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사무엘하 6:1-5

1 다윗이 다시 이스라엘에서 정병 삼만 명을 징집하여서,
2 그들을 모두 이끌고 유다의 바알라로 올라갔다. 거기에서 하나님의 궤를 옮겨 올 생각이었다. 그 궤는 그룹들 위에 앉아 계신 만군의 주님의 이름으로 부르는 궤였다.
3 그들이 언덕 위에 있는 아비나답의 집에서 하나님의 궤를 꺼내서, 새 수레에 싣고 나올 때에, 아비나답의 두 아들 웃사와 아히요가 그 새 수레를 몰았다.
4 그들이 산에 있는 아비나답의 집에서 하나님의 궤를 싣고 나올 때에, 아히요는 궤 앞에서 걸었고,
5 다윗과 이스라엘의 모든 가문은, 온 힘을 다하여서, 잣나무로 만든 온갖 악기와 수금과 거문고를 타며, 소구와 꽹과리와 심벌즈를 치면서, 주님 앞에서 기뻐하였다.

——————————————————–

사무엘하 6장은 바로 전장인 5장과 연결된 사건입니다. 사무엘하 5장을 보면 사울 왕이 죽은 후에 사울왕의 아들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추대한 세력과 다윗과의 전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울왕의 아들이었던 이스보셋이 죽임을 당하면서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가 다윗이 있는 헤브론에 와서 다윗에게 “하나님께서 당신을 이스라엘의 주권자 즉 왕이 되게 하신 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라고 하며 드디어 이스라엘의 모든 장로들이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습니다. 5:4절 말씀을 보니까 “다윗이 삼십세에 위에 나가서 사십년을 다스렸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울왕의 시기와 암살을 피해 도망과 망명 생활을 10여년간 한 후에 드디어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됩니다.

수많은 고난과 환난을 지나면서 이제 왕이 된 다윗. 그 다윗이 왕이 된 후에 그가 한 일이 5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윗이 왕이 된 후에 먼저 유대 땅에 있던 예루살렘 성을 여부스 사람들에게로부터 되찾는 일을 합니다. 예루살렘을 되찾은 후에 블레셋에게 빼앗겼던 이스라엘의 땅을 먼저 찾으므로 나라를 먼저 안정시키는 일을 합니다. 블레셋과 여러번의 전쟁에서도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승리함으로 다윗이 더욱 강성해지고 이스라엘 나라가 안정되고 강성하게 되었습니다.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향해 내 마음에 합한 자 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13:21-22절을 보면 “그 후에 저희가 왕을 구하거늘 하나님이 베냐민 지파 사람 기스의 아들 사울을 사십 년간 주셨다가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거하여 가라사대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하시더니” 하나님께서는 다윗이 삶을 보면서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생각하면서 그 사람이 어떠한 사람인가 한마디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을 생각하면 부정적인 표현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정말 믿지 못할 사람이다” “말로만 일하는 사람이다” “참 잘 삐지는 사람이다” “고집 쎈 사람이다” “함께 하면 안되는 사람이다”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은 “저 사람 참 부지런한 사람이다” “겸손한 사람이다” “믿을만한 사람이다” “열정이 있는 사람이다” “편한 사람이다” 라는 좋은 표현을 받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다윗을 생각하면서 하나님께서는 다윗은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다. 다윗은 내 마음에 꼭 맞는 사람이다.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다. 나의 기쁨이 되는 사람이다 라는 말을 하셨습니다. 다윗이 하나님께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다” 라는 말을 들을 수 있었던 여러 가지 많은 이유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저는 본문을 통해서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었던 한 가지 이유를 함께 나누기를 원합니다.

왜 하나님께서 다윗을 향해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다 라고 했습니까? 오늘 본문 6장을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이 나라를 안정시킨 후에 가장 먼저 한 일이 무엇이었는가를 보면 됩니다. 다윗이 나라를 안정시킨 후에 가장 먼저 한일은 하나님의 법궤를 찾아 예루살렘 성으로 가져오는 일이었습니다. 1-2절입니다. “다윗이 다시 이스라엘에서 정병 삼만 명을 징집하여서, 그들을 모두 이끌고 유다의 바알라로 올라갔다. 거기에서 하나님의 궤를 옮겨 올 생각이었다. 그 궤는 그룹들 위에 앉아 계신 만군의 주님의 이름으로 부르는 궤였다”

다윗은 수도인 예루살렘성을 함락하고 나라가 안정되자마자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삼만명을 골랐습니다. 왜 삼만명을 모았습니까? 하나님의 법궤를 찾기 위해서. 그리고 그 법궤를 자신이 거하고 있는 예루살렘 성으로 가져오기 위해서 삼만명을 모았다는 것입니다. 법궤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 있는 상자입니다. 다윗은 자신이 왕이 된 후에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을 찾고 가까이 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법궤를 찾는 일을 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하나님의 마음 드는 행동이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삶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삶입니다. 하나님을 어떻게 가까이 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는 삶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이었습니다.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의 특권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이집트에서 나올 때 시내산에서 모세를 통하여 하나님의 마음과 뜻이 담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세상과 구별된 삶을 보여주는 율법과 계명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 위해서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을 가깝게 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 있는 하나님의 법궤가 사사시대, 엘리 제사장이 있었던 시절에 블레섹과의 전쟁에서 패하자 하나님의 말씀, 즉 십계명이 새겨진 돌판이 담긴 법궤만 들고 앞서면 이길 줄 알고 아벡 전투 (삼상 4:1-5)에 가지고 갔다가 전쟁에도 패하고 하나님의 법궤를 블레셋에게 빼앗겼습니다. 그러나 블레셋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로 말미암아 법궤가 귀환되어 이스라엘의 가장 변방이었던 (예루살렘에서 서쪽 약 15km 지점에 위치하는) 바알레 유다에 70년간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방치되었던 것만 아니라 법궤가 어디에 있는지조차도 모를 정도로 무관심하게 버려져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다윗은 왕이 된 후에 자신을 위해서 또한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하나님의 법궤를 찾아 이스라엘의 중심지인 예루살렘 성에 가져오기를 원했습니다. 그런데 알아보니까 법궤가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삼만명이나 되는 사람을 동원해서 법궤를 찾아 예루살렘 성으로 가져오는 일을 명한 것입니다.

