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열왕기상 21:16-29

16 아합은 나봇이 죽었다는 말을 듣고 일어나서 이스르엘에 있는 나봇의 포도원을 차지하려고 내려갔다.
17 주님께서 디셉 사람 엘리야에게 말씀하셨다.
18 “일어나 사마리아에 있는 이스라엘 왕 아합을 만나러 내려가거라. 그가 나봇의 포도원을 차지하려고 그 곳으로 내려갔다.
19 너는 그에게 다음과 같이 전하여라. ‘나 주가 말한다. 네가 살인을 하고, 또 재산을 빼앗기까지 하였느냐? 나 주가 말한다. 개들이 나봇의 피를 핥은 바로 그 곳에서 그 개들이 네 피도 핥을 것이다.'”
20 아합은 엘리야를 보자, 이렇게 말하였다. “내 원수야, 네가 또 나를 찾아왔느냐?” 그러자 엘리야가 대답하였다. “그렇습니다. 이렇게 또 찾아왔습니다. 임금님께서는 목숨을 팔아 가면서까지 주님께서 보시기에 악한 일만 하십니다.
21 ‘내가 너에게 재앙을 내려 너를 쓸어 버리되 너 아합 가문에 속한 남자는 종이든지 자유인이든지 씨도 남기지 않고 이스라엘 가운데서 없애 버리겠다.
22 네가 이스라엘 사람에게 죄를 짓게 해서 나를 분노하게 하였으니 내가 네 가문을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가문처럼 또 아히야의 아들 바아사의 가문처럼 되게 하겠다.’
23 주님께서는 또 이세벨을 두고서도 ‘개들이 이스르엘 성 밖에서 이세벨의 주검을 찢어 먹을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24 아합 가문에 속한 사람은, 성 안에서 죽으면 개들이 찢어 먹을 것이고, 성 밖에서 죽으면 하늘의 새들이 쪼아 먹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25 자기 아내 이세벨의 충동에 말려든 아합처럼 주님께서 보시기에 이렇게 악한 일을 하여 자기 목숨을 팔아 버린 사람은 일찍이 없었다.
26 아합은 주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의 눈 앞에서 쫓아내신 그 아모리 사람이 한 것을 본받아서 우상을 숭배하는 매우 혐오스러운 일을 하였다.
27 아합은 이 말을 듣고는 자기 옷을 찢고 맨몸에 굵은 베 옷을 걸치고 금식하였으며 누울 때에도 굵은 베 옷을 입은 채로 눕고 또 일어나서 거닐 때에도 슬픈 표정으로 힘없이 걸었다.
28 그 때에 주님께서 디셉 사람 엘리야에게 말씀하셨다.
29 “너는 아합이 내 앞에서 겸손해진 것을 보았느냐? 그가 내 앞에서 겸손해졌기 때문에 나는 그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그에게 재앙을 내리지 않고, 그의 아들 대에 가서 그 가문에 재앙을 내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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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합 왕이 궁궐 근처에 있는 포도원을 자신의 정원으로 만들기 위해 포도원의 주인이었던 나봇에게 그 땅을 팔라고 제안했지만 나봇은 하나님께서 정하여 주신 땅을 팔 수 없다고 거절하자 어린아이처럼 밥도 먹지 않고 침대에 들어 눕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아합 왕의 아내 이세벨은 나봇이 하나님과 임금을 저주하였다는 거짓 증언을 건달들로 하게 하여 그 지역 백성들의 돌에 맞아 죽게 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나봇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아합 왕은 나봇의 포도원을 차지하러 이스르엘로 내려갈 때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아합에게 무서운 심판의 메시지입니다.

19절입니다. “너는 그에게 다음과 같이 전하여라. ‘나 주가 말한다. 네가 살인을 하고 또 재산을 빼앗기까지 하였느냐? 나 주가 말한다. 개들이 나봇의 피를 핥은 바로 그 곳에서 그 개들이 네 피도 핥을 것이다” 이세벨의 간교한 계략대로 나봇이 죽자 아합은 소원대로 그의 포도원을 차지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러한 믿음의 사람까지 죽이며 자신의 욕심을 채우는 악을 행하는 아합을 이제는 더 이상 그냥 두고 보지 않으십니다. “네가 살인을 하고 또 재산을 빼앗기까지 하였느냐?” 악행을 알고 계시고 그 악행에 대한 책임과 심판을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엘리야 선지자의 등장과 심판의 메시지를 듣자 아합 왕이 이렇게 말합니다. 20-22절입니다. “아합은 엘리야를 보자, 이렇게 말하였다. “내 원수야, 네가 또 나를 찾아왔느냐?” 그러자 엘리야가 대답하였다. “그렇습니다. 이렇게 또 찾아왔습니다. 임금님께서는 목숨을 팔아 가면서까지 주님께서 보시기에 악한 일만 하십니다. 내가 너에게 재앙을 내려 너를 쓸어 버리되 너 아합 가문에 속한 남자는 종이든지 자유인이든지 씨도 남기지 않고 이스라엘 가운데서 없애 버리겠다. 네가 이스라엘 사람에게 죄를 짓게 해서 나를 분노하게 하였으니 내가 네 가문을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가문처럼, 또 아히야의 아들 바아사의 가문처럼 되게 하겠다”

