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에베소서 4:30
30 하나님의 성령을 슬프게 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성령 안에서 구속의 날을 위하여 인치심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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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부르심과 택함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 받은 자,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된 우리들을 향하여 30절에 “하나님의 성령을 슬프게 하지 마십시오” 라고 명령하십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예수님을 나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으심으로 구원하여 주신 구세주시오, 삶의 주님으로 믿고 따르며 순종하며 살겠다고 영접할 때 예수의 영이신 성령님이 우리 마음에 들어와 거하시기 때문입니다.
구원받은 우리는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삶,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 삶이란 내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삶입니다. 성령님의 감화 감동케 하여 하나님의 뜻을 알고 순종하는 삶입니다. 그런데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지 않고 따르지 않을 때 성령님께서 슬퍼하신다는 것입니다.
왜 우리가 성령님을 슬프게 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30절에 우리가 성령 안에서 구속의 날을 위하여 인치심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성령 안에서 구속의 날을 위하여 인치심을 받은 자들입니다. ‘구속의 날’ 의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날, 즉 완전한 구원과 영화 즉 완전한 구원이 이루어지는 날을 가리킵니다. 즉 구원 받은 우리, 구원의 증거로 성령님을 마음에 모신 우리는 주님이 다시 오실 그날, 주님을 만날 그날까지 성령님과 함께 거하며 동행해야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님을 모시고 사는 우리는 성령님을 슬프게 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령님을 슬프게 하는 일은 어떤 일입니까? 바로 하나님의 뜻과 말씀과 명령을 불순종하는 죄를 짓는 일입니다. 이사야 63:10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그들은 반역하고, 그의 거룩하신 영을 근심하게 했습니다” 개역성경에는 더 분명하게 “그들이 반역하여 주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였으므로 그가 돌이켜 그들의 대적이 되사 친히 그들을 치셨더니” 라고 말씀하십니다.
성령님을 근심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을 반역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반역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에 불순종하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을 알려 주시고, 말씀 속에서 해야 할 일, 하지 말아야 할 일 깨닫게 하시고 인도하십니다. 그런데 그 인도하심, 깨닫게 하심, 감동하심을 따르지 않을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할 때 성령님께서 반복하여 알려 주시고, 그렇게 따르지 않을 때 책망하시고 더 나아가 징계도 하십니다. 즉 어려운 일도 만나게 하셔서 정신 차리게 하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성령을 거스리는 자들이 있습니다. 회개하지 않는 자들이 있습니다. 계속해서 교만함으로 굳은 마음으로 거부하고 이사야 63:10절과 같이 반역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성령을 슬프게 하는 것을 넘어 성령을 거스리고 반역하는 자들, 회개함이 없는 자들이라면 구원 받지 못한 자들일 경우가 있습니다.
사도행전 7장을 보면 스데반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지 않는 자들,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고 반역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한 자들, 더 나아가 잘못된 길, 우상의 길, 멸망의 길로 가는 죄 가운데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돌이키기 위해 회개의 복음을 전한 선지자들을 죽인 자들에 대해 이렇게 선포합니다.
사도행전 7:51-53절입니다.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이여, 당신들은 언제나 성령을 거역하고 있습니다. 당신네 조상들이 한 그대로 당신들도 하고 있습니다. 당신들의 조상들이 박해하지 않은 예언자가 한 사람이라도 있었습니까? 그들은 의인이 올 것을 예언한 사람들을 죽였고, 이제 당신들은 그 의인을 배반하고 죽였습니다. 당신들은 천사들이 전하여 준 율법을 받기만 하고, 지키지는 않았습니다”
스데반이 책망한 자들은 그 당시 하나님을 안다고 하고, 믿는다고 하고, 말씀대로 산다고 하는 종교 지도자들이었습니다. 스스로 하나님 앞에 의로운 삶을 살고, 구원 받았다고 생각했던 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예수님께서 그렇게 책망하고 저주까지 한 바리새인들이 그러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영, 성령님이 없는 육의 속한 자들이었고 구원 받지 못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러한 종교인들이 초대 교회 시대에도 많았고 지금 이 시대에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유다서를 보면 지금까지 그러한 구원 받지 못하고, 성령을 모시지 않은 거짓 성도들, 거짓 선생들, 거짓 선지자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알려 주면 1:19절에 “이 사람들은 분열을 일으키는 자들이며, 성령을 받지 않고 본능대로 사는 자들입니다” 라고 분명하게 알려 줍니다. 안타깝게도 어느 시대에나 교회 안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구원 받지 못한 성령님을 모시지 않는 자들이 있습니다.
진정 구원 받은 자, 성령님을 모신 자라면 비록 성령님의 인도하심과 명령에 불순종할 때가 있을지라도 성령님의 책망과 깨닫게 하심에 돌이키게 되어 있습니다. 잠시 성령님을 슬프게 하는 일들을 할지라도 회개함으로 나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늘 돌아보아야 합니다. 내가 진정 구원 받은 자인지, 성령님을 모시고 그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는 자인지, 더 나아가 나는 성령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인지 슬프게 하고 있는지 살펴야 합니다.
본문 30절에 “하나님의 성령을 슬프게 하지 마십시오” 라고 명령하심이 있지만 데살로니가전서 5:19절에는 “성령을 소멸하지 마십시오.” 라고 비슷한 명령을 하십니다. 성령을 소멸하지 말라는 명령은 주님의 뜻대로, 말씀대로 순종하려는 성령님이 주시는 마음과 감동하심, 주님을 위해, 주의 몸 된 교회를 섬기려는 성령님이 주시는 마음의 불입니다. 그러한 성령의 불을 꺼뜨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읽고, 예배하며 기도할 때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행하라, 하자 말라고 깨닫게 하시는 성령님이 주시는 마음이 있습니다. “이렇게 해야 되는구나. 그렇게 해서는 안되는 구나” 라고 깨닫게 하실 때 그 마음의 불을 끄지 말라는 것입니다. 즉 깨닫게 하시고, 감동하신 말씀대로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많은 경우 성령님의 감화감동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말씀대로, 깨닫게 하신대로 행하지 않을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다음에 하지라고 미루기도 하고, 깨닫게 하신 말씀대로 하자니 인간적으로 너무 손해 보는 것 같고, 불편하고 힘들것 같아서 하지 않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마태복음 13장에 나오는 네가지 밭에서 가시덤불에 떨어진 씨앗과 같이 뿌리를 내리고 싹이 올라오려고 하지만 가시덤불, 즉 염려와 육신의 욕심, 부에 대한 붙듬으로 인해 말씀대로 순종하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하나님의 말씀과 마음, 뜻을 성령님께서 알려 주셨을 때 불순종하여 슬프게 하는 자, 성령의 불을 소멸하는 자가 아닌 그 말씀, 그 마음, 그 뜻대로 믿음으로 순종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 계속해서 성령의 불이 마음에서 타올라 주님의 뜻을 이루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로 설 수 있도록 성령의 불, 성령의 충만함, 그리고 말씀대로 순종하는 믿음을 달라고 기도하며 나아가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