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사도행전 19:26-34

26 그런데 여러분이 보고 듣는 대로, 바울이라는 이 사람이 에베소에서뿐만 아니라, 거의 온 아시아에 걸쳐서, 사람의 손으로 만든 신은 신이 아니라고 말하면서, 많은 사람을 설득해서 마음을 돌려놓았습니다.
27 그러니 우리의 이 사업이 명성을 잃을 위험이 있을 뿐만 아니라, 위대한 아데미 여신의 신전도 무시당하고, 또 나아가서는 온 아시아와 온 세계가 숭배하는 이 여신의 위신이 땅에 떨어지고 말 위험이 있습니다.”
28 거기에 서 있는 사람들이 이 말을 듣고 격분해서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 여신은 위대하다!” 하고 소리를 질렀다.
29 그래서 온 도시는 큰 혼란에 빠졌고, 군중이 바울의 동행자들인 마케도니아 사람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붙잡아서 한꺼번에 극장으로 몰려 들어갔다.
30 바울이 군중 속에 들어가려고 하였으나 제자들이 그것을 말렸다.
31 바울에게 호감을 가진 아시아의 몇몇 고관들도 사람을 보내서, 바울에게 극장에 들어가지 말라고 권하였다.
32 극장 안에서는, 더러는 이렇게 외치고, 더러는 저렇게 외치는 바람에, 모임은 혼란에 빠지고, 무엇 때문에 자기들이 모여들었는지조차 알지 못하는 사람이 많았다.
33 유대 사람들이 알렉산더를 앞으로 밀어내니, 군중 가운데서 몇 사람이 그를 다그쳤다. 알렉산더가 조용히 해 달라고 손짓을 하고서, 군중에게 변명하려고 하였다.
34 그러나 군중은 알렉산더가 유대 사람인 것을 알고는, 모두 한 목소리로 거의 두 시간 동안이나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 여신은 위대하다!” 하고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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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의 사건은 바울이 에베소에서 전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도를 들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며 그동안 우상을 섬긴 죄를 회개하고 그들이 가지고 있던 은으로 만든 아데미 신상과 신전, 그리고 부적들을 가지고 나와 공개적으로 불태우는 부흥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에베소는 아데미 여신을 섬기고 아데미 신전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던 곳이었고, 그로 인해 데메드리오라는 세공업자와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 아데미 신상과 신전을 은으로 만들어 팔아서 많은 재물을 모아 풍족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나타나서 사람의 손으로 만든 신은 참된 신이 아니라고 하면서 복음을 전했고 예수를 믿게 된 성도들이 우상을 버리는 태우는 회개함이 나타나자 자신들의 돈벌이에 손해가 될 것에 대한 분노함으로 바울과 바울이 전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공격하기 위해서 에베소 사람들을 선동하여 공격합니다.

그들이 사람들을 선동한 내용이 27절입니다. “우리의 이 사업이 명성을 잃을 위험이 있을 뿐만 아니라, 위대한 아데미 여신의 신전도 무시당하고, 또 나아가서는 온 아시아와 온 세계가 숭배하는 이 여신의 위신이 땅에 떨어지고 말 위험이 있습니다”데메드리오라는 사람의 말을 들은 에베소 사람들이 격분했습니다. 28-29절입니다. “거기에 서 있는 사람들이 이 말을 듣고 격분해서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 여신은 위대하다!” 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래서 온 도시는 큰 혼란에 빠졌고, 군중이 바울의 동행자들인 마케도니아 사람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붙잡아서 한꺼번에 극장 으로 몰려 들어갔다”

28절에 “거기에 서 있는 사람들이 이 말을 듣고 격분해서”라고 하는데 그들이 들은 말은 데메드리오라는 은장색이 군중들을 향하여 한 말입니다. 그가 그렇게 군중들을 향해 선동하는 말을 한 동기는 다른 것이 아닌 자신들의 돈벌이 때문이었습니다. 바울 때문에, 바울이 전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때문에 우리가 돈을 벌지 못한다고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군중들의 심리를 이용하여 에베소 시민들이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아데미 여신, 에베소 도시를 풍요롭게 하고 수호한다고 믿고 있는 시민들에게 바울이 아데미 신이 헛된 신이라고 업신여기고 무시한다고 에베소 시민들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말을 한 것입니다.

