받는 변화된 자가 될 수 있도록 영적인 눈이 열린 자가 되기를 기도하기 원합니다.

Category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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