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로마서 12:3

3 나는 내가 받은 은혜를 힘입어서, 여러분 각 사람에게 말합니다. 여러분은 스스로 마땅히 생각해야 하는 것 이상으로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분수에 맞게 생각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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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12장은 하나님의 은혜로 죄 용서함을 받고, 구원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 즉 성도가 되었다면 어떻게 성도답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말씀이 시작되는 장입니다. 성도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첫째, 헌신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예배니라” 우리 삶을 세상과 구별된 삶, 내가 아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원함을 바로 알고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 영혼을 위해 헌신하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그런 헌신의 삶, 영적예배를 드리는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말씀이 3절부터 이어집니다. 12:3절 “나는 내가 받은 은혜를 힘입어서, 여러분 각 사람에게 말합니다. 여러분은 스스로 마땅히 생각해야 하는 것 이상으로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분수에 맞게 생각하십시오” 여기서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으로 생각하지 말라”라는 것을 요즘 우리가 잘 쓰는 표현으로 바꿔 말하면 “주제넘은 생각을 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끝부분에 말한 것처럼 분수에 맞게 생각하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주제넘은 생각이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주도권이 자기에게 있다는 생각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주제 넘는 생각으로 살기 쉽습니다. 내가 인생의 주인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와 주님으로 믿는다는 것입니다. 내 삶의 주인이 예수님이시오 나는 그분의 뜻에, 말씀에 순종하며 살겠다는 것입니다. 예수 믿기 전에, 구원 받기 전에는 내가 삶의 주인이요 내 생각, 내 뜻, 내 감정과 원함에 따라 살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었으면 다르게 생각하고 살아야 합니다. 이제 예수 믿었기에 “스스로 마땅히 생각해야 하는 것 이상으로 생각하지 말라”라고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었고 구원 받았고 거룩한 성도라고 칭함을 받았는데도 마땅히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주제 넘는 생각을 품고 살기 쉽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의 생각과 말을 들어보면 항상 주어가 ‘나’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으로부터 창조함을 받은 천사 중에 루시퍼가 품었던 생각, 내 뱉은 말이 “나”였습니다. 이사야 14:13-14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좌정하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 하도다” 영어 성경을 보면 더 확실하게 느껴지는 데 모든 문장의 처음이 “I will”입니다.

모든 주도권이 다 자기에게 있다고 생각하게 하는 것은 사단의 생각입니다. 그것이 성경이 말하는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이고 강팍한 마음입니다. 우리가 비록 예수를 믿었고 구원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 성도가 되었어도 죄성을 가지 우리는 모두는 그런 생각을 버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그런 생각으로 살면 안된다는 것을 우리에게 권면하시며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내 생각과 말에 주어가 내가 아니라 하나님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내 삶의 주인이 나에서 하나님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내가 생각하고 결정하는 것이 내 생각, 내 이익, 내 원함, 내 뜻과 계획에서 하나님의 생각, 성령의 생각, 주님의 원함, 주님의 뜻과 계획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우리가 질문해 보아야 합니다. 자세히 살펴보아야 합니다. 내가 하는 말의 주어가 무엇입니까? 아직도 나라면 주어가 바뀌어야 합니다. ‘내가 무엇을 한다, 내가 이렇게 할 것이다’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가?’라고 질문하며 살아야 합니다. “내 생각에는”에서 주님이 무엇을 원하시고 무엇을 기뻐하시는지를 묻고 알고 순종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모습이 쉬운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본성을 거스리는 일입니다. 육체를 가진 우리, 죄성을 가진 우리는 하나님을 믿었지만 여전히 “나” 중심으로 살기를 바라는 본성이 강합니다. 우리의 모습을 자세히 살펴보십시오. 최씨가 고집이 쎄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 말을 하면 “강씨 고집이 더 쎕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럼 옆에 있는 분이 몰라서 그렇지 “고씨가 더 쎕니다” 라고 말합니다. 그런 말 하는 것 들어보지 못했습니까? 어느 성씨가 고집이 쎈게 아니라 우리 인간은 모두 자기 고집이 쎕니다. 자기 고집 내려놓지 않습니다. 자기 생각, 자기 의견, 자기 원함을 쉽게 내려놓는 자가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 믿어 구원 받은 성도는 자기 생각, 자기 고집을 하나님의 생각과 말씀 앞에 내려놓아야 합니다. 내 고집으로 하나님을 설득하려고 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뜻 앞에 내가 설득당해야 합니다. 믿음이 성숙한 자의 특징은 쉽게 자기 뜻, 자기 원함을 다른 사람을 위해, 덕이 되고 하나 되기 위해 내려놓을 줄 아는 자입니다. 다시 말해서 수용성이 있어야 합니다.

