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사사기 10:17-18, 11:1-10
17 그 때에 암몬 자손이 집결하여 길르앗에 진을 치니, 이스라엘 자손도 모여서 미스바에 진을 쳤다.
18 그 때에 백성과 길르앗의 지도자들이 서로 이렇게 말하였다. “누가 먼저 나가서 암몬 자손과 싸우겠느냐? 그 사람이 길르앗에 사는 모든 사람의 통치자가 될 것이다.”
1 길르앗 사람 입다는 굉장한 용사였다. 그는 길르앗이 창녀에게서 낳은 아들이다.
2 길르앗의 본처도 여러 아들을 낳았는데 그들이 자라서 입다를 쫓아내며 그에게 말하였다. “너는 우리의 어머니가 아닌 다른 여인의 아들이므로 우리 아버지의 유산을 이어받을 수 없다”
3 그래서 입다는 자기의 이복 형제들을 피하여 도망가서 돕이라는 땅에서 살았는데 건달패들이 입다에게 모여들어 그를 따라다녔다.
4 얼마 뒤에 암몬 자손이 이스라엘을 쳐들어왔다.
5 암몬 자손이 이스라엘을 쳐들어오자, 길르앗의 장로들이 입다를 데려오려고 돕 땅에 가서
6 그에게 말하였다. “와서 우리의 지휘관이 되어 주시오. 그래야 우리가 암몬 자손을 칠 수 있겠소”
7 그러나 입다는 길르앗의 장로들에게 말하였다. “당신들이 나를 미워하여, 우리 아버지 집에서 나를 쫓아낼 때는 언제이고 어려움을 당하고 있다고 해서 나에게 올 때는 또 언제요?”
8 그러자 길르앗의 장로들이 입다에게 대답하였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당신을 찾아온 것이오. 우리와 함께 가서 암몬 자손과 싸운다면 당신은 모든 길르앗 사람의 통치자가 될 것이오.”
9 입다가 길르앗 장로들에게 물었다. “당신들이 나를 데리고 가서 암몬 자손과 싸울 때에, 주님께서 그들을 나에게 넘겨 주신다면 과연 당신들은 나를 통치자로 받들겠소?”
10 그러자 길르앗의 장로들이 입다에게 다짐하였다. “주님께서 우리 사이의 증인이십니다. 당신이 말한 그대로 우리가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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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말씀은 입다라고 하는 사사에 대한 내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11:1절에 성경은 사사 입다를 이렇게 소개합니다. “길르앗 사람 입다는 굉장한 용사였다. 그는 길르앗이 창녀에게 낳은 아들이었다” 길르앗은 요단강 동쪽에 있는 지역입니다. 입다는 길르앗에서 태어났는데 입다의 아버지 이름도 길르앗입니다. 입다의 아버지는 신앙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본부인이 있지만 창녀를 찾아 다녔던 사람이었습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바알을 섬기든지 가나안의 우상을 섬길 때는 그 신전에 창녀들이 있었습니다. 신전에서 제사를 드린 후에 성전에서 일하는 창녀들과 관계를 갖았습니다. 다시 말해서 입다의 아버지는 우상을 섬기던 음란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한 창녀와 지속적인 관계를 가졌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태어난 아이가 바로 입다입니다. 아버지 길르앗은 입다를 집에 데려와서 키운 것 같습니다.
그러나 어느 정도 나이가 들었을 때 집에서 좇겨나게 됩니다. 11:2 “길르앗의 본처도 여러 아들을 낳았는데 그들이 자라서 입다를 쫓아내며 그에게 말하였다. 너는 우리의 어머니가 아닌 다른 여인의 아들이므로 우리 아버지의 유산을 이어받을 수 없다. 그래서 입다는 자기의 이복 형제들을 피해 도망가서 돕이라는 땅에서 살았는데 건달패들이 입다에게 모여들어 그를 따라다녔다”
성경은 간단히 1-3절에 입다의 과거를 간단히 설명하고 있지만 그의 어린 시절이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집에서 배다른 형제들에게, 또는 본처에게 눈칫밥과 모욕을 당하며 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정도 크자 형제들이 입다에게 아버지의 유산을 받을 수 없다고 내 쫓김을 당합니다. 그럴 때 아버지도 말렸다는 말이 없습니다. 더 나아가 이것이 단지 집안에서만 내 쫓은 것이 아니라 1:7절을 보면 길르앗의 장로들이 함께 입다를 길르앗 지역에서 영구히 추방해 버린 것입니다. 배다른 형제들의 편을 들고 또한 창녀의 아들이 자신들의 지역에 있다는 것이 창피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얼마나 상처가 되었겠습니까?
