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호세아 2:6-8
6 그러므로 내가 이제 가시나무로 그의 길을 막고, 담을 둘러쳐서 그 길을 찾지 못하게 하겠다.
7 그가 정부들을 쫓아다녀도, 그들을 따라잡지 못할 것이다. 그들을 찾아다녀도, 어디에서도 만나지 못할 것이다. 그제서야 그는 ‘이제는 발길을 돌려서 나의 남편에게로 돌아가야지. 나의 형편이 지금보다 그 때가 더 좋았다’ 할 것이다.”
8 “바로 내가 그에게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주었으며, 또 내가 그에게 은과 금을 넉넉하게 주었으나, 그는 그것을 전혀 모르고 그 금과 은으로 바알의 우상들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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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는 2-5절에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 숭배와 세상의 것을 추구하며 죄악의 길을 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회개하고 돌이키지 않자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 않고 사막처럼 메마르게 하고 메마른 땅처럼 갈라지게 하여 목이 타서 죽게 하시겠다는 멸망의 경고를 하십니다.
그 심판과 저주와 날이 오면 그들이 살 길을 찾으려고 할 때 그들을 막겠다고 하시는 무서운 경고의 말씀이 6절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이제 가시나무로 그의 길을 막고, 담을 둘러쳐서 그 길을 찾지 못하게 하겠다”회개의 기회, 돌이킬 기회, 돌아오라고 수없는 기회를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거부해서 하나님께서 결국 심판하시겠다고 하시는 그날이 오면 그제야 살 길을 찾겠다고 아무리 발부둥쳐도 할 수 없다고 7절에 다시한번 경고하십니다. “그가 정부들을 쫓아다녀도, 그들을 따라잡지 못할 것이다. 그들을 찾아다녀도, 어디에서도 만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그제야 막심하게 후회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7절 후반절에 “그제서야 그는 ‘이제는 발길을 돌려서 나의 남편에게로 돌아가야지. 나의 형편이 지금보다 그 때가 더 좋았다’ 할 것이다” 라고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 구절의 말씀은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탕자 고백과 같습니다. 아버지의 집에서 벗어나 자기 마음대로 살겠다고 살아계신 아버지의 유산을 받아 이웃 나라에 가서 욕심과 정욕대로 마음껏 방탕하게 살다가 거지가 되어 돼지 우리에 거하며 돼지가 먹다 남은 음식을 먹으며 고생하자 그제서야 제 정신이 들어서 자신이 행한 일이 얼마나 잘못한 일인지 깨닫게 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놀라운 축복을 받은 선민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을 받은 자들이었고, 하나님의 마음과 뜻이 담긴, 축복을 누릴 수 있는 계명과 율법을 받은 자들이었습니다. 더 나아가 가나안 땅을 받게 되었고, 많은 물질적 축복도 받아 누리는 민족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의 그러한 놀라운 축복을 받고 누리면서도 그 축복에 보답하기는 커녕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며 말씀에 벗어나는 죄악, 패역한 모습을 보였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단지 이스라엘 백성들만이 아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된 우리들 안에서도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 속에서 우리도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범하게 되는 패역한 일이 있는지 돌아보고 바로 서는 신앙이 되기를 원합니다.
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들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축복에 보답하기는 커녕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며 죄악된 삶을 살게 되었는지를 8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바로 내가 그에게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주었으며, 또 내가 그에게 은과 금을 넉넉하게 주었으나, 그는 그것을 전혀 모르고 그 금과 은으로 바알의 우상들을 만들었다”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많은 축복을 받아 누리면서도 그것을 공급하시는 하나님을 깨닫지 못하는 영적인 무지함과 어리석음으로 죄를 범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8절에 “내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 은과 금을 넉넉하게 주었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필요한 부분들을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생명, 건강, 가정, 물질, 음식, 옷 그 외에 햇빛과 비, 땅과 하늘 모두 하나님께서 우리가 누리도록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 근원이 하나님이심을 모르니까 내 힘과 노력으로, 혹은 어떤 사람이나 세상 것에서 비록 된다고 착각하고 나를 신봉하거나 더 나아가 엉뚱한 곳을 쫓아 가는 것입니다. 이 스라엘 백성들은 바알과 아세라 우상이 풍요와 다산 즉 물질의 번영을 주는 신으로 생각하고 섬긴 것입니다.
