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호세아 10:5-8

5 사마리아 주민은 벳아웬의 금송아지를 잃고 두려워하고, 그 우상을 잃고 슬퍼할 것이다. 그것을 즐겨서 섬긴 이교의 제사장들은, 우상의 영화가 자기들에게서 떠난 것 때문에 탄식할 것이다.
6 사람들이 금송아지를 앗시리아로 가지고 가서 대왕에게 선물로 바칠 것이다. 그러나 에브라임이 대가로 받아 오는 것은 수치뿐일 것이다. 끝내 이스라엘은 우상을 섬긴 일로 수치를 당하고야 말 것이다.
7 사마리아는 멸망하게 되었다. 왕은 물 위로 떠내려가는 나무토막과 같다.
8 이제 이스라엘의 죄악인 아웬 산당들은 무너지고,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자라 올라서 그 제단들을 뒤덮을 것이다. 그 때에 백성들은 산들을 보고 “우리를 숨겨 다오!” 또 언덕들을 보고 “우리를 덮어 다오!” 하고 호소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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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이스라엘은 솔로몬 왕 이후 남북으로 나뉘어져 시작된 나라입니다. 솔로몬 왕이 하나님께서 금하신 이방 나라 여인들을 왕비로 첩으로 맞아 들였고, 나이가 들면서 그들이 가져온 우상과 신전을 세워 그들을 따라 우상 숭배의 죄를 짓습니다. 그러한 솔로몬의 죄에 대해 하나님께서 책망하시고 돌이키라고 명령하셨음에도 불구하고 회개하고 돌이키지 않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남북으로 쪼개십니다.

솔로몬의 뒤를 이은 아들 르호보암을 유다와 베냐민 두 지파로 남 유다 나라를, 그리고 나머지 10지파 솔로몬의 신하였던 여로보암을 왕으로 세워 북 이스라엘 나라를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로보암에게 이스라엘이 나누어지게 되고, 여로보암을 왕으로 세우신 뜻이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의 율법과 계명을 지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여로보암은 왕이 된 후에 자신을 왕으로 세워 북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하시고 하나님을 섬기는 나라로 세우라는 뜻을 거스립니다. 하나님만 의지하고 믿는 신앙이 아닌 인간적인 생각과 방법을 사용합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남 유다에 있기에 북 이스라엘 백성들이 절기에 성전으로 내려가서 예배드리면 마음이 바뀌어 자신을 버리게 될 것을 두려워하여 단과 벧엘에 제단을 새로이 세우고 그곳에 금송아지 신상을 세우고 그 금송아지 신상이 하나님라고 말하며, 레위 지파가 아닌 사람들을 제사장으로 세우고 그곳에서 제사를 드리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십계명에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라고 명하셨고, 출애굽기 32장에 시내산 아래에서 아론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요구에 의해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한 하나님이라고 하며 제사를 드림으로 하나님의 분노하심과 재앙이 임한 사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로보암은 금송아지 신상을 만들고 그것을 하나님이라고 하며 백성들에게 제사 드리도록 한 것입니다. 여로보암 왕 이후에 세워진 많은 북 이스라엘 왕들도 그 뒤를 이어 여로보암의 죄를 따릅니다. 그렇기에 북 이스라엘에게 금송아지란 우상 숭배의 죄를 대표하는 상징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한 북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하나님께서 심판하시겠다고 하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5절의 말씀입니다. “사마리아 주민은 벳아웬의 금송아지를 잃고 두려워하고, 그 우상을 잃고 슬퍼할 것이다” 벧아웬이란 호세아서 4장을 나눌 때 설명 드렸듯이 벧엘을 의미합니다. 벧엘은 하나님의 집이라는 뜻을 가진 곳입니다. 그런데 그 벧엘, 즉 하나님의 집이라는 곳에 금송아지 우상을 세워서 제사 드리는 곳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호세아 선지자는 그곳을 ‘벧엘’ 즉 ‘하나님이 집’ 이 아니라 ‘벳아웬’ 즉 ‘우상의 집’이라고 부른 것입니다.

그런데 5절에 사마리아 주민은 그 벳아웬에 있는 금송아지를 잃게 되어 두려워하고 슬퍼하게 된다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사마리아는 북 이스라엘의 수도입니다. 사마리아 주민이란 북 이스라엘 전체 백성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결국 벧엘과 단에 세워져 있던 그 금송아지가 앗시리아 제국이 쳐들어 와서 이스라엘 나라를 초토화 시키고 그 금송아지 신상을 탈취하여 가져가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 모습을 6-7절에 “사람들이 금송아지를 앗시리아로 가지고 가서 대왕에게 선물로 바칠 것이다. 그러나 에브라임이 대가로 받아 오는 것은 수치뿐일 것이다. 끝내 이스라엘은 우상을 섬긴 일로 수치를 당하고야 말 것이다. 사마리아는 멸망하게 되었다. 왕은 물 위로 떠내려가는 나무토막과 같다” 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북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아닌 금송아지를 영광스럽게 생각했었습니다. 구약 시대에나 지금이나 금이 얼마나 가치가 있는 것입니까? 금값은 언제나 높습니다. 그렇기에 세상은 금과 재물이 많은 것을 영광으로 삼습니다. 그렇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들고 그것을 하나님이라고 하며 절하며 섬긴 것은 전혀 이상할 일이 아닙니다.

