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창세기 4:9-15

9 주님께서 가인에게 물으셨다. “너의 아우 아벨이 어디에 있느냐?” 그가 대답하였다. “모릅니다. 제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
10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무슨 일을 저질렀느냐? 너의 아우의 피가 땅에서 나에게 울부짖는다.
11 이제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을 것이다. 땅이 그 입을 벌려서, 너의 아우의 피를 너의 손에서 받아 마셨다.
12 네가 밭을 갈아도, 땅이 이제는 너에게 효력을 더 나타내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 땅 위에서 쉬지도 못하고, 떠돌아다니게 될 것이다.”
13 가인이 주님께 말씀드렸다. “이 형벌은, 제가 짊어지기에 너무 무겁습니다.
14 오늘 이 땅에서 저를 쫓아내시니, 하나님을 뵙지도 못하고, 이 땅 위에서 쉬지도 못하고, 떠돌아다니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저를 만나는 사람마다 저를 죽이려고 할 것입니다.”
15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그렇지 않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일곱 갑절로 벌을 받을 것이다.” 주님께서는 가인에게 표를 찍어 주셔서, 어느 누가 그를 만나더라도, 그를 죽이지 못하게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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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동생 아벨을 죽인 가인을 찾아와 질문하십니다. “너의 아우 아벨이 어디에 있느냐?” 창세기 3장에는 하나님께서 금하신 선악과를 먹고 수치와 두려움으로 숨어 있는 아담을 찾아와 “아담아 네가 어디에 있느냐?” 라고 질문하십니다. 우리에게 질문하시는 하나님의 질문을 우리가 회개하고 회복되기를 바라시는 은혜의 질문입니다.

아담에게 하신 “아담아 네가 어디에 있느냐?” 라는 질문은 “어찌하여 네가 나를 벗어났느냐? 왜 나의 말씀과 명령에 벗어났느냐? 왜 주안이 아닌 세상과 사단에 속한 자가 되었느냐?” 라는 질문입니다. 하나님께, 주님께, 말씀 안에 있어야 하는데 왜 불신앙 안에 있는냐? 왜 근심 가운데 있느냐? 왜 미움과 원망 가운데 있느냐? 라는 질문인 것입니다.

“아담아 네가 어디에 있느냐?” 라는 하나님의 질문은 오늘 저와 여러분을 향해서도 계속 던지고 계시는 하나님의 질문입니다. “믿음 안에 있느냐? 은혜 안에 있느냐? 능력 안에 있느냐?” 아니면 사단의 권세 아래 있느냐? 죄 가운데 있느냐? 네 고집, 감정, 네 생각 안에 있느냐?” 라고 물으시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주 안에, 하나님의 말씀 안에, 성령 안에, 은혜와 사랑, 평강 안에 거하는 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하나님께서 동생 아벨을 죽인 가인을 찾아와 물으십니다. “너의 아우 아벨이 어디에 있느냐?” 그런데 가인은 하나님의 질문에 “나는 모릅니다. 제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 라고 대답합니다. 사실 대답이 아닌 반항입니다. 동생을 쳐서 죽인 살인을 해 놓고도 안한 척, 모르는 척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모든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아벨이 어디 있는지, 가인이 아벨을 어떻게 왜 죽였는지 다 알고 계셨습니다. 그럼에도 질문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가인이 회개할 기회를 주시기 위함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너의 아우 아벨이 어디에 있느냐?” 라는 질문은 가인을 위한 마지막 은혜의 문이었습니다. 만일 가인이 하나님의 질문 앞에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엎드렸다면 가인의 삶을 달라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가인은 죄를 짓고도 당당했습니다. 동생을 돌로 쳐 죽였고, 그의 피가 쏟아져 땅을 적시는 것을 보았음에도 뻔뻔했습니다. 죄책감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네 아우가 어디 있느냐?” 라는 질문에 “내가 아우를 지키는 자입니까?” 라고 오히려 하나님께 반항합니다.

오늘도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에게 가인에게 던지신 질문을 합니다. “네 남편이 어디 있느냐? 네 자식이 어디 있느냐? 네 동료, 너의 그 사람은 어디 있느냐?” 그들이 피 흘려 쓰러져 있는데 너는 어떤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느냐? 그 사람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고 살아가느냐고 물으시는 것입니다. 나의 삶의 모습과 행동이 그들에게 걸림돌이 되지 않았냐는 것입니다. 주 안으로, 하나님의 안으로, 믿음으로 이끄는 책임을 다 하였느냐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10절에 주님께서 이렇게 질문하십니다. “네가 무슨 일을 저질렀느냐?”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를 향하여 묻고 계십니다. “너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느냐?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는 삶을 살고 있느냐? 하나님을 위하여 봉사하고, 충성하고, 전도하는 자리에 있느냐? 영혼을 세우고 사랑하고, 용서하기 위해 기도하며 애쓰고 있느냐?” 물으시는 것입니다.