다윗이 법궤를 찾아오려고 했던 것은 엘리 시대의 사람들처럼 법궤를 찾아서 앞으로 들고 나가면 전쟁에 이기고 축복을 받을 것이라는 미신적인, 이기적인 생각에서 법궤를 찾았던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기 위해서 이스라엘 왕이 되었기에 예배를 회복하고,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을 바로 알고 순종하기 위해서 법궤를 찾았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다윗의 모습을 시편 132:1-7 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여 다윗을 위하여 그의 모든 근심한 것을 기억하소서. 저가 여호와께 맹세하며 야곱의 전능자에게 서원하기를 내가 실로 나의 거하는 장막에 들어가지 아니하며 내 침상에 오르지 아니하며 내 눈으로 잠들게 아니하며 내 눈꺼풀로 졸게 아니하기를 여호와의 처소 곧 야곱의 전능자의 성막을 발견하기까지 하리라 하였나이다. 우리가 그것이 에브라다에 있다 함을 들었더니 나무 밭에서 찾았도다 우리가 그의 성막에 들어가서 그 발등상 앞에서 경배하리로다”

다윗이 왕이 된 후에 서원하고 맹세한 것이 하나님의 법궤, 하나님의 성막을 발견하기까지 침상에 올라가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있는 하나님의 법궤를 찾아 올 때까지 내가 편하게 잠을 자지 않겠다고 하나님께 맹세하고 서원했다는 것입니다.

성경 어디를 보아도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너는 이제 잃어버린 내 법궤를 찾아와라” 라고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기록이 없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시키지도 않았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회복하는 것, 예배를 회복하는 것이 왕으로서, 이 나라를 부흥케 하기 위해서 가장 우선으로 해야 할 것임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왕이 되었기에 내가 살 집을 멋지게 지어야지, 그동안 고생 많이 했는데 이제 인생이 폈다고 파티와 연회를 즐기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시키지도 않았는데 하나님을 위해, 하나님의 뜻대로 더 바로 서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이 담긴 법궤를 찾아 오려고 자원하여 애를 썼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을 보면 하라고 해도 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하라고 해야지만 겨우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누가 하지 말라고 해도 미리 솔선해서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기쁨이 되겠습니까?

성도들 가운데도 보면 어떤 성도는 하라는 봉사는 하지 않고 뒤에서 남이 하는 일에 대해서 불평만 하고 이것이 잘못됐다 이렇게 해야 한다고 불평, 비난, 지적만 하는 성도가 있습니다. 어떤 분은 봉사를 부탁에 부탁을 해야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성도는 내가 교회를 위해서 해야 할 일이 없는가 알아서 자원해서 섬기는 분들이 있습니다. 어떤 분이 기쁨이 되겠습니까?

하나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마음에 들어 하는 사람이 어떠한 사람일까요? 다윗과 같은 사람입니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이 나라의 말씀의 회복을 위해서, 예배의 회복을 위해서 법궤를 찾아오기 위해서 삼만명의 사람을 동원하는 헌신을 보였습니다. 법궤를 찾아오지 않으면 나는 잠도 자지 않겠다고 맹세를 했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의 법궤가 에브라다, 바알레유다에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 법궤를 찾아서 예루살렘으로 가져오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있는 법궤를 찾았고 그 법궤가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올 때 다윗이 어떠한 행동을 했습니까? 16절에 “다윗과 온 이스라엘 족속이 즐거이 부르며 나팔을 불고 여호와의 궤를 메어 오니라” 찬양을 했습니다. 나팔을 불었습니다. 더 나아가 다윗은 에봇을 입고 힘있게 춤을 추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기쁘고 신나게 춤을 추었는지 춤을 추다가 옷이 다 벗어졌는데도 그것도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기뻐했다는 것입니다.

사울왕은 어떠했습니까? 약 40년간 이스라엘을 다스렸지만 하나님의 법궤를 찾아오려는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내 방법대로 내 법대로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그런데 왜 다윗은 하나님의 법궤를 찾아 자신이 있는 예루살렘 성으로 가져오게 했습니까?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있기를 원했고 하나님의 말씀의 부흥이 이스라엘 땅에 있기를 원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를 원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국경선에서 오랫동안 머물렀던 법궤를 찾아 예루살렘으로 옮기려고 했던 것은 다윗은 삶속에 하나님을 중심에 모시겠다는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이스라엘 나라의 중심이 되게 하려는 다윗의 마음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시편 119편에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다” 라고 고백했습니다. 다윗은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의 중요성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됨을 알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왕이 된 후에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있는 하나님의 법궤는 찾는 일에 힘썼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다윗을 기뻐하시고 내 마음에 합한 자라고 하시지 않으셨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는 삶,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 말씀 중심으로 살아가는 삶을 살아가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우리가 참 바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점에서 우리가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실까요? 어떠한 삶을 살아야 우리가 후회 없는 삶, 열매 맺는 삶을 살 수 있을까요? 그것은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을 가깝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법궤를 찾는 일에 힘을 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중심에 모셔지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 삶의 중심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 위해서 하나님의 법궤를 예루살렘에 옮긴 삶이 우리의 삶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ategory말씀 묵상
Follow 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