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호세아 11:1-7

1 “이스라엘이 어린 아이일 때에, 내가 그를 사랑하여 내 아들을 이집트에서 불러냈다.
2 그러나 내가 부르면 부를수록, 이스라엘은 나에게서 멀리 떠나갔다. 짐승을 잡아서 바알 우상들에게 희생제물로 바치며, 온갖 신상들에게 향을 피워서 바쳤지만,
3 나는 에브라임에게 걸음마를 가르쳐 주었고, 내 품에 안아서 길렀다. 죽을 고비에서 그들을 살려 주었으나, 그들은 그것을 깨닫지 못하였다.
4 나는 인정의 끈과 사랑의 띠로 그들을 묶어서 업고 다녔으며, 그들의 목에서 멍에를 벗기고 가슴을 헤쳐 젖을 물렸다.
5 이스라엘은 이집트 땅으로 되돌아가게 될 것이다. 이스라엘은 앗시리아의 지배를 받게 될 것이다. 그들이 나에게로 돌아오기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6 전쟁이 이스라엘의 성읍을 휩쓸고 지나갈 때에, 성문 빗장이 부서질 것이다. 그들이 헛된 계획을 세웠으니 칼이 그들을 모조리 삼킬 것이다.
7 내 백성이 끝끝내 나를 배반하고, 바알을 불러 호소하지만, 그가 그들을 일으켜 세우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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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구약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택하시고 부르시고 그들을 사랑하시는 그 사랑이 얼마나 큰 사랑인지를 볼 수 있습니다. 특별히 오늘 읽은 호세아 11장 1-7절에 그들을 구원하시고 축복하시는 축복의 하나님을 버리고 채우지 못하는 물 웅덩이와 같은 우상을 섬기며 죄악 가운데 오래동안 돌이키지 않는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볼 수 있습니다.

먼저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어떻게 부르시는가를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1절을 보면 “이스라엘이 어린 아이일 때에, 내가 그를 사랑하여 내 아들을 이집트에서 불러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내 아들’ 이라고 부릅니다. 그냥 내 아들이 아닌 사랑하는 내 아들이라고 부르십니다.

우리가 그동안 살펴본 호세아서를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어떻게 사랑하시는지를 여러 가지 모습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호세아 1장부터 3장을 보면 창녀였던 고멜을 사랑하여 아내로 맞아 들이라고 하시고, 아들과 딸을 낳고 살아가는 축복된 가정을 버리고 외간남자를 따라 떠났다가 다시 종으로 살아가는 정절을 지키지 않고 배역한 고멜을 용서하고 전 재산을 다 털어서 값을 치루어 데리고 오는 놀라운 사랑을 보여 줍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죄된 이스라엘 백성들을 사랑하신 사랑의 모습이셨습니다. 더 나아가 독생자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어 우리의 죄 값을 십자가 위에서 자신의 목숨을 내어 주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시고 자녀 삼아 주신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의 모습이십니다.

그러한 사랑을 처음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셨음을 다시 과거의 역사를 상기 시키시어 깨닫게 하시는 것입니다. 1절을 다시 보면 “이스라엘이 어린 아이일 때에, 내가 그를 사랑하여 내 아들을 이집트에서 불러냈다”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어린 아이 때부터 사랑하셨다고 하십니다. 어린 아이 때부터라고 한다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이삭과 야곱, 그리고 그의 열두 아들입니다. 그리고 그 아들들의 자손을 통하여 이루어진 히브리 지파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사실 소수였고 연약한 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부르셨습니까? 왜 수많은 민족들 가운데 이스라엘 민족을 택하시고 부르셨습니까? 그들이 다른 누구보다 특별나고, 의롭고, 강하고, 빼어난 무엇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까? 아닙니다.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만 보아도 그의 아버지와 가족들은 우상을 만들어 파는 집안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목이 곧은 백성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택하시고 부르시고 더 나아가 이집트에서 400년간 노예로 살아가던 그들을 구원하신 이유는 단 한 가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었습니다. 신명기 7:7-8절에 그 이유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 당신들을 사랑하시고 택하신 것은, 당신들이 다른 민족들보다 수가 더 많아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당신들은 모든 민족 가운데서 수가 가장 적은 민족입니다. 그런데도 주님께서는 당신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당신들 조상에게 맹세하신 그 약속을 지키시려고, 강한 손으로 당신들을 이집트 왕 바로의 손에서 건져내시고, 그 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 내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내 아들, 내 자녀’ 라고 하시며 이집트에서 불러내셨습니다. 놀라운 은혜요 사랑인 것입니다. 그 사랑은 단지 구원하신 것만이 아닌 3절을 보면 “나는 에브라임에게 걸음마를 가르쳐 주었고, 내 품에 안아서 길렀다. 죽을 고비에서 그들을 살려 주었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시기 위해 광야의 길을 인도하여 주셨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광야에서 먹이시고 마시게 하시고, 더위와 추위에서 보호하시고, 강한 민족들의 공격을 물리치게 하시고, 정복하게 하셨습니다.