지금도 이 시대를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무엇을 우상으로, 하나님으로 생각하고 추구하고, 그 앞에 엎드리며 살아갑니까? 바로 돈이요, 금이요, 재물입니다. 그렇기에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뿌리” 라고 한 것입니다. 골로새서 3:5절에도 탐욕이 우상숭배라고 한 것입니다. 무엇에 대한 탐욕입니까? 바로 돈에 대한, 금에 대한, 재물에 대한 탐욕입니다.

사람들이 우상으로 숭배하기 쉬운 것이 재물, 돈입니다. 돈 그 자체는 악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돈과 재물이 하나님을 버리게 되는 악의 뿌리가 될 수 있는 강력한 죄의 유혹이 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 보다 눈 앞에 보이는, 손에 잡히는 돈을 더 신봉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 일어나는 대부분의 죄의 근본적인 원인을 보면 돈의 유혹이 강력하기 때문입니다. 돈 때문에 하나님을 버리고, 양심을 속이고, 돈 때문에 친구를 배신하고 속이며, 돈 때문에 해서는 안되는 살인과 사기, 거짓과 악행을 하지 않습니까?

그렇게 하는 이유는 세상은 돈이 많을수록 성공한 사람이라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의 인정과 존경, 부러움을 받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많은 돈이 권력이 됩니다. 많은 돈이 행복이라고 말합니다. 그렇기에 살아가는 모든 동기가 결국 돈이 됩니다. “공부 열심히 해라. 좋은 대학가라. 좋은 직업을 가져라. 열심히 일해라” 그렇게 말하는 이유는 그래야 돈 많이 벌고 그래야 성공한 사람이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든, 어떤 방법을 쓰든 돈과 재물을 얻고자 애쓰는 것이 이세상의 풍조요 흐름이요 사상인 것입니다.

북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고 그 앞에 절을 하며 섬긴 것도, 더 나아가 바알과 아세라와 같은 우상숭배를 한 것도 결국 세상의 물질과 돈, 풍요를 달라고 하는 그것이 영광이요, 기쁨이요, 축복이요 삶의 목표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아닌 세상의 재물과 풍요와 기쁨과 성공을 위한 삶의 끝은 결국 두려움, 슬픔, 탄식이 되고 수치와 멸망임을 본문과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하여 우리에게 분명하게 알려 주십니다. 그것이 5-7절의 말씀입니다. “사마리아 주민은 벳아웬의 금송아지를 잃고 두려워하고, 그 우상을 잃고 슬퍼할 것이다. 탄식할 것이다. 끝내 이스라엘은 우상을 섬긴 일로 수치를 당하고야 말 것이다. 사마리아는 멸망하게 되었다”

하나님을 모셔야 할 자리에 우상을 세우고, 그 우상을 쫓아갔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와 그 죄에 대한 심판에 대해 8절에 이렇게 선포하십니다. “이제 이스라엘의 죄악인 아웬 산당들은 무너지고,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자라 올라서 그 제단들을 뒤덮을 것이다. 그 때에 백성들은 산들을 보고 “우리를 숨겨 다오!” 또 언덕들을 보고 “우리를 덮어 다오!” 하고 호소할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는 벧엘을 벧아웬 즉 하나님의 집을 우상의 집으로 만든 것입니다. 금송아지를 하나님으로 섬긴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닌 세상의 물질과 탐심, 세상의 흐름을 하나님처럼 쫓고 섬긴 것입니다. 그 끝은 결국 무너짐입니다.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북 이스라엘이 결국 앗시리아 제국에 의해 완전히 패하여 망국이 되고, 죽임과 노예, 종으로 끌려가 비탄한 삶을 살게 된 것을 우리가 압니다.

호세아서의 말씀은 이 시대의 우리 교회를 향해, 하나님을 믿고 따른다는 성도된 우리들을 향하여 주시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바로 아는 지식을 가지고 우리의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만을 사랑하는 신앙으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이 하나님이 온전히 거하시고 다스리시며 예배하는 하나님의 집, 하나님의 성전으로 삼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금송아지를 세우는 탐심과 욕심, 미움과 원망, 거짓의 우상의 집으로 만들고 있지 않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 안에 있는 우상을 허물어야 합니다.

두 마음을 품는 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세상은, 사단은 끊임없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따르려는 우리들의 마음을 미혹하여 하나님이 아닌 금 송아지를 세우고 그 금 송아지 앞에 엎드리게 합니다. 우리는 금 송아지, 세상이 아닌 하나님 앞에 엎드려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 앞에 엎드려 순종하고 따라야 합니다. 그것이 참된 성공과 행복, 축복임을 믿고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Category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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