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열왕기상 14:1-10

1 그 때에 여로보암의 아들 아비야가 병들어 누웠다.
2 여로보암이 자기 아내에게 말하였다. “변장을 하고 나서시오. 당신이 여로보암의 아내라는 것을 사람들이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하고, 실로로 가시오. 거기에는 아히야 예언자가 있소. 그가 바로 내게 이 백성을 다스리게 될 것이라고 말한 예언자요.
3 당신은 빵 열 개와 과자와 꿀 한 병을 들고, 그에게로 가시오. 그리하면 그는 이 아이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를 당신에게 알려 줄 것이오.”
4 여로보암의 아내는 그와 같이 하고 실로로 가서, 아히야의 집에 이르렀다. 아히야는 나이가 들어서 눈이 어두워졌으므로 사람을 잘 알아 보지 못하였다.
5 주님께서 아히야에게 미리 말씀하셨다. “여로보암의 아내가 자기의 병든 아들의 일을 물으려고 네게로 올 것이다. 너는 그에게 내가 일러준 대로 말하여라. 그는 올 때에 변장을 하고 다른 사람인 것 같이 차릴 것이다.”
6 왕의 아내가 문에 들어설 때에 아히야는 그의 발소리를 듣고 이렇게 말하였다. “여로보암의 부인께서 오신 줄 알고 있습니다. 들어오십시오. 그런데 어찌하여 다른 사람인 것처럼 변장을 하셨습니까? 불행하게도 좋지 않은 소식을 전해야 하겠습니다.
7 집으로 돌아가셔서 여로보암에게 이 말을 전하십시오. ‘나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한다. 내가 너를 백성 가운데서 높여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임명하였고,
8 다윗의 가문으로부터 왕국을 쪼개어서 네게 주었지만 너는 내 종 다윗처럼 살지 않았다. 다윗은 내 명령을 지키고 내가 보기에 올바르게 행동하였으며, 마음을 다해서 나를 따랐다.
9 그러나 너는 너보다 앞서 있던 모든 왕들보다 더 악한 일을 하여서 다른 신들을 만들고, 우상을 부어 만들어서 나의 분노를 격발시켰다. 결국 너는 나를 배반하고 말았다.
10 그러므로 내가 여로보암의 가문에 재난을 내리겠다. 여로보암 가문에 속한 남자는, 종이거나 자유인이거나 가리지 않고, 이스라엘 가운데서 모두 끊어 버리겠다. 마치 사람이 쓰레기를 깨끗이 쓸어 버리듯이, 여로보암 가문에 사람을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고, 다 쓸어 버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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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은 1절에 “그 때에 여로보암의 아들 아비야가 병들어 누웠다”라고 시작합니다. 그때라는 말은 바로 전 장인 13장에 여로보암이 북 이스라엘의 왕이 된 후에 하나님의 명령과 약속의 말씀을 붙들지 않고 인간적인 생각과 뜻대로 자신의 왕위를 지키겠다고 벧엘과 단에 제단을 만들고 그 위에 금 송아지를 세워 이것이 하나님이라고 하며 절기에 예루살렘 성전에 가서 예배드리는 수고를 하지 말고 이 금송아지 앞에 제사를 드리라는 우상 숭배의 길을 제시한 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가 아닌 자신의 편한대로 레위 자손이 아닌 일반 백성들 가운데 제사장들을 세운 때입니다.

그리고 이 때란 그러한 여로보암의 죄악을 하나님께서 아히야 선지자를 보내 책망하시고 돌이키라고 보낸 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히야 선지자를 통해 여로보암이 세운 우상을 섬기는 제단을 부수시고 그의 손을 마비시키시는 기적을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여로보암은 단지 자신의 손을 회복하기만을 구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에 불순종하며 하나님이 아닌 우상을 섬기는 죄악을 행하며 하나님의 책망속에서도 회개하지 않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심판하십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고자 하시는 손길을 거부하기 때문에 망하는 것입니다.

1절을 다시 보면 “그 때에 여로보암의 아들 아비야가 병들어 누웠다”라고 말합니다. 아들의 병을 고치기 위해서 많은 의사들을 찾았었고 나름대로 고치기 위해서 애를 썼을 것입니다. 그러나 차도가 없는 것입니다. 아들의 병이 더 악화되고 죽어 가는 것입니다. 그러할 때 여로보암은 자기 아내를 선지자 아히야에게 보내 자기 아들이 어떻게 될지 알아보라고 합니다.

자기 아내를 선지자 아히야에게 보낸 것을 보면 그는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보다 자신의 생각대로 살아가는 불순종함과 우상을 섬기는 죄악을 행하고 있었지만 삶속에 자신의 능력으로 할 수 없는 자기 아들의 죽을 병 앞에 하나님의 능력을 알기에 하나님을 찾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아들의 생사화복을 아시기에 어떻게 될 것인지를 안다고 믿은 것입니다.

