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에베소서 5:21-24
21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서로 순종하십시오.
22 아내 된 이 여러분, 남편에게 하기를 주님께 하듯 하십시오.
23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가 되심과 같이, 남편은 아내의 머리가 됩니다. 바로 그리스도께서는 몸의 구주이십니다.
24 교회가 그리스도께 순종하듯이, 아내도 모든 일에 남편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
어제 나눈 본문의 말씀이지만 다시한번 하나님께서 부부의 관계를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관계로 설명하신 부분을 나누고자 합니다. 22절의 말씀에 아내들에게 하나님께서 “남편에 하기를 주님께 하듯 하십시오” 라고 명령하십니다. 사실 22절의 말씀을 우리가 그동안 사용해 왔던 개역성경에는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시대에 복종하라는 말은 거부감이 듭니다. 복종을 요구하는 관계는 군대 같은 특수한 집단에서 상하관계가 분명한 계급사회에서 사용되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시대에 복종을 강요하는 것은 구시대적이고 가부장적이며 부정적인 말로 들립니다. 그리고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라고 조언이나 권면이 아닌 명령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오늘날 이러한 성경의 명령이 상식적이지 않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복종하라고 하신 명령은 굴종이 아닙니다. 어떤 의견도 제시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창세기를 보면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하와를 배필로 허락하십니다. 창세기 2:18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아내는 남편의 돕는 배필입니다.
돕는’이라고 히브리 원어의 뜻은 영어로 번역한다면 essential 이라는‘필수적인’이라는 뜻입니다. 놀랍게도 시편 33:20절 “우리 영혼이 여호와를 바람이여 그는 우리의 도움과 방패시로다”에서 도움이라는 말이 창세기에서 돕는 배필에서 사용된 동일한 말입니다. 즉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불완전한 것처럼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돕는 배필이라는 창세기의 2:18절의 말의 원어가 “마주하다, 상응하다” 라는 서로 동등한 관계성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그렇기에 이처럼 아내를 돕는 배필이라고 하신 뜻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도우시는 것처럼, 남자와 여자가 부부로서 서로 부족함을 돕고 채워 주는 온전한 상호 관계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22절에 아내들에게 “남편에게 주께 하듯 복종하라” 는 명령을 하시기 전에 21절에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서로 순종하십시오” 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5:13에서도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 하라”고 말씀하기도 한다. 기본적으로 우리는 서로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함이 마땅합니다. 복종이라는 말의 의미는 나의 권리, 나의 뜻, 원함을 타인의 뜻을 위해 내려놓은 것입니다.
피차 복종하는 것은 맞지만 아내 된 자들에게 남편에게 복종하라고 명하신 것은 먼저는 창조의 질서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남자를 먼저 창조하신 후에 여자를 돕는 배필로 세우셨습니다. 이 질서를 23절에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가 되심과 같이, 남편은 아내의 머리가 됩니다”이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머리는 몸의 지체 중에 명령을 내리는 부분입니다. 몸은 여러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고 모든 몸의 부분이 다 중요합니다. 머리가 특별나게 더 중요하거나 가치 있다고 말할 수 없지만 머리에서 명령하는대로 몸이 움직여야 몸이 하나가 되어 정상적으로 움직일 수 있습니다.
23절에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가 되심과 같이, 남편은 아내의 머리가 됩니다”이라고 표현한 것은 머리의 명령을 몸이 따르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제시하며 다시금 아내들에게 모든 일에 남편에게 복종할 것을 강조한 것입니다.
그리고 24절에 “교회가 그리스도께 순종하듯이, 아내도 모든 일에 남편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라고 다시 한번 교회와 그리스도의 관계를 설명합니다. 교회가 그리스도께 순종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왜 순종해야 하는지 설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 이유는 교회된 우리가 예수님을 구세주와 주님으로 믿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참된 교회, 참된 성도는 그리스도께 복종할지 말지를 고민하지 않습니다.