우리가 경험하지만 우리 안에 있는 죄성은 우리의 자존심을 건드리면 폭발합니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 내가 주장하고 있는 것이 틀리다고 하면, 거짓이라고 하면 견디지 못합니다. 데메드리오는 그들이 만들어 팔아 많은 재물을 얻게 하는 아데미 여신의 신상과 신전이 헛된 것임을 바로 알려 주는 진리의 복음을 들었을 때 그것이 참된 것이요 진리일지라도 자신들에게 손해가 되고 있기에 에베소 시민들을 선동시키기 위해서 바울과 그가 전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에베소 시민들과 그들이 숭배하고 있는 아데미 여신을 무시하고 업신여기는 것이라고 말하면 시민들이 들고 일어날 것을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사단에 사로 잡혀 있는 사람들은 진리를 분별하지 못합니다. 자신들이 그동안 잘못해 온 것에 대해 말씀으로 바로 알려 줄 때 인정하고 받아들이기 보다 기분 나빠해 합니다. 수긍하기보다 분노하고 격노합니다. 복음을 전할 때도 “하나님의 기준에 의하면 당신은 죄인입니다” 라고 하고 말하면 분노합니다. “내가 왜 죄인이냐?”라고 수긍하지 않고 거부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죄성입니다. 사단에게 사로 잡혀 있는 것입니다.

에베소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말씀이 힘 있게 퍼져나가 부흥이 일어나기 시작하자 그 일을 막기 위해서 사단이 역사하는 것입니다. 데메드리오라는 은장이를 중심으로 사람들을 선동한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을 잡으려고 했지만 바울을 찾지 못하자 바울의 동행자였던 마케도니아 사람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붙잡아서 극장 안으로 몰려 들어갔습니다. 29절입니다. “그래서 온 도시는 큰 혼란에 빠졌고, 군중이 바울의 동행자들인 마케도니아 사람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붙잡아서 한꺼번에 극장으로 몰려 들어갔다”

역사가들은 그 당시 에베소에 있던 그 극장은 약 2만명 정도 수용할 수 있는 대형 극장이라고 합니다. 그 극장에 모여서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 여신을 위대하다” 라고 소리를 지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32절을 보면 “극장 안에서는, 더러는 이렇게 외치고, 더러는 저렇게 외치는 바람에, 모임은 혼란에 빠지고, 무엇 때문에 자기들이 모여들었는지조차 알지 못하는 사람이 많았다”라고 말합니다.

군중 심리라는 것이 있습니다.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많은 사람들이 하는대로 따라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왜 그렇게 하는지 분명히 알지도 못하고,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하니까 맞는 것이겠지라는 마음으로 함께 하는 것입니다. 지금 본문에 나오는 에베소의 시민들이 그러했다는 것입니다. 분명 그 중에 몇 사람들은 데메드리오라는 사람이 바울과 그가 전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자신들이 섬기는 에데미 여신을 무시하고, 거짓이고 가짜라고 하기에, 자신들의 자존심을 건드렸다고 격분한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 나머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군중 심리에 끌려서 이유도, 목적도 모르고 소리 지르며 따라 나서서 모여 든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들을 진정 시키려고 33절을 보면 “유대 사람들이 알렉산더를 앞으로 밀어내니, 군중 가운데서 몇 사람이 그를 다그쳤다. 알렉산더가 조용히 해 달라고 손짓을 하고서, 군중에게 변명하려고 하였다”그러할 때 군중들이 어떻게 반응합니까? 34절입니다. “그러나 군중은 알렉산더가 유대 사람인 것을 알고는, 모두 한 목소리로 거의 두 시간 동안이나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 여신은 위대하다!” 하고 외쳤다”전혀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모습들이 우리가 볼 때 참 우습고 미련한 것 같지만 이 시대에도 그러한 모습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세상을 쫓고, 이 세대를 쫒는다고 말합니다. 이 세상이 흘러가는대로, 즉 세상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스리고 이것이 옳다 라고 하는 것에 수많은 사람들이 동참하여 따라갑니다. 하나님께서 죄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신 것들을 죄가 아니라고 하는데 그것에 동참하여 따라갑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넓은 길이라고 말합니다. 많은 사람들인 진리와 생명의 길인 좁은 길이 아닌 넓은 길로 갑니다. 많은 사람들이 가니까 그 길이 맞는 길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넓은 길의 끝은 멸망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세상 사람들이 다 한다고 따라 가서는 안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하고 있다고 그렇게 해도 된다고 생각하고 따라 가서는 안됩니다. 내 생각, 내 감정대로 따라라 가서는 안됩니다. 감정이 나의 태도와 행동으로 나와서는 안됩니다. 영적인 분별력을 가지고 분별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명하신 일인지, 그 길이 진리의 길인지, 생명의 길인지, 하나님의 뜻인지, 하나님의 뜻 가운데 거하는 것인지 분별해야 합니다.

우리가 항상 깨어서 기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명령과 뜻을 배우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래서 로마서 12:2절에 “여러분은 이 시대의 풍조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완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도록 하십시오”라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해야 합니다. 나의 삶속에 사단에게, 사람들에게 선동되어, 내가 무엇을 하는지도 알지 못하고 세상의 흐름과 죄 가운데 흘러가는 삶을 사는 자가 아닌 영적인 분별력을 가지고 진리를 알고, 우리가 가야 할 길, 우리가 지켜야 하고, 붙들어야 할 믿음을 지키는 삶을 살아가기를 축원합니다.

Category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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