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호세아 4:15-19
15 이스라엘아, 너는 비록 이방 신을 섬겨 음행을 하여도, 유다는 죄를 짓지 못하게 하여라. 너희는 길갈로 가지 말아라. 벳아웬으로 올라가지 말아라. 주의 살아 계심을 걸고 맹세하지 말아라.”
16 그렇다. 이스라엘이, 고집 센 암송아지처럼 말을 듣지 않으니, 어찌 주님께서 그들을 어린 양을 치듯 넓은 초장에서 먹이시겠느냐?
17 에브라임은 우상들과 한 패가 되었으니, 그대로 버려 두어라.
18 그들은 술잔치를 한바탕 벌인 다음에, 언제나 음행을 한다. 대신들은 수치스러운 일 하기를 즐긴다.
19 그러므로 거센 바람이 그 날개로 그들을 에워싸고 휩쓸어 갈 것이다. 그들이 바친 희생제물이 그들을 수치스럽게 할 것이다.
——————————————–
호세아 선지자는 북 이스라엘에서 사역하던 선지자였습니다. 이스라엘이 솔로몬 왕 이후에 남북으로 갈라져서 북쪽의 10지파가 솔로몬 왕의 아들 르호보암이 솔로몬 왕보다 더 심하게 일을 시키고 세금을 걷겠다고 하자 그를 버리고 여로보암을 왕으로 세워 북 이스라엘이 됩니다. 유다와 베냐민 지파만이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을 추대하여 남 유다 나라가 됩니다.
하지만 북 이스라엘은 첫 왕 여로보암으로부터 시작하여 금 송아지를 섬기며 그 뒤를 이은 19명의 왕들은 모두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 우상을 섬기는 왕이요 나라가 되었습니다. 반면에 남 유다는 다윗 왕의 자손들로 20명의 왕이 있었고 그 중에 대부분이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겼지만 그들 가운데 아사, 요아스, 웃시야, 히스기야, 요시야와 같은 왕들이 우상을 찍어 내리고 하나님을 섬기는 왕들과 시대가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오늘 본문 15절에 하나님께서 북이스라엘과 남 유다에 대해 다르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아, 너는 비록 이방 신을 섬겨 음행을 하여도, 유다는 죄를 짓지 못하게 하여라”라고 하나님께서 호세아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아 라는 것은 북 이스라엘을 의미합니다. 북 이스라엘을 향하여 “너는 이방 신을 섬겨 음행을 하여도” 라고 말하시면서 유다 즉 남 유다는 죄를 짓지 못하게 하라고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북 이스라엘에 대해서 더 이상 기대하지 않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많은 회개할 기회를 주고, 죄를 책망했음에도 불구하고 19명의 왕들이 북 이스라엘을 다스릴 때 그 왕들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한 왕도 돌이키지 않고 이스라엘 백성들과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는 죄에서 벗어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모습을 16절에 “그렇다. 이스라엘이, 고집 센 암송아지처럼 말을 듣지 않으니, 어찌 주님께서 그들을 어린 양을 치듯 넓은 초장에서 먹이시겠느냐?”라고 말씀하십니다. 고집 센 암송아지처럼 하나님께서 죄라고 책망하시며, 돌이키라고 수많은 선지자들을 보내셨음에도 불구하고 죄를 깨닫고, 인정하고, 회개하고, 돌이키지 않고 여전히 세상과 육신의 정욕으로 음란하게 우상을 섬기고 죄악을 범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17절에 “에브라임은 우상들과 한 패가 되었으니, 그대로 버려 두어라”라고 하십니다. 우상들과 한패가 되었다는 말의 의미는 세상과 하나가 되고, 죄 가운데 빠져 동화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더 이상 소망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 호세아 선지자에게 하시는 말씀이 “그대로 버려 두어라” 라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는 사랑의 하나님이시며 그렇기에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축복된 삶, 바른 삶을 살게 하시기 위해 책망하시고 교훈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사랑하시기에 징계도 하십니다. 그런데 그런 하나님의 책망과 교훈을 잔소리처럼 듣고, 귀 기울이지 않고, 돌이키지 않을 때 마지막으로 하시는 것이 내 버려 두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녀들이 말을 끝까지 듣지 않으면 하는 말이 “네 맘대로 해라” 라는 것입니다.
