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사무엘상 1:20

20 한나가 임신을 하고, 달이 차서 아들을 낳았다. 한나는, 주님께 구하여 얻은 아들이라고 하여, 그 아이의 이름을 사무엘이라고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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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1장은 이스라엘의 위대한 선지자였던 사무엘이 어떻게 태어나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특별히 그의 어머니 한나의 믿음, 한나의 기도를 통하여 우리가 가져야 할 믿음의 모습을 배울 수 있습니다. 20절의 말씀만 읽으면 한나라는 여인이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여 아들을 낳고 이름을 사무엘이라고 지었다는 아주 평범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잘 알듯이 1장 전체를 보면 한나가 아들 사무엘을 낳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던, 마음에 아픔과 상처가 있었던 여인이었습니다. 한나에게는 엘가나 라는 남편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또 브닌나라는 또 다른 아내가 있었습니다. 한나는 남편에게 사랑을 받았지만 아기가 없었습니다. 어쩌면 아이가 없기에 남편이 또 다른 아내를 얻었는지 모르지만 브닌나에게는 몇 명인지 모르지만 아들과 딸이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남편의 사랑을 더 받는 한나를 보고 브닌나는 한나를 괴롭히고 업신여겼습니다. 사무엘상 1:6절을 보면 “주님께서 한나의 태를 닫아 놓으셨으므로, 그의 적수인 브닌나는 한나를 괴롭히고 업신여겼다” 성경은 적나라하게 브닌나를 적수, 대적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한 집, 한 지붕아래에서 매일 보고 사는데 원수가 되어서 괴롭히고 업신여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일이 한번 어쩌다 말실수로 일어난 것이 아니라 7절을 보면 매일 매번 오랫동안 거듭된 것입니다. 한나는 오랜 기간 마음이 괴로웠고 아팠습니다. 그래서 먹지도 못하고, 수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런 한나를 남편이 품어 주고 더 사랑해 주었습니다. 8절을 보면 “당신이 열 아들을 두었다고 해도 내가 당신에게 하는 만큼 하겠소”라고 할 만큼 사랑하고 위로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위로가 위로가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남편이 마음의 문제, 아기를 낳는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하는 것입니다.

진정 우리의 진정 해결 받아야 할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진정 우리의 마음을 위로해 주실 수 있고,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밖에 없으십니다. 성경은 아기를 낳지 못하는 것에 대해 6절에 “주님께서 한나의 태를 닫아 놓으셨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의 문제, 아픔의 문제, 위로 받지 못하는 문제, 해결하지 못하는 모든 문제는 하나님 앞으로 가지고 나가서 풀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해결 받아야 합니다.

한나는 브닌나와 싸우지 않았습니다. 대들지 않았습니다. 괴롭힘을 당하고 업신여김을 당해서 마음이 아프고 울기도 하고 먹지도 못하는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때마다 하나님의 집으로 올라가 기도했습니다. 한해가 아니라 수년동안 그렇게 기도한 것입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만이 내 마음을 알고 내 문제를 해결해 주실 수 있는 분임을 믿고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하는 기도가 믿음입니다.

