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로마서 11:1-5
1 그러면 내가 묻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버리신 것은 아닙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나도 이스라엘 사람이요, 아브라함의 후손이요, 베냐민 지파에 속한 사람입니다.
2 하나님께서는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여러분은 성경이 엘리야를 두고 하신 말씀을 알지 못합니까? 그가 이스라엘을 고발하여, 하나님께 이렇게 호소하였습니다.
3 “주님, 그들은 주님의 예언자들을 죽이고, 주님의 제단들을 헐어 버렸습니다. 남은 것은 나 혼자밖에 없는데, 그들은 내 목숨마저 찾고 있습니다.”
4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어떻게 대답하셨습니까? “내가,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은 사람 칠천 명을 내 앞에 남겨 두었다” 하셨습니다.
5 이와 같이, 지금 이 시기에도 은혜로 택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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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 받기를 원하십니다.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렇기에 요한복음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디모데전서 2:4절에도 분명히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하나님의 구원의 부르심에 동참되는 사람들은 소수임을 또한 알려 주십니다. 누가복음 14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이런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왕이신 하나님께서 잔치를 베풀고 모든 마을의 사람을 초청하십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떤 사람은 소를 샀다고, 어떤 사람은 밭을 샀다고, 어떤 사람은 장가간다고 초청에 응하지 않습니다. 그 잔치, 구원의 부르심과 초청에 응하여 참석하는 사람은 소수였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만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이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나라 백성들만 구원하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한 교만한 마음이 있었기에 하나님의 부르심과 명령에 순종하지 않고도 구원 받은 줄 알고 착각했습니다.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사도 바울이 깨닫고 로마서 9:24-26절에 이렇게 설명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부르시되, 유대 사람 가운데서만이 아니라, 이방 사람 가운데서도 부르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호세아의 글 속에서 하신 말씀과 같습니다. “나는, 내 백성이 아닌 사람을 ‘내 백성’이라고 하겠다. 내가 사랑하지 않던 백성을 ‘사랑하는 백성’이라고 하겠다.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다’ 하고 말씀하신 그 곳에서, 그들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자녀라고 일컬음을 받을 것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십니다.
그러나 27절을 보면 “그리고 또 이사야는 이스라엘을 두고 이렇게 외쳤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의 수가 바다의 모래와 같이 많을지라도, 남은 사람만이 구원을 얻을 것이다” 남은 자란 소수를 말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 받기를 원하시지만 결국 소수의 사람만이 구원을 얻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본문 11장을 보면 구약의 엘리야 선지자가 아합 왕 때에 다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을 섬기는 것을 보고 과연 누가 구원을 받겠는가 라는 질문을 하나님께 합니다. 4절 “주님, 그들은 주님의 예언자들을 죽이고, 주님의 제단들을 헐어 버렸습니다. 남은 것은 나 혼자밖에 없는데, 그들은 내 목숨마저 찾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어떻게 대답하셨습니까? “내가,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은 사람 칠천 명을 내 앞에 남겨 두었다” 하셨습니다”그 사건을 말하면서 사도 바울은 5절에 “이와 같이, 지금 이 시기에도 은혜로 택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남아 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남은 자 라는 말은 곧 “은혜 받은 자”라는 것입니다. 은혜 받은 자가 남은 자입니다. 은혜 받은 자가 구원을 받고, 은혜 받은 자가 끝까지 믿음을 지키고, 그 남은 자를 통하여 하나님이 일하시고, 그 은혜 받은 자를 통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첫째, 남은 자 즉 진정 하나님의 은혜 받고 깨달은 사람만이 본질적인 것을 알아보는 안목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아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이 나를 위한 하나님의 사랑이요 은혜임이 보이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야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세주와 주님으로 믿어 구원을 얻게 됩니다. 은혜를 받을 십자가의 의미를 바로 알고 십자가의 가치를 바로 알고 십자가를 귀히 여기고 지고 가는 삶, 십자가의 길을 따라 가는 삶이 인생의 목표와 목적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아야 옛날에 좋았던 것이 이제는 좋지 않게 보이고 예전에 보잘것없이 보였던 것이 귀하게 보입니다. 더 나아가 은혜 받을 때 영적인 눈이 열려 어려운 일을 당하거나 문제 속에서 세상 사람들은 좌절하고 원망하지만 자신을 돌아보면 회개하고, 그 속에서 감사하며 소망을 보고 다시 일어납니다.