가인은 하나님의 질문 앞에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10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의 아우의 피가 땅에서 나에게 울부짖는다” 아벨은 죽었었습니다.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벨의 피가 땅에서 나에게 울부짖는다고 말씀하십니다. 무슨 말입니까? 지은 죄는 반드시 드러나고 심판에 이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나는 모른다고 하고, 다른 사람들은 다 속일 수 있을지 몰라도, 하나님 앞에서 모든 죄는 드러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죄는 침묵하지 않습니다. 반드시 우리가 지은 죄악을 정죄하는 칼이 되어 돌아옵니다.

죄를 회개하지 않은 가인에게 하나님께서 저주를 내리십니다. 11-12절입니다. “이제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을 것이다. 땅이 그 입을 벌려서, 너의 아우의 피를 너의 손에서 받아 마셨다. 네가 밭을 갈아도, 땅이 이제는 너에게 효력을 더 나타내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 땅 위에서 쉬지도 못하고, 떠돌아다니게 될 것이다” 가인은 원래 농사를 짓는 자였습니다. 땅이 그의 삶의 기반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땅이 더 이상 가인에게 곡식과 열매를 주지 않는 것입니다.

또한 “너는 이 땅 위에서 쉬지도 못하고, 떠돌아다니게 될 것이다” 가인은 떠돌이가 됩니다. 방향을 잃은 인생, 안식이 없는 삶이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 없이 사는 인생의 모습입니다. 죄 가운데 거하는 삶의 모습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저주의 말씀을 들은 가인이 하나님께 말합니다. 13절입니다. “가인이 주님께 말씀드렸다. “이 형벌은, 제가 짊어지기에 너무 무겁습니다. 오늘 이 땅에서 저를 쫓아내시니, 하나님을 뵙지도 못하고, 이 땅 위에서 쉬지도 못하고, 떠돌아다니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저를 만나는 사람마다 저를 죽이려고 할 것입니다”

겉으로 보면 가인이 자신의 죄를 인정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내용을 자세히 보면, 그는 죄에 대해 후회학나 슬퍼하지 않고, 벌에 대해 두려워할 뿐입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지은 것에 대한 회개함이 아닌 자신이 받을 죄의 형벌에만 관심을 갖는 것입니다. 이것이 많은 사람들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죄 그 자체보다, 결과가 두렵습니다. 하나님을 잃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의 불이익이 무섭습니다. 진정한 회개는 삶의 방향을 바꾸는 것이지만, 가인은 여전히 자기 중심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여전히 회개함이 없이 자신이 당할 일을 두려워하며 호소하는 가인을 보면 우리 같으면 더 큰 벌을 내릴 것 같은데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은혜를 가인에게 베푸십니다. 15절입니다.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그렇지 않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일곱 갑절로 벌을 받을 것이다.” 주님께서는 가인에게 표를 찍어 주셔서, 어느 누가 그를 만나더라도, 그를 죽이지 못하게 하셨다”

왜 하나님께서 살인자 가인을 즉각 처벌하지 않으시고 보호하시겠다는 표를 주셨는지 우리로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하나님의 오래 참으시는 은혜라고 밖에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주신 표는 가인의 죄를 용서했다는 표가 아닙니다. 즉각적인 파멸을 허락하지 않으신 은혜의 표입니다.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시지만, 죄인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이 가인의 표는 장차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예표합니다. 아벨의 피는 복수를 외쳤지만,
예수님의 피는 용서를 외치셨습니다. 아벨의 피는 땅에서 호소했지만,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의 피는 하늘 보좌 앞에서 중보와 은혜를 호소함으로 믿는 우리들을 구원하는 놀라운 구원의 피가 된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동일한 질문을 하십니다. “네가 어디 있느냐?”“네 형제가 어디 있느냐?”“너는 무엇을 하였느냐?”혹 우리 안에 가인의 모습이 있지는 않습니까? 시기와 분노, 책임 회피, 하나님 앞에서의 변명하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고자 하시는 용서함과 회복, 돌이킴과 축복을 받기 위해 그 질문 앞에 겸손함과 참회함으로 회개함이 있기를 원합니다. 심판보다 앞선 은혜, 정죄보다 깊은 사랑, 그 하나님 앞에 겸손히 서서 주시고자 하시는 은혜와 구원과 용서함과 축복을 받고 주 안에 거하는 자로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ategory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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