이것이 사실 인간의 마음이 아닙니까? 평소에는 자기 마음대로 살고, 자기 힘으로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것처럼 살지만 인생의 막다른 골목,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감당할 수 없는 문제와 어려움에 봉착하면 하늘을 바라보며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까? 어떤 상황이든지 그런 문제와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께 돌아오고 하나님을 찾고 구한다면 그것이 지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리 악하고 죄된 모습으로 하나님을 거역하고 살았더라고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을 찾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로보암이 보인 모습은 진정 겸손함으로 하나님 앞에 낮아진 모습으로 찾은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그 이유는 첫째 자신이 아닌 아내를 보낸 것입니다. 왜 자신이 직접 아히야 선지자를 찾아가지 않았을까요? 찔림 또는 부담감이 있었던 것입니다. 분명 여로보암은 자신의 죄를 알고 있었습니다. 이미 아히야 선지자가 자신을 찾아와 죄를 책망했었습니다. 그렇지만 여로보암은 겸손히 낮아져서 죄를 회개하지 않았었습니다.

그렇기에 자신이 찾아가면 아히야 선지자가 자신의 아들에 대해 결코 말해 주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아내 역시 변장을 하게 하여 자신의 아내라는 것을 드러나지 않게 하고 찾아가게 했던 것입니다.

이 모습을 보면 진정 해결해야 할 하나님 앞에 자신의 죄의 문제, 불순종과 우상숭배의 죄를 회개함으로 해결하려고 직접 나서기보다 단지 자기 아들의 병을 고치고자 하는 마음, 자기 아들이 어떻게 될 것인가에 관한 인간적인 문제에 더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이는 모습이 아닙니까? 자신의 죄와 문제의 원인을 해결받기 위해 회개함으로 하나님 앞에 직접 나아가는 모습이 아니라 죄로 인해 생긴 문제를 어떻게 하든지 해결해 보려고 즉 속의 근본적인 죄의 문제, 불순종의 문제, 하나님을 배역하고 거역하는 죄의 문제가 아닌 그 죄로 인해 나타나는 죄의 현상, 즉 자신의 불편함과 편함, 이익에 손해나는 것을 해결 받기 위해 변장하고 해결해 보려는 미련한 모습을 보이지 않습니까?

여로보암은 자신의 아내를 변장시켰습니다. 아히야 선지자를 속이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결국 하나님을 속이려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자신의 죄를 숨기고 외적인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죄를 숨기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자신의 죄를 변명하고, 자신은 문제 없다는 태도를 보이면 문제는 더 복잡해지고, 고통은 배가 됩니다. 그런데 우리의 죄성은 죄를 숨기고 싶어 합니다. 감추고 싶어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죄를 뒤집어 씌우려고 합니다. 첫 인간 아담과 하와가 그랬습니다. 선악과를 먹고 숨었습니다. 누가 먹었느냐 라고 할 때 “제가 먹었습니다. 제가 죄를 지었습니다” 라고 고백하고 회개하기보다 “저 여자가 주어서, 뱀이 유혹해서 그랬습니다” 라고 말합니다.

내가 죄를 고백하고 드러낼 때, 비록 그 순간 수치스럽고, 창피하지만 사탄이 더 이상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들어날 때, 회개하게 되고, 회개할 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게 됩니다.

여로보암은 아히야가 늙어 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고 속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인간적인 생각입니다. 이 세상의 그 어떤 죄도, 어느 누구도 하나님 앞에 그 죄를 숨길 수 없습니다. 사도행전에서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가 베드로를 속이려고 했습니다. 교회를 속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을 속이지 못합니다. 그들의 죄가 다 들통납니다. 우리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의 생각과 속을 다 아시기에 어떠한 죄로 숨길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로보암에게 회개하고 돌이킬 기회를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셨을 때 그 기회를 잡아야 합니다. 회개함이 있어야 합니다. 죄를 인정하고 고백해야 합니다. 속이거나 변명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을 때 하나님의 분노하심이 임합니다. 하나님의 심판하심이 있습니다.

그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이 7-10절의 말씀입니다. 저주와 심판의 말씀을 요약하면 “내가 너를 택해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웠는데 너는 내가 아닌 다른 우상을 만들어 섬기는 배반을 했다. 그래서 나의 분노를 격발시켰다. 그러므로 내가 너와 너의 가문에 재난을 내려 너의 가문 사람들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다 쓸어 버리겠다” 얼마나 무서운 저주요 심판입니까?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신 대로 행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약속하신대로 축복하시고 예언하신대로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여로보암은 축복하신 약속의 말씀이 아닌 저주의 심판을 받는 악한 죄를 택했습니다. 회개를 택하지 않고 숨김과 속임을 택했습니다. 그 결과 그의 아들은 죽음을 당하고 그와 그의 가족과 가문들이 저주를 받아 끊어졌습니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하나님을 불순종하며 악을 행한 자의 표본으로 늘 나오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축복의 말씀과 저주의 말씀이 함께 합니다.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예수 믿으면 구원 받습니다. 축복의 말씀입니다. 반면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하지 않으면 영원한 형벌을 받습니다. 저주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은 우리로 축복을 받고 누리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말씀을 받아 순종하지 않으면 그 말씀으 저주와 심판으로 다가옵니다. 하나님의 뜻인 축복을 받고 누릴 수 있도록 말씀에 순종하는 삶, 비록 순간 불순종과 죄를 지었을 때 숨기는 자가 아닌 죄를 고백하고 회개함으로 돌이켜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용서하심 속에 다시 일어나 축복의 길을 걸어가기를 원합니다.

Category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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