한나는 마음에 심한 아픔과 상처를 받을수록 더욱 강렬한 마음의 소원을 품었습니다. 그 강렬한 소원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한이 담긴 기도, 강렬한 기도, 절절한 기도를 하나님 앞에 드리게 된 것입니다. 10-11절에 한나가 하나님께 기도한 내용을 알려 줍니다. “한나는 괴로운 마음으로 주님께 나아가, 흐느껴 울면서 기도하였다. 한나는 서원하며 아뢰었다. “만군의 주님, 주님께서 주님의 종의 이 비천한 모습을 참으로 불쌍히 보시고, 저를 기억하셔서, 주님의 종을 잊지 않으시고, 이 종에게 아들을 하나 허락하여 주시면, 저는 그 아이의 한평생을 주님께 바치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한나의 이 한 맺힌 기도가 응답되어 아들 사무엘을 낳게 됩니다. 하나님의 선지자요 놀랍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었던 위대한 선지자가 됩니다. 한나의 기도는 놀라운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소원이 성취되었고 그녀의 상처가 치유되었습니다. 그렇게 된 것은 맺힌 상처, 아픈 상처를 기도로 승화시켰기 때문입니다. 간절한 소원을 위해 기도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또한 간절한 소원의 성취를 위해 기도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소원이 있다는 것은 귀한 것입니다. 소원은 바라는 것, 원하는 것입니다. 갈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마음에 소원함을 통해 기도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빌립보서 2: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소원을 가진 자만이 소원을 성취할 수 있습니다. 많은 경우 현실에 안주하기 때문에, 환경이 어렵다고, 불가능하다고, 이룰 수 없다고 소원을 포기하고 자포자기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소원을 가졌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소원을 상실하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지나치게 영적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영적인 것만 추구해야지, 현실적인 것, 즉 아기를 갖기를 소원하고, 사업이 잘되는 것, 병이 낫는 것, 결혼할 좋은 배우자를 만나는 것 등을 구하는 것, 성공하는 것을 기복신앙으로 치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닙니다. 참된 영성은 현실에 뿌리를 내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삶의 현장 속에서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삶 속에서 역사하십니다. 아브라함에게는 아들을 얻고자 하는 소원이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내가 아들을 주겠다, 큰 민족이 되게 하겠다 했을 때 순종하고 고향땅을 떠난 것입니다. 다윗이 골리앗과 싸우러 나갈 때도 “저 할례 받지 못한 인간을 쓰러트린 자가 받을 상급이 무엇이냐?” 라고 상급에 대한 소원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세베대의 두 아들 요한과 야고보가 주님의 나라가 임할 때 예수님의 좌우편에 앉고 싶어 했습니다. 주님은 그런 기본적인 욕망이나 소원들을 결코 무시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의 동기를 서서히 성화시키셨습니다.

한나의 마음의 간절한 소원은 아들을 얻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마음에 그 소원이 브닌나의 멸시와 괴롭힘과 업신여김으로 더욱 소원이 강해졌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간절함과 애절함으로 강렬하게 아들을 달라고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소원을 성취시켜 주시기 위해 때로 우리를 더욱 위기 가운데로 몰아가십니다. 처절한 고통과 환경 속으로 몰아넣으실 때도 있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 앞에 간절함으로 기도하는 자로 세우십니다.

간절함의 기도, 눈물의 기도, 더 나아가 하나님께 드리겠다는 서원의 기도를 했을 때 하나님께서 그 기도의 응답으로 아들을 주십니다. 한나는 낳은 아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아들임을 알았습니다. 그렇기에 20절에 “한나는 주님께 구하여 얻은 아들이라고 하여 그 아이의 이름을 사무엘이라고 지었다” 그리고 그 서원한대로 그 어렵게 받은 아들 사무엘을 하나님의 전에 드리는 헌신을 하고 약속을 지킵니다. 우리말에 화장실 들어갈 때 마음이 다르고 나올 때 마음이 다르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한나는 그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한나의 기도를 주신 사무엘, 서원한대로 드려진 사무엘을 이스라엘을 영적으로 이끄는 귀한 선지자로 세우셔서 사용하십니다. 개인의 소원이 한 나라의 영적인 놀라운 역사를 이끌어 가는 귀한 축복의 통로가 된 것입니다. 한나가 드린 소원 성취의 기도가 결국 이스라엘 민족을 위한 기도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우리의 소원이 성취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기도함 속에 우리의 소원이 성취되는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의 놀라운 뜻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의 상처를 소원으로 바꾸십시오. 애통함을 기도로 바뀌시고 서러움과 아픔, 고통을 소원의 기도로 승화시키시기를 바랍니다. 그 간절함의 기도로, 강렬한 소원을 위한 기도를 통해서 태의 문이 열리고, 인생의 문이 열리고, 마음의 상처가 회복되고, 더 나아가 하나님의 놀라운 뜻이 이루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ategory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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