이 시대의 사람들도 바알과 아세라 라는 이름의 우상을 섬기는 것은 아니지만 여전히 모든 축복의 근원이 하나님이심을 인정하거나 믿지 않고 삽니다. 아니 하나님 존재 자체를 거부하고 삽니다. 금과 은으로 바알의 우상들을 만들어 섬긴 것처럼, 자기 생각, 세상의 물질, 성공과 명예를 하나님처럼 추구하며 살아가는 죄 가운데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축복을 주신 공급자임을 깨닫지 못하고 사니까 감사하지 않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도 은혜를 모르고 감사하지 않는 자들을 배은망덕한 자라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마땅한 감사와 보답하고자 하는 마음을 갖지 않는다면 배은망덕하고 파렴치한 범죄인 것입니다.
그런데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이나 성도된 우리들 가운데서도 이러한 감사하지 않는 죄를 범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는 하나님을 찾으면서도 편안하고 복된 날이 이르면 이내 하나님을 잊고, 당연하게 생각하고, 감사하지 않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누가복음 17장에서 예수님으로 인해 깨끗함을 받은 나병 환자 10명 중에 단 한 사람만이 돌아와 감사했던 것을 기억하십니까?
우리는 그 사건을 보면서 9명의 치료 받은 나병환자들을 배은망덕한 놈들이라고 손가락질 하는 마음을 갖지만 사실 예수님을 다시 찾아와 치료함을 감사하지 않았던 그 9명의 나병 환자들이 저와 여러분들이 아닌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매일 매 순간 영적인 눈을 열어서 보면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다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것이지 않습니까? 아침에 눈을 뜨고 일어난 것, 걸어서 세수 하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말씀을 듣고 기도할 수 있는 새벽 기도가 있는 것. 마실 수 있는 물, 커피 또한 아침 식사. 편하게 지낼 수 있는 집이 있는 것, 생활할 수 있는 경제적인 여유가 있는 것, 나와 대화하고 나눌 수 있는 가족이 있는 것, 시원한 날씨, 깨끗한 공기, 화단과 길가에 핀 작은 꽃들의 아름다움, 들려오는 새소리들 …
더 영적인 것을 생각한다면 내가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기도할 수 있는 것. 이 땅이 아닌 영원한 천국의 약속을 받은 것, 마음껏 찬양하고 예배 드릴 수 있는 축복들. 모든 것이 감사할 것 뿐입니다. 그러한 수없이 많은 축복들을 받고 누리고 있으면서 입을 열어 원망하고 불평한다는 것, 마음에 만족함이 없이 불만족으로 분노와 미움을 가지고 있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거부하는 죄인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축복 받은 것을 바르게 사용하지 않기에 우상의 길로 빠지는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축복하시는 것은 우리가 그것을 받을 만한 충분한 자격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그것을 우리의 이기적인 만족을 위해 마음대로 쓰라고 주신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께 받은 축복을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서, 주님의 이름으로 하나님을 드러내는 삶을 살라고, 섬기는 삶을 살라고, 베푸는 삶을 살라고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받은 축복들을 나 자신만을 위하여 쓰고, 더 나아가 헛된 우상을 만들고 섬기는 일에 사용한다면 하나님을 모독하는 죄이고 하나님의 저주와 심판을 받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혹시 여러분 중에 나는 하나님으로부터 감사할 만한 축복을 받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계십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가장 잘 아시기에 가장 필요하고 좋은 것으로 축복하시어 지금 이 자리, 이 상황에 놓아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해야 할 것은 그렇기에 영적인 눈을 열어 주셔서 하나님께서 나의 예배와 사랑과 온전한 순종을 받기에 합당한 창조자, 구원자, 공급자이심을 깨닫게 하셔서 하나님께 드려야 마땅한 예배와 찬양, 감사와 충성을 드리는 자가 되기를 기도하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