누구보다 많은 상처와 아픔과 분노를 품고 살아야 마땅한 사람이었습니다. 자기를 낳은 어머니와 아버지를 원망하고 자기를 버린 가족과 길르앗 장로들과 사람들 더 나아가 자기 신세를 한탄하며 하나님을 원망하며 살아도 뭐라고 할 수 없는 사람이 입다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됩니다. 암몬 족속과의 전쟁에서 위대한 승리를 거두어 이스라엘을 구원합니다. 11장을 자세히 묵상해 보면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거의 대부분 우상을 섬기고 있었던 반면 놀랍게도 입다는 하나님을 바로 알고 믿는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본문에 나오고 있지 않지만 길르앗 장로들과의 대화할 때 9절에 “주님께서 그들을 나에게 넘겨 주신다면” 이라며 자신의 능력이 아닌 주님의 도우심과 능력을 말합니다. 또한 암몬 왕에게 사절을 보내어 한 말인 27절에 “심판자이신 주님께서 오늘 이스라엘 자손과 암몬 자손 사이를 판가름해 주실 것이다” 라고 하는 말을 들어보면 입다는 분명 하나님을 믿는 신앙의 사람이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상황윤리를 말합니다. 상황윤리는 상황이 우리를 지배한다고 주장입니다. “이 사람이 죄를 지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어릴 적 상처가 많아서, 집안이 어려워서, 원래 성격이 그래서, 상황이 어려워서 이렇게 밖에 할 수 없었다”라고 인정해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것을 변명이라고 말합니다. 성도는 “상황 때문에 내가 이렇게 할 수 밖에 없었다”라고 변명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때문에 그 상황을 이기는 것이 참된 신앙입니다.
입다는 세상적으로 볼 때는 태어난 상황과 환경이 자신에게 상처와 아픔으로 원망과 분노의 삶을 살수밖에 없는 사람이었지만 그는 하나님을 믿는 신앙의 사람으로 굳게 서서 비록 이스라엘 길르앗에서 추방당하여 이방 땅 돕에 살았지만 그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지키며 강한 용사가 되어 3절을 보면 건달패들, 정확하게 자신과 같은 사람들을 이끌어 가는 리더로 세워져 갔다는 것입니다. 그 소문을 듣고 암몬 족속이 이스라엘을 쳐들어 왔을 때 창녀의 아들로 태어났고 집에서 좇겨나고 길르앗 이스라엘에서 좇아낸 입다에게 전쟁을 맡아 싸워 달라고 사람을 보낸 것입니다.
참된 신앙의 사람은 “내가 이 모양 이 꼴이 된 것은 이것 때문에, 저것 때문에, 저 사람 때문에, 내 부모가 나를 밀어 주지 않아서, 세상이, 상황 때문이다”라고 원망하지 않습니다. 남을 탓하지 않습니다. 상처 받고, 좌절하고 낙담하고 쓰러져서 원망과 불평과 탓하며 살아가는 자가 아니라 비록 상황은, 혹은 사람들은 나를 비난하고 상처를 주고 바닥으로 내리쳐도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으로 인해 굳건히 서서 강한 용사로 서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입다와 같은 자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입다는 자신의 출신 때문에 불행한 성장 과정을 겪고 어렸을 때부터 마음의 상처를 많이 받았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그런 어려움 속에서 더욱 하나님을 바라고 믿는 신앙으로 살았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 쓰임 받는, 다른 사람들도 그를 인정하고 리더로 세워주게 됩니다.
많은 아픔과 상처를 겪은 분이 있습니까? 원망과 분노와 변명과 남을 탓하는 자가 아닌 하나님을 가까이 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이 주시는 위로와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쓰러지는 자가 아니라 강한 용사로 세워지는 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