로마서 1장을 보면 사도 바울이 인간의 타락과 죄악으로 인해 어떠한 일이 생겼는지를 설명하면서 사람들이 스스로 지혜 있다고 하지만 참된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만들어 섬기기에 하나님께서 내버려 두셨다는 말씀을 세 번이나 반복해서 하십니다. 24절에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마음의 욕정대로 하도록 더러움에 그대로 내버려 두시니, 서로의 몸을 욕되게 하였습니다” 26절에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부끄러운 정욕에 내버려 두셨습니다” 28절에 “사람들이 하나님을 인정하기를 싫어하므로,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타락한 마음 자리에 내버려 두셔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대로 내버려 두시니 수많은 악행과 불의, 부끄러운 성적인 죄, 악의로 가득하고 그런 죄악을 자신들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죄를 짓는 자들을 두둔하게 됩니다. 죄악으로 가득하게 되어 결국 하나님의 영원한 죄의 심판과 형벌을 받게 되어 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내버림을 당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18-19절에 알려 주십니다. “그들은 술잔치를 한바탕 벌인 다음에, 언제나 음행을 한다. 대신들은 수치스러운 일 하기를 즐긴다. 그러므로 거센 바람이 그 날개로 그들을 에워싸고 휩쓸어 갈 것이다. 그들이 바친 희생제물이 그들을 수치스럽게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북 이스라엘에 대해서는 그들을 내버려 두고 그들이 행한 수치스럽고 악한 죄에 대해서 심판하시고 망하게 하실 것이라고 선포하시는 것입니다.
반면에 아직 소망이 있는 남 유다를 향하여, 우리들을 향하여 선포하라고 하시는 말씀이 15절의 말씀입니다. “유다는 죄를 짓지 못하게 하여라. 너희는 길갈로 가지 말아라. 벳아웬으로 올라가지 말아라. 주의 살아 계심을 걸고 맹세하지 말아라” “유다는 죄를 짓지 못하게 하여라” 라는 말씀은 “너희는 북이스라엘처럼 죄를 짓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어떠한 죄를 짓지 말라는 것을 길갈로, 벳아웬으로 올라가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길갈과 벳아웬은 이스라엘 역사에 중요한 사건이 있던 곳들입니다. 길갈은 이집트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정복하기 위해 범람하는 요단강을 마른 땅처럼 건너 여리고 성을 치기 전에 진을 쳤던 곳입니다. 하나님께서 가르신 요단강에서 12개의 큰 돌을 가지고 나와 단을 쌓고, 그곳에서 40년간 행하지 않았던 할례를 행하고 유월절을 지켰던 곳입니다. 길갈이라는 지명 이름의 뜻은 “이집트의 수치를 떠나게 하였다” 라는 뜻인 “굴러간다” 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벧아웬이라는 곳은 사실 벧엘입니다. 하나님의 집이라는 뜻을 가진 야곱이 형 에서를 피해 하란으로 가다가 돌베개를 베고 자다가 하나님을 만난 곳이고, 다시 돌아와 하나님의 집을 세우겠다고 서약함으로 지은 이름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벧엘에 여로보암 왕이 금송아지 신상을 세우는 제단을 쌓은 곳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호세아 선지자는 ‘벧엘’ 즉 ‘하나님의 집’ 이 아니라 ‘벧아웬’ 즉 ‘우상의 집’ 이라고 부른 것입니다.
길갈 역시 하나님의 도우심과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겠다고 결단한 하나님의 은혜와 언약을 기념하는 중요한 장소였지만 우상 숭배와 거짓 제사의 중심지로 변질 되었습니다. 호세아 9:15 보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책망하십니다. “이 백성의 온갖 죄악은 길갈에서 시작된다. 내가 그들을 미워하기 시작한 것도 길갈에서다. 하는 짓이 악하니 그들을 나의 집에서 쫓아내겠다. 다시는 그들을 사랑하지 않을 것이다. 대신이라는 것들도 모조리 나를 거슬렀다”
하나님께서는 남 유다 백성들에게, 그리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북 이스라엘 백성들이 길갈과 벧엘을 벧아웬 즉 우상의 집으로 만든 그러한 죄를 짓지 말라고 하시는 말씀으로 길갈로 벧아웬으로 가지 말라고 명하시는 것입니다.
이 시대가 악합니다. 죄악으로 가득합니다. 죄를 죄라고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지만 전심으로, 온전함이 아닌 타협과 형식과 자기 편함으로 자기 만족, 자기 중심으로 섬기는 모습이 많습니다. 죄가 죄인줄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의 책망하시는 말씀에 귀 기울이지 않고 고집 센 황소처럼 살아가기 쉽습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늘 기도해야 합니다. 벧아웬 즉 우상의 집이 아닌 벧엘, 즉 내 마음, 내 삶이 하나님의 집이 되고, 하나님의 성령님이 나를 주장하고, 다스리고, 인도하고, 따르는 진정한 예배자가 되기를 힘써 기도하는 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