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하박국 1:1-4

1 이것은 예언자 하박국이 묵시로 받은 말씀이다.
2 살려 달라고 부르짖어도 듣지 않으시고, “폭력이다!” 하고 외쳐도 구해 주지 않으시니, 주님, 언제까지 그러실 겁니까?
3 어찌하여 나로 불의를 보게 하십니까? 어찌하여 악을 그대로 보기만 하십니까? 약탈과 폭력이 제 앞에서 벌어지고, 다툼과 시비가 그칠 사이가 없습니다.
4 율법이 해이하고, 공의가 아주 시행되지 못합니다. 악인이 의인을 협박하니, 공의가 왜곡되고 말았습니다.

—————————————–

오늘부터 몇주간 하박국의 말씀속에 담긴 우리가 알아야 할 하나님의 마음과 뜻, 그리고 우리가 가져야 할 신앙의 태도에 대해 나누기를 원합니다. 대부분의 선지자들은 그의 부모나, 가문, 직업, 지파를 소개하는데 하박국에 대해서는 전혀 알려주고 있지 않습니다. 1절을 보면 “이것은 예언자 하박국이 묵시로 받은 말씀이다” 라고만 나오고 성경 다른 어느 곳에도 하박국의 이름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의 부모나 가족에 대한 내용이나 어떻게 하나님께 부름을 받아 선지자가 되었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의 신분은 성전에서 노래하는 일을 맡은 레위인로 볼 수 있습니다. 하박국 3:19절을 보면 “주 하나님은 나의 힘이시다. 나의 발을 사슴의 발과 같게 하셔서, 산등성이를 마구 치닫게 하신다. 이 노래는 음악 지휘자를 따라서, 수금에 맞추어 부른다” 라고 음악 지휘자에 따라서 라고 하는 말이나 3장에 3절과 9절에 보면 ‘셀라’라고 하는 찬양할 때 쉼을 갖게 하는 의미를 가진 것을 쓴 것으로 성전에서 찬양을 하는 레위 자손이라고 추측합니다.

하박국의 내용은 다른 선지서와 많이 다릅니다. 선지자는 하나님 앞에서 말씀을 받아 그의 백성들에게 전달하고 교훈하는 것이 사명입니다. 그래서 선지서는 대부분 하나님께서 명하신 말씀, 책망하시거나 예언하여 주신 말씀이 적혀 있는데 하박국서는 하박국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대언하며 백성에게 전한 내용이 없습니다. 대신에 하나님께 대한 질문들로 가득합니다. 1:2-3절을 보십시오. “주님, 언제까지 그러실 겁니까? 어찌하여 나로 불의를 보게 하십니까? 어찌하여 악을 그대로 보기만 하십니까? 3:8절에도 “주님, 강을 보고 분히 여기시는 것입니까? 강을 보고 노를 발하시는 것입니까? 바다를 보고 진노하시는 것입니까? 어찌하여 구원의 병거를 타고 말을 몰아오시는 것입니까?” 라는 불평과 같은 질문들을 던집니다. 그리고 그 질문에 답을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어집니다.

하박국은 남 유대 말에 살았던 선지자입니다. 그 당시 바벨론이 흥황하면서 앗시리아 제국을 압박하고 있었던 시대입니다. 그때 그래도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했던 요시아 왕이 바벨론을 견제하기 위해 앗시리아와 연합하여 바벨론과 전쟁하려고 올라오던 이집트 느고 왕을 므깃도 전쟁하다가 죽음을 당합니다. 이로 인해서 유다의 국력은 급속히 쇠하여졌습니다.

하박국은 “왜 요시아 왕과 같은 의인이 이렇게 죽어야만 하는가?” 에 대한 질문을 하나님께 하는 것입니다. 의인이었던 요시아 왕이 죽은 이후에 왕들은 더욱 악행을 저질렀습니다. 그 중에 요호야김은 가장 악했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책을 불태웠고 선지자들은 큰 핍박을 받았습니다. 우상 숭배가 넘치고 나라와 정치가 어지러워지고 죄악으로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요시아 왕 이후 남유다는 백성들로부터 위정자들, 그리고 영적 지도자들이 우상 숭배에 빠져 살았습니다. 특별히 리더들과 왕조차 백성들을 돌볼 생각이 없었습니다. 심각한 도덕적 타락과 함께 영적으로 완전히 무너져 버린 상황을 보면서 기도한 기도의 내용이 3-4절입니다. “어찌하여 나로 불의를 보게 하십니까? 어찌하여 악을 그대로 보기만 하십니까? 약탈과 폭력이 제 앞에서 벌어지고, 다툼과 시비가 그칠 사이가 없습니다. 율법이 해이하고, 공의가 아주 시행되지 못합니다. 악인이 의인을 협박하니, 공의가 왜곡되고 말았습니다”

하박국 선지자의 이 질문들은 불평과 원망이 아닌 남 유다가 바벨론 나라에 멸망당하기 전에 남 유다의 죄악과 그로 인해 혼란과 고통, 멸망이 있음을 알기에 민족의 아픔과 그들이 돌이키지 않는 완악함에 대한 안타까움, 그리고 어려움을 위해서 하나님께 기도한 것입니다. 간구한 것입니다.

하박국의 기도는 한두번의 기도가 아니라 오랫동안 기도한 기도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듣지 않으시고, 응답하지 않으시는 것처럼 느끼기에 “언제까지입니까? 어찌하여 악을 그대로 보기만 하십니까?” 라고 불평처럼 들리는 기도로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고민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며 매달렸는데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손이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이 본문에 나오는 하박국의 심정입니다. 저와 여러분도 그러한 고민과 의심이 들 때가 있지 않습니까? 크게는 나라를 위해서 기도하고, 조국을 위해서, 교회를 위해서 기도하는데, 적게는 가정을 위해서, 나 자신을 위해서, 어떤 문제와 어려움을 위해서 기도하는데, 그 기도가 분명 하나님의 뜻과 맞는 기도인데 하나님께서 듣지 않으시는 것 같고, 응답하지 않으시는 것 같고, 기도의 제목과 형편이 전혀 변하지 않고 움직이지 않는 것 같을 때 우리도 답답하고 힘든 하박국의 심정이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 붙들어야 할 진리는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듣고 계십니다. 우리의 기도만 아니라 사실 우리의 원망과 불평도, 감사도 들으십니다. 분명한 진리는 우리는 눈 앞에 보이는 현상과 문제만 보지만 하나님께서는 전체를, 입체적으로 처음과 끝을, 그리고 마음의 동기와 모든 것을 아시고 하나님의 섭리 속에, 계획대로 이루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이 보이지 않기에 답답할 수 있습니다. 의심의 마음도 듭니다. 근심과 걱정, 분노하는 마음도 생깁니다.

참된 믿음이란 그러할 때 하나님의 선하심을, 하나님의 섭리를, 하나님께서 뜻하시고 이루실 것을 믿는 믿음으로 기다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움직이실 때,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때가 우리의 원하는 때와 우리가 원하는 것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기다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신앙은 기다림입니다. 무작정 기다리는 것, 넉놓고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분명히, 어느 순간에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때에 반드시 선하게 이루실 것을 믿고 지금 내가 이해되지 않는 이 순간에도 하나님을 놓지 않는 믿음으로 기도의 수고를 쉬지 않는 믿음을 하나님께서 원하십니다. 그 기도와 그 믿음이 저와 여러분들의 기도와 믿음이 되기를 원합니다.

Category말씀 묵상
Follow 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