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창세기 7:1-10

1 주님께서 노아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보니, 이 세상에 의로운 사람이라고는 너밖에 없구나. 너는 식구들을 다 데리고, 방주로 들어가거라.
2 모든 정결한 짐승은 수컷과 암컷으로 일곱 쌍씩, 그리고 부정한 짐승은 수컷과 암컷으로 두 쌍씩, 네가 데리고 가거라.
3 그러나 공중의 새는 수컷과 암컷 일곱 쌍씩 데리고 가서, 그 씨가 온 땅 위에 살아 남게 하여라.
4 이제 이레가 지나면, 내가 사십 일 동안 밤낮으로 땅에 비를 내려서, 내가 만든 생물을 땅 위에서 모두 없애 버릴 것이다.”
5 노아는 주님께서 명하신 대로 다 하였다.
6 땅 위에서 홍수가 난 것은, 노아가 육백 살 되던 해이다.
7 노아는 홍수를 피하려고, 아들들과 아내와 며느리들을 데리고, 함께 방주로 들어갔다.
8 정결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과, 새와 땅 위를 기어 다니는 모든 것도,
9 하나님이 노아에게 명하신 대로, 수컷과 암컷 둘씩 노아에게로 와서, 방주로 들어갔다.
10 이레가 지나서, 홍수가 땅을 뒤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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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산 위에서 무려 120년 동안 방주를 지었습니다. 노아가 그렇게 큰 방주를 산 위에서 그렇게 오랫동안 만드는 것은 누가 봐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비가 내린 적이 없는데 큰 홍수가 일어나 세상이 멸망할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방주를 만들라는 하나님이 명령대로 하고 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렸을 때 분명 노아를 조롱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노아는 그러한 조롱 속에서도 그의 가족들과 함께 하나님께서 지으라고 하신 방주를 만들었습니다. 이것이 참된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은 많은 경우 합리적이지 않습니다. 이해되지 않고 인간적인 상식과 기준에 맞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할 때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에 행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니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결정입니다. 내가 믿기로 결정하는 것입니다.

노아는 하나님을 진정 믿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홍수를 대비하여 만들라고 한 방주를 하나님께서 알려 주신대로 120년간에 걸쳐 만든 것입니다. 그렇기에 1절에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 노아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보니, 이 세상에 의로운 사람이라고는 너밖에 없구나”

하나님께 의롭다 칭함을 받는 것은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삶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향하여 의인이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의 삶을 보면 완벽하지 않았습니다. 순간 순간 인간적인 생각과 판단으로 해서는 안되는 실수를 여러번 합니다. 아들을 얻기 위해 세상의 방법을 제시한 아내 사라의 말을 듣고 그의 여종 하갈을 통하여 이스마엘을 얻습니다. 하나님께서 명하지 않으셨는데 가뭄으로 하나님께서 머무라고 한 가나안 땅을 떠나 이집트로 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의롭다고 하신 것은 하나님 말씀과 뜻대로 살고자 하는 순종의 모습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노아의 의로움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주이시며 생명을 주신 분이시고 나의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닫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 말씀대로 순종하는 삶을 살려고 애썼다는 것입니다. 그 믿음을 하나님께서 의롭다 여기신 것입니다.

노아가 그러한 의인이었기에 하나님께서 노아를 통해 구원을 계획하시고, 방주를 만들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그동안 노아가 그러한 의인의 삶, 하나님을 믿고 말씀대로 순종하는 삶을 살았기에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산 위에 그렇게 큰 방주를 만들라고 하신 명령대로 큰 홍수로 심판하실 것을 믿고 방주를 만들었고 결국 노아의 가족들만이 방주에 들어가 구원을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의 삶이 노아와 같이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의인이 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창조주이시며, 생명의 주님이시고, 우리를 사랑하고 축복하시며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하시는 주님이심을 믿고 그 말씀과 명령대로 믿음으로 순종하며 살아가는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2-3절에 하나님께서 방주 안으로 들어가는 노아에게 이러게 명하십니다. “모든 정결한 짐승은 수컷과 암컷으로 일곱 쌍씩, 그리고 부정한 짐승은 수컷과 암컷으로 두 쌍씩, 네가 데리고 가거라. 그러나 공중의 새는 수컷과 암컷 일곱 쌍씩 데리고 가서, 그 씨가 온 땅 위에 살아 남게 하여라”바로 전장인 창세기 6:19절을 보면, 암수 한 쌍씩 남겨두게 하십니다. 그런데 여기에 보면 “정결한 짐승은 암수 일곱씩” 남기게 하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이유는 바로 제사 때문입니다. 짝을 지어 데리고 들어간 이유는 종의 보존을 위한 것이지만, 정결한 짐승 일곱 쌍을 데려오게 하신 것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제물을 위한 것입니다.