또한 4절을 보면 “나는 인정의 끈과 사랑의 띠로 그들을 묶어서 업고 다녔으며, 그들의 목에서 멍에를 벗기고 가슴을 헤쳐 젖을 물렸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여 보여 주는 모습처럼 그들의 잘못과 죄에 대해서 엄하게 징계하고 매를 들기보다 온유함과 오래 참음의 사랑으로 그들을 이끌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목에서 멍에를 벗겼다는 의미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명하신 율법과 명령들이 그들을 옥좨는 것이 아닌 그들이 그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아가면 자유함과 평강을 누릴 수 있는 말씀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마태복음 11:28절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나한테 배워라. 그리하면 너희는 마음에 쉼을 얻을 것이다.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과 은혜로 택함을 받고 절대 얻을 수 없는 이집트 노예생활에서 구원함을 받아 새로운 땅, 젖과 꿀이 흐르는 좋은 가나안 땅으로 인도함을 받고 누리게 된 축복을 받은 백성들이었습니다. 그런 사랑, 그런 축복을 어떤 자격이나 공로가 아닌 은혜로 받고 누리고 산다면 평생 감사하며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은혜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와 여러분들도 하나님의 그 놀라운 택하심의 은혜와 사랑으로 죄 용서함을 받고, 하나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 보호하심과 하나님의 자녀 됨의 특권, 하늘나라를 기업으로 받는 약속을 받고 이 땅에 살아가고 있다면 하나님께 늘 감사하며, 그 분의 뜻과 원하시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명령과 율법을 멍에, 올무로, 무겁고 귀챦은 것을 여겼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길이 아니 내가 하고 싶은대로, 내가 하고 싶은대로 하는 우상의 길을 택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그 놀라운 사랑과 축복을 잊은 것입니다. 배은망덕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로 아는 지식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잊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배반하고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선택과 삶의 결과를 5절에 “이스라엘은 이집트 땅으로 되돌아가게 될 것이다. 이스라엘은 앗시리아의 지배를 받게 될 것이다. 그들이 나에게로 돌아오기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다시 고통스럽고 절망 속에 처절한 노예로 전락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6절에 “전쟁이 이스라엘의 성읍을 휩쓸고 지나갈 때에, 성문 빗장이 부서질 것이다. 그들이 헛된 계획을 세웠으니 칼이 그들을 모조리 삼킬 것이다” 라고 앗시리아 제국의 침략으로 온 나라와 도시가 무너지고 살육을 당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를 다시 한번 7절에 분명하게 알려 주십니다. “내 백성이 끝끝내 나를 배반하고, 바알을 불러 호소하지만, 그가 그들을 일으켜 세우지 못할 것이다” 생명과 축복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 사랑과 은혜를 베풀어 주신 하나님을 버리는 배신을 하고 터진 웅덩이 같은 우상을, 세상을, 자기 자신을 믿고 살아가는 죄는 결국 영원한 심판, 다시는 회복되고 돌이킬 수 없는 멸망의 길임을 다시 한번 강력하게 경고하시는 말씀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받은 자임을 깊이 깨닫고 고린도후서 5장 14절에 바울이 하나님을 섬기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 쉼 없이 살아가는 동기를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라고 고백한 것처럼 하나님을 바로 아는 지식과 받은 놀라운 은혜와 사랑, 축복이 우리의 삶을 바르게 하나님을 섬기는 원동력이 되기를 기도하기 원합니다.

Category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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