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창세기 5:21-24
21 에녹은 예순다섯 살에 므두셀라를 낳았다.
22 에녹은 므두셀라를 낳은 뒤에, 삼백 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아들딸을 낳았다.
23 에녹은 모두 삼백육십오 년을 살았다.
24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사라졌다.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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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4장17-24절에는 가인의 계보를 알려 줍니다. 가인이 에녹을 낳고, 에녹은 이랏을 낳고, 이랏은 므후야엘을 낳고, 므후야엘은 므드사엘을 낳고, 므드사엘은 라멕을 낳고, 라멕은 야발, 유발, 두발 가인을 낳았다고 하면서 그들이 하나님을 떠나 자신들의 성을 쌓고 자기 힘과 기술로 폭력과 죄를 자랑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그리고 창세기 5장에는 아벨이 죽은 후에 하나님께서 아벨을 대신하여 주신 셋의 자손들을 아담으로부터 시작하는 족보를 보여 줍니다. 그래서 5:1절에 “아담의 역사는 이러하다” 라고 시작하면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음을 다시한번 상기시키며 3절부터 아담으로부터 시작되는 셋의 계보를 알려 줍니다. 3-5절의 말씀을 보면 “아담은 백서른 살에 자기의 형상 곧 자기의 모습을 닮은 아이를 낳고, 이름을 셋이라고 하였다. 아담은 셋을 낳은 뒤에, 팔백 년을 살면서 아들딸을 낳았다. 아담은 모두 구백삼십 년을 살고 죽었다.”
그 다음 구절부터 셋은 에노스를 105살에 낳고 920년을 살다 죽었다. 에노스는 아흔살에 게난을 낳고 905살에 죽었다라고 하면서 반복해서 누가 누구를 낳고, 몇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00세를 살고 죽었더라는 패턴으로 20절까지 기록합니다. 아담 이후 죄의 결과인 죽음은 예외 없이 모든 사람에게 찾아왔습니다. 아담도, 셋도, 에노스도, 게난도, 마할랄렐도, 야렛도 모두 죽었습니다.
그런데 에녹이라는 사람은 죽었다는 말이 없습니다. 23-24절을 보면 “에녹은 모두 삼백육십오 년을 살았다.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사라졌다.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신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에녹을 죽음을 겪지 않고 하늘로 데려가셨다는 것입니다.
죽음의 족보 속에 죽음을 경험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데려가신 에녹의 삶을 우리에게 간략하게 알려 주면서 우리가 살아야 할 삶의 모습을 보여 주시고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에녹의 삶을 어떤 삶이었습니까? 그의 삶을 단 한 마디로 설명합니다. 23절입니다. “에녹은 므두셀라를 낳은 뒤에, 삼백 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아들딸을 낳았다” 25절에도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사라졌다.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신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에녹에 대해 기록한 내용을 보면 에녹이 어떠한 위대한 업적이나, 기적, 놀라운 성취를 이루었다는 내용이 없습니다. 그렇기에 성경은 에녹을 “능력의 사람이다. 하나님께서 쓰신 특별한 종이다” 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에녹은 다른 사람들과 같이 아들 딸을 낳고 살았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의 삶에 대해 단 한 가지를 반복하여 말합니다.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라는 것입니다.
세상은 우리를 평가할 때 “무엇을 이루었는가? 얼마를 모았는가? 얼마나 성공했는가? 얼마나 봉사했는가? 얼마나 헌신했는가?” 로 평가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너는 나와 함께 걸었느냐?”“너는 나와 함께 동행했느냐?”를 물으십니다.
신앙의 핵심은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가느냐, 하나님을 따라 가느냐에 있습니다.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했다 라고 할 때 ‘동행’이라는 말이 히브리어로 ‘하나님 앞에서 걷다, 하나님과 보조를 맞추다’ 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란 내가 가고 싶은 길로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가라고 하는 길로 가는 것입니다. 함께 걷는다는 것은 내가 빠르고 싶을 때도 하나님이 멈추시면 멈추는 것입니다. 나는 멈춰 서고 싶지만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시면 계속 해서 걷는 것입니다.
에녹의 시대는 결코 경건한 시대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섬기는 시대가 아니었습니다. 곧 노아의 홍수로 심판을 받을 만큼 죄악이 관영한 시대였습니다. 그런 시대 가운데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다는 것은 세상의 흐름과 동행하지 않고, 죄의 문화와 타협하지 않고, 자기 욕심과 자기 뜻대로 세상 욕심과 가치관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분별하여 살았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기준과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뜻대로 살아가는 것이 어렵게 느껴집니다. 손해보는 것 같고, 망할 것 같고, 세상에서 도태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주님과 동행하는 것이 축복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마태복음 11:28-30절의 말씀입니다. “수고하며 무거운 짐을 진 사람은 모두 내게로 오너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한테 배워라. 그리하면 너희는 마음에 쉼을 얻을 것이다.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는 명령은 나와 동행하라는 명령입니다. 농부들이 봄이 되면 밭에 씨를 뿌리기 위해 땅을 갈기 위해 쟁기질을 합니다. 그럴 때 이스라엘에서는 두 마리의 소를 함께 묶고 뒤에서 사람이 쟁기를 잡고 따라가면서 땅을 기경하는 것입니다. 그때 두 마리의 소가 함께 맞추어 갈 수 있도록 멍에를 올려놓습니다.
이 멍에가 바로 동행인 것입니다. 멍에를 매면 자유함이 없어지고, 힘들고 어려울 것 같지만 주님과 함께 멍에를 메고 함께 갈 때 그 때 참된 마음의 쉼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참된 자유, 참된 평강, 참된 기쁨과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실 주님과 동행하며 살아가는 삶을 살아볼 때 깨닫고 경험하게 됩니다. 주님의 말씀과 명령대로, 주님의 인도하심대로 살아가면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시고, 역사하시고, 도우시고 부어 주시는 놀라운 축복을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다른 방향으로 가려면 우리는 잘 갈 수가 없습니다. 잘 살 수가 없습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이 창조하셨고, 하나님이 다스리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과 다른 방향으로 가면 성공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세상이 말하는 헛된 성공과 부와 명예는 얻지 못하지만 하나님께서 주시는 참된 쉼과 축복, 하늘의 평강과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축복을 누리며 살아가는 것이 바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입니다.
본문 22절을 보면 “에녹은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며”라고 말합니다. 에녹은 300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까지 동행했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잠깐의 열심이 아닙니다. 일시적인 감정도 아닙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좋을 때가 있고 힘들 때가 있습니다. 마음에 뜨거울 때도 있고, 식을 때도 있습니다.
에녹이 하나님을 믿고 따르며 동행하는 신앙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진 동행이었습니다. 흔들리지 않고, 딴 생각 품지 않고 마음을 지켜서 따르는 동행이었습니다. 충성됨의 동행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흔들리지 않는 동행을 기뻐하십니다. 그것이 참된 믿음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삶이 에녹과 같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발걸음이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부른 “주와 같이 길 가는 것 즐거운 일 아닌가” 라는 찬송과 같이 천국에 소망을 두고, 주님의 손을 잡고, 주님의 인도하심대로, 주님 뜻대로 주님 만날 그날 까지 함께 동행하는 인생이 되기를 원합니다.
에녹의 삶은 우리에게 분명히 말합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은 죽음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이 땅의 인생은 비록 언젠가는 끝이 나지만 하나님과 동행한 삶은 끝이 아니라 옮겨짐입니다. 단절이 아니라 연결입니다.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하시는 주님과 동행하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는 신앙이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