아합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엘리야 선지자를 향하여 “내 원수야” 라고 부릅니다. 그가 평소에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며 살았고 그 말씀을 전하는 엘리야를 거북해하며 살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답입니다. 아합 왕은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없이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3년 반동안 비가 내리지 않게 하시는 하나님, 하늘에서 불을 내리시어 제단을 불태우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이길 수 없는 시리아 나라와의 전쟁에서 두 번이나 승리하게 하시는 은혜를 베풀어 주셨지만 그 은혜를 깨닫지 못하고 교만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반응이 없는 자, 하나님의 말씀을 우습게 여겨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거나 회개함이 없는 자였습니다. 이러한 모습들이 사실 우리에게 있지 않습니까? 세상 사람들은 죄에 대한 심판, 지옥의 심판에 대한 두려움 없이 살아갑니다. 내게 일어나지 않을 일처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합니다. 죄에 대한 심판에 대한 말씀들을 들으면 기분 나쁘다고 아합 왕처럼 마음 상한다고 분노하며 귀를 막습니다.

그렇다면 이 시대의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성도된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진정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살아갑니까? 하나님께 하라, 하지 말라고 명하신 말씀에 불순종하는 죄에 대한 심판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순종하며 따르는 믿음의 모습을 보이며 삽니까?

물론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근본적인 동기는 두려움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과 명령에 순종하며 살 때 축복이 있습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평강이요, 축복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귀담아 순종하지 않을 때, 세상을 따라, 나의 욕심을 따라, 내 뜻대로 불순종의 죄를 지을 때, 그 죄에서 돌이키지 않을 때 분명 하나님의 두려운 심판이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 엘리야 선지자를 통해 전하신 아합과 그의 집안에 대한 심판의 메시지를 보십시오. 정말로 두렵고 떨리는 내용입니다. 21-24절을 보면 “아합 가문에 손간 남자는 씨도 남기지 않고 없애겠다. 망하게 하겠다” 24절을 보십시오. “아합 가문에 속한 사람은, 성 안에서 죽으면 개들이 찢어 먹을 것이고, 성 밖에서 죽으면 하늘의 새들이 쪼아 먹을 것이다” 라고 전합니다.

그리고 아합과 그의 집안이 이런 무서운 심판을 받게 된 이유를 분명하게 알려 주십니다. 20절입니다. “임금님께서는 목숨을 팔아 가면서까지 주님께서 보시기에 악한 일만 하십니다” 그리고 22절입니다. “네가 이스라엘 사람에게 죄를 짓게 해서 나를 분노하게 하였으니” 아합 왕은 자신의 욕심대로, 감정대로, 세상을 따라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악한 일들을 했습니다. 이방 여인, 특별히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시돈 왕의 딸 이세벨을 왕비로 맞아 들였고 그로 인해 하나님을 섬기는 선지자들과 제사장들을 다 죽였습니다. 아합은 자기만 우상 숭배의 죄를 지은 게 아니라 백성들까지도 우상 숭배의 죄를 짓게 만들었습니다. 자신의 욕심을 위해 선한 백성 나봇 같은 사람들을 모함해서 죽이고 그 땅을 자신의 것으로 차지했습니다.

아합 왕으로 하여금 악한 죄의 길로 가게 만드는데 큰 역할을 한 이세벨에 대해서도 심판하시겠다고 하십니다. 23절입니다. “주님께서는 또 이세벨을 두고서도 ‘개들이 이스르엘 성 밖에서 이세벨의 주검을 찢어 먹을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엘리야 선지자에게 “내 원수여” 라고 하며 맞서던 아합 왕, 지금까지 수많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아무런 회개를 하지 않았던 아합 왕이, 무서운 심판의 메시지를 받고 나서 예상치 못한 모습을 보입니다. 27절입니다. “아합은 이 말을 듣고는 자기 옷을 찢고 맨몸에 굵은 베 옷을 걸치고 금식하였으며, 누울 때에도 굵은 베 옷을 입은 채로 눕고, 또 일어나서 거닐 때에도 슬픈 표정으로 힘없이 걸었다” 아합 왕이 무서운 심판의 메시지를 듣고 자신의 옷을 찢고, 애통할 때 입는 굵은 베옷을 입고 금식하는 모습을 보인 것입니다.