대 홍수가 시작되었을 때 방주 밖은 큰 비와 천둥 번개, 물결이 치고 사람들의 울부짖음으로 난리였을 것입니다. 한 번 상상을 해보십시오. 방주 안에 있었던 노아와 가족들 8명이 얼마나 불안했겠습니까? 먹구름으로 가득 찬 하늘로 인해 밖은 캄캄하고, 비는 끝없이 내립니다. 배는 심하게 흔들립니다. 배는 안전할까? 비는 과연 그칠까? 과연 우리는 살 수 있을까? 라는 두려운 생각이 마음에 밀려들지 않았겠습니까?

그러할 때 분명 방주 안에서 제물로 드릴 그 새들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립니다. 예배를 드릴 때 방주를 예비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예배를 드리지 않았겠습니까? 모든 것을 준비하게 하시고, 하신 말씀 그대로 행하시는 하나님을 묵상하며 예배를 드리지 않았겠습니까? 신실하신 하나님, 말씀하신 것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다시 바라보게 되지 않았겠습니까?
그로 인하여 인간적인 두렵고 떨리는 마음이 사라지고 다시금 담대한 마음을 갖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위로하심과 인도하심으로 마음에 평강과 찬양이 터져 나오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예배가 바로 우리가 하나님께 참된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혜요 축복인 것입니다. 우리의 삶도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방주 안에 있지만 삶의 밖에는 수많은 풍랑과 폭우로 늘 흔들어 놓습니다. 우리가 부른 찬양처럼 이 세상에 근심된 일이 너무나 많습니다. 마음에 평강이 사라지고, 기쁨, 감사, 만족이 사라지고 원망, 좌절, 실망, 낙담, 분노함으로 가득하게 하는 일들이 얼마나 많이 생깁니까?

그러할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 앞에 나아가 예배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신 일들과, 하나님께서 어떠한 분이심을 묵상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을 다시 붙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고백하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내 마음을 근심하게 하고, 두렵게 하게 하고, 감사치 못하게 하는 악한 영을 떠날찌어다. 오직 성령님이 내 마음을 사로잡고,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나를 사랑하시고 붙들고 지키시며 선하게 인도하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라고 선포하며 나아가는 예배를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예배가 1년 동안 방주 안에서 보낸 노아와 그의 가족이 평안과 고요함 속에서 살아갈 수 있는 비결이었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의 삶도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통하여 평안과 고요함, 담대함으로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4-5절 말씀입니다. “이제 이레가 지나면, 내가 사십 일 동안 밤낮으로 땅에 비를 내려서, 내가 만든 생물을 땅 위에서 모두 없애 버릴 것이다.” 노아는 주님께서 명하신 대로 다 하였다.” 하나님께서 일주일간 생명 있는 동물들을 짝을 지어 방주 안으로 다 들여보내라고 하셨습니다.

그 많은 짐승들을 어떻게 7일 동안 다 방주 안으로 들여보낼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그 많은 짐승들을 일일이 잡아서 방주에 넣을 수 있겠습니까?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에게는 못하실 일이 없으신 것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동물들이 짝을 지어서 나타나 줄을 지어 와서 방주 안으로 들어 온 것입니다. 우리는 순종하고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이 명하신 일들, 우리 힘과 결단, 노력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원수를 사랑하는 것 불가능합니다. 영혼을 구원하는 것 불가능합니다. 고난 중에 기뻐하는 것 불가능합니다.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 불가능합니다. 우리가 하려고 하면 모든 게 불가능합니다. 하나님께서 명하신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집트에서 구원하시는 일, 홍해를 건너는 일,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일, 오천명을 먹이는 일,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발을 내 디딛으면 하나님께서 행하십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붙들고 기도하는 것이 “하늘의 하나님이 형통케 하십니다. 나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이 역사하십니다” 라는 믿음으로 말씀과 명령대로 순종하며 나아가기를 원합니다.

Category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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