믿고 구원 받은 자라면 주님께 복종하려는 태도는 당연합니다. 어떤 납득할 만한 설명이 있고, 내가 순종하고 따를만하면 따르겠다고 한다면 그것은 주님을 믿는 자의 태도가 아닙니다. 예수님과 나의 관계는 여기서는 주인과 종의 관계이기에 종이 주인에게 복종하는 것이 마땅한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주님께 가져야할 태도입니다. 마찬가지로 아내도 남편에게 그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아내에게 남편에게 복종하라는 명령은 남자를 더 높이고 여자를 억압하라고 주신 명령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아담과 하와에게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명령하신 그 명령에 복종하는 것이 행복을 유지할 수 있는 길이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이 질서를 무시했을 때, 복종하지 않았을 때 타락하게 되었습니다.
타락한 이후에 이 시대를 보면 부부간에 서로 서로 복종하는 것이 아닌 주도권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든 내가 손해 보지 않는 결혼 생활을 하기 위해, 상대방이 내게 복종하게 하려고 합니다. 상대방이 내게 복종만 하면 관계가, 가정이 잘 될 것이라는 사단의 속임수에 속은 것입니다.
남편을 주님처럼 순종했던 여인이 성경에 여러 사람 나옵니다. 그 중에 한 사람이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였습니다. 베드로전서 3:5-6 “전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살던 거룩한 여자들도 이와같이 자기를 단장하고 자기 남편에게 순복하였습니다.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인이라고 부르면서 그에게 순종하던 것과 같습니다”사라는 남편 아브라함을 주님이라 부르며 순종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잘 살펴보면 사라가 아브라함에게 주인이라고 부르며 순종했던 것이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요, 인격적으로 흠이 없고 정말 좋은 남편으로 살았기 때문이 아니었다는 것을 아십니까? 아브라함은 아내 사라에게 정말 많은 상처와 실수를 했던 남편이었습니다. 가나안 땅에 흉년이 들어서 먹고 살기 힘드니까 이집트로 피난을 갑니다. 그런데 사라가 너무 예쁘다는 소문이 이집트 왕 바로에게 까지 들려서 사라를 데려오라는 명령이 떨어집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이 사라가 자신의 아내라는 것을 바로 왕이 알면 자기를 죽이고 아내를 데리고 갈까봐 사라에게 여동생이라고 하라고 하고 자신도 그렇게 말합니다. 그런 일을 한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다른 지방에 갔을 때 또 한번 아비멜렉이라는 족장에게 똑같이 합니다.
아내 사라가 자신이 기를 갖지 못하자 인간적인 생각으로 남편 아브라함에게 내가 아기를 갖지 못하니 자기 여종 하갈과 잠자리를 해서 아기를 가지면 어떻겠냐고 묻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전혀 그 제의를 거절하지 않고 바로 행합니다. 사라는 남편으로 존중하지 못할 일들과 실수를 많이 함에도 불구하고 남편을 주라 칭했습니다. 남편에게 순복했고 남편의 뜻에 순복했습니다.
어떻게 사라가 그렇게 할 수 있었습니까? 당장 눈에 보이는 아브라함만 바라보았으면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라는 지금은 실수하고 존경받지 못할 많은 일들을 했지만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다듬어 가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전서 3:5-6 “전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살던 거룩한 여자들도 이와같이 자기를 단장하고 자기 남편에게 순복하였습니다.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인이라고 부르면서 그에게 순종하던 것과 같습니다”모든 일에 어떻게 남편의 권위에 복종할 수 있습니까? 남편을 존중할 수 있습니까? 주님을 바라볼 때 가능한 것입니다. 남편을 통제하고 계시는 주님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아직은 남편이 불안전 하지만 그런 남편을 통해서도 나에게 역사하시는 배후에 계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 권위에 순복하라는 것입니다.
23절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가 되심과 같이 남편은 아내의 머리가 됩니다. 바로 그리스도께서 몸의 구주이십니다”남편은 아내의 머리요 남편의 머리는 그리스도시오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머리입니다. 그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내들에게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라고 명하십니다. 하나님의 명령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명령이시고 그 명령대로 순종할 때 축복과 변화가 시작됩니다. 감정에 따라 순종하고 존중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지 않은 상태에 있을지라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바라보며 내 남편에게 모든 일에 힘이 되어 주고, 모든 일에 격려하고,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만은 남편을 존중하고 인정해 줄 때 행복한 결혼 생활이 시작되는 계기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며 남편을 인정하고 존중하고 순종하는 아내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