엘리야는 인간적으로 이 심판의 메시지를 전할 때 아합 왕에게 하나님의 재앙이 내려 그 죗값을 톡톡히 치르기를 바라고 있었을 것입니다. 요나 선지자가 적국 니느웨 성이 하나님의 재앙을 받아 망하기를 바라는 마음처럼 말입니다. 아합 왕이 옷을 찢고 베옷을 입고 금식하며 슬픈 표정으로 지내는 모습을 보았을 때 엘리야의 눈에는 그런 아합 왕의 행동이 가식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겠습니까?

아합 왕이 진정 회개했는지에 대해서는 본문에서 분명하게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하나님께서 그 아합 왕의 행동에 대해 어떻게 받아들이시고 말하시는지 엘리야에게 29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아합이 내 앞에서 겸손해진 것을 보았느냐? 그가 내 앞에서 겸손해졌기 때문에 나는 그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그에게 재앙을 내리지 않고, 그의 아들 대에 가서 그 가문에 재앙을 내리겠다”

방금 엘리야 선지자를 통하여 하나님은 나봇의 억울한 죽음을 당장이라도 아합왕에게 갚아주시는 것처럼 아합 왕과 그의 집안을 더 이상 가만두지 않고 씨도 남기지 않고 없애버리시겠다고 재앙을 선포했지만 아합의 뜻밖의 겸비한 모습으로 보시고는 그 재앙을 아합의 시대에 내리지 않고 그 아들의 시대에 내리시기로 하십니다.

이런 하나님의 모습에 우리 같으면 어떤 반응을 보이겠습니까? “하나님, 저 아합이 보인 태도가 진심이 담긴 것이 아닐겁니다. 회개한 것이 아닙니다. 가식입니다. 단지 이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 한 행동입니다. 심판을 거두시면 안됩니다. 속으면 안됩니다” 라고 말하고 싶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서“아합이 내 앞에서 겸손해진 것을 보았느냐?”라고 말씀하신 말씀은 엘리야에게, 우리에게 아합을 너무 가식적인 사람으로만 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점이 바로 우리 인간이 죄인을 보는 눈과 하나님이 죄인을 보시는 눈과 다른 점입니다. 우리는 죄를 지은 죄인에게 너그럽지 못합니다. 비록 그가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도 내 기준에 맞지 않는다고 받아들이고 용납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알량한 의로운 기준은 그 죗값을 치루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죄성은 누군가 10가지 중에 9가지를 잘하고 한 가지를 잘못한 것이 있으면 그 잘한 9가지는 잊고 한가지 잘못한 것에 대한 비난과 정죄의 모습을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9가지, 아니 99가지를 잘못하였다 할지라도 한 가지 잘한 것이 있다면 그 한 가지 잘한 것으로 인해 그 잘못한 99가지를 덮으시며 인자한 눈으로 바라보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성경을 통해 보여 주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아닙니까?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탕자의 비유에서 보이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아합이 심판의 메시지를 듣고 어찌 되었든 자신의 옷을 찢고 베옷을 입고 금식을 하며 풀이 죽어 다니는 모습을 보이는 그대로 받아주셨습니다. 그대로 받아주는 모습이 하나님의 마음, 우리가 가져야 할 마음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과 인자하심은 우리의 생각을 뛰어넘는 것입니다. 악독한 아합 왕일지라도 겸비의 모습을 보일 때, 하나님은 그것을 기뻐하시고 마음을 돌이켜 하나님께로 돌아오도록 재기의 기회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자비는 불공평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죄인이 벌을 받아 멸망당하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오히려 악인이라도 하나님 앞에 나아와 회개하고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에스겔 18장 21절과 31-32절에 “나 주 하나님의 말이다. 악인이 죽는 것을, 내가 조금이라도 기뻐하겠느냐? 오히려 악인이 자신의 모든 길에서 돌이켜서 사는 것을, 내가 참으로 기뻐하지 않겠느냐? 너희는, 너희가 지은 죄를 모두 너희 자신에게서 떨쳐내 버리고,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하여라.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왜 죽고자 하느냐? 죽을 죄를 지은 사람이라도, 그가 죽는 것을 나는 절대로 기뻐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너희는 회개하고 살아라. 나 주 하나님의 말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아합에게만 보이시는 마음이 아닌 저와 여러분에게 보이시는 마음입니다. 사실 우리도 하나님 앞에서 다 죄인이 아닙니까? 우리도 다 한 꺼풀만 들춰 보면 차마 드러내기도 힘든 더러운 죄가 있는 죄인들이었습니다. 아합을 생각하면 하나님의 자비가 불공평한 것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바로 그것이 나라고 생각해보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아합이나 나나, 모두 하나님의 용서가 필요한 죄인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자비로우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나의 마음을 마음을 돌아보고 죄를 보면서 전심으로 통회하고 회개하며, 더 나아가 다른 사람들이 보이는 겸손한 모습, 조금이라고 변화되고자 하는 낮은 모습을 보일 때 가식적이라고 비난과 대적하는 모습이 아닌 하나님의 마음으로 받아 줄 수 있는 넓은 마음을 위해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Category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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