은혜를 받아 영적인 눈이 열릴 때 본질적인 것이 보입니다. 나의 죄가 보이고, 나의 교만함이 보이고, 나의 게으름이 보이고, 하나님의 사명이 보이고, 기도의 중요성이 보이고, 하나님의 뜻이 보이고, 잃어버린 영혼의 궁핍함과 불쌍함이 보입니다. 본질적인 것이 보이기 시작하면 기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섬기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주님께 더 매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두 손 들고 나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은혜를 받아 영적인 눈이 열려 본질적인 것들이 보이기 시작할 때 회복되기 시작합니다. 부흥하게 됩니다. 은혜를 받아 영적인 눈이 열려야 역사와 변화와 부흥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Antique Road Show 라는 옛날 물품을 가져오면 그 가격이 얼마인지 감정해 주고 알려 주는 TV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우리 눈에는 고물 같은 그림이나 낡은 물건이 수천불, 수만불, 어떤 것은 수십만불이 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 가치를 볼 수 있는 눈이 있는 사람들이 필요없다고 버리는 그 가치 있는 물품을 몇불에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 땅에 살면서 이 땅에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값으로 매길 수 없는 하늘에 영원한 상과 보물, 면류관을 받을 수 있는 기회들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그 기회를 놓치지 말고 잡으라고 명령하십니다. 하지만 은혜를 받고 영적인 눈이 열리지 않으면 하나도 잡지 못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이 새벽 시간에 일어나 기도하는 것이 가치가 있습니까? 집에서 쉬는 것이 가치가 있습니까? 함께 기도하여 하늘의 문을 열고 하늘의 복을 내리게 하는 이 시간이 얼마나 가치 있는 것입니까?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응답하시고 역사하시는 가치를 아는 사람이 어찌 기도하지 않겠습니까? 영적인 눈이 열려 기도가 얼마나 가치 있는 줄 아는 사람은 기도합니다.
은혜 받지 못하여 영적인 눈이 열리지 않으면 절대 본질을 찾지 못합니다. 은혜를 받고 영적인 눈이 열려야 진정 중요한 본질을 깨닫고, 진정 성도로서 해야 할 일을 깨닫고 영원한 것,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 하나님의 교회가 세워지고, 내 삶이, 내 가정이 축복받는, 더 나아가 축복의 통로가 되는 제자의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둘째, 진정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깨달은 사람은 힘이 생깁니다. 로마서 11:4절 “내가,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은 사람 칠천 명을 내 앞에 남겨 두었다” 엘리야 시대에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은 7천명이 있었습니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을 수 있었던 힘이 어디서 난 것입니까? 은혜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누가 세상에 대항하여 버틸 수 있습니까? 누가 사단의 유혹과 시험을 이길 수 있습니까? 누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 땅에서 믿음으로 순종하며 살 수 있습니까? 은혜 받은 사람입니다.
엘리야 당시에 아합 왕과 이사벨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을 심하게 핍박했습니다. 살아남을 수 없었습니다. 믿음을 지키고 살아가는 것 매우 어려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7천명이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고 꿋꿋하게 믿음을 지키며 살아갔습니다. 하나님의 흘러넘치는 은혜를 받으니까 견딜 수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도 내 영혼과 마음과 생각과 삶에 차고 넘치는 흘러넘치는 압도하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 모든 핍박과 환난과 태클 거는 자들을 뛰어 넘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승리하며 나아갈 수 있습니다.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이성과 지성과, 인간의 상식과 한계를 뛰어 넘는 믿음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부흥을 이루어 나갈 수 있습니다. 그럴 수 있는 힘이 필요합니다. 그 힘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10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헤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다” 사도바울이 말하는 것은 그렇게 자신이 충성하고 수고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바로 은혜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기에 그렇게 할 수 있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은혜가 충만한 자는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려고 기도의 자리에 더 힘씁니다. 예배의 자리, 섬김의 자리에서 기뻐합니다. 반면에 은혜가 없어 마음 밭이 메마르고 먼지가 날리기 시작하면 기도의 자리를 등한시 합니다. 작은 일, 작은 말에도 쉽게 시험에 듭니다. 감정 그대로 나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충만히 받으면 핍박이 오더라도, 오해가 있더라도 웃어넘기고 이길 수 있는 권능이 임하게 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늘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가 내 마음에 넘치도록 기도해야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깨달아 이 시대에 남은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 은혜로 인하여 세상을 이기는 힘, 나를 이기는 힘, 정욕을 이기는 힘, 부정한 생각을 이기는 힘,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를 위해 몸을 내 던질 수 있는 힘,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화 하고 믿음으로 순종하는 힘, 영원한 하늘나라와 천국의 상을 위해 영혼을 섬기는 은혜 받은 자, 남은 자로 살아가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