고집스럽다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딱딱하다는 말입니다. 어린아이의 피부는 부드럽습니다. 반면에 나이가 들수록 딱딱해집니다. 비가 온 후에 빗물을 흠뻑 흡수한 땅은 부드럽습니다. 반면에 물기가 없는 땅은 딱딱합니다. 우리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마음을 기도와 말씀으로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하게 임하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부드러워집니다. 생각이 부드럽다는 것은 수용성이 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는 영성을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깊이 기도해야 합니다. 내 뜻대로, 원함대로 하나님을 설득하고 원하는대로 달라는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수용할 수 있고 받아 들일 수 있는 마음이 될 때까지 기도해야 합니다. 자기 생각을 고집하지 않고 하나님의 생각을 받아들인 대표적인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의 겟세마네의 기도를 보십시오. 마가복음 14:36 “가라사대 아바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예수님의 기도의 앞부분은 ‘십자가를 지는 것이 너무 힘이 듭니다. 안지고 싶습니다’하는 인간적인 고백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 고백은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수용하기 위한 기도였습니다. 마땅히 생각해야 할 바른 생각과 행동을 하기 위한 기도였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수용하고 순종할 때 하나님의 뜻이,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 품지 말아야 할 생각 가운데 하나가 바로 근심과 걱정입니다. 마땅히 생각할 생각인 하나님을 주님으로 생각하고 주님의 말씀과 생각을 수용하고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십니다. 마땅히 생각한 생각을 하고 살 때 근심과 걱정이 사라지고 감사와 기쁨과 자유함과 담대함과 평강을 누리며 살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 품지 말아야 할 생각 가운데 또 다른 하나가 바로 내가 불행하다는 생각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불행한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시고, 자녀가 되었고, 구원 받았고, 천국을 약속 받았고, 기도에 응답하시고 필요를 아시고 채워 주십니다. 그런데 주변을 보면 생각보다 많은 성도들이 자기가 불행하다고 생각하고 원망과 불평으로 살아갑니다.

불행하고 느끼며 사는 것은 생각이 잘못되었기 때문에 불행하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감사할 것이 너무나 많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축복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것은 바라보지 못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귀한 것들에 만족하지 못하고 자신에게 이것이, 저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단은 우리에게 만족을 느끼지 못하게 합니다. 주신 것에 감사하지 못하게 합니다. 에덴동산에 살던 아담과 하와, 얼마나 감사하고 만족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주신 것들이 많습니까? 그런데 사단은 단 한그루의 나무, 하나님께서 금하신 선악과를 먹지 못하면 불행하다고 느끼게 한 것입니다.

어느 책에 이런 글이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어느 수도원에 갔더니 그 수도원에 있는 수도사가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뭐든지 말씀하십시오” 그 사람은 자기가 필요하다고 하면 뭐든지 가져다 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 수도사가 이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없이도 사는 방법을 가르쳐드리겠습니다” 우리는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없이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 땅에 살아갈 때 내가 생각할 때 필요하다고 꼭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없어도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우리보다 더 잘 아시고 허락하셨습니다.

우리는 육체를 위해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디모데전서 6:6-8 “자족할 줄 아는 사람에게는, 경건은 큰 이득을 줍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세상에 가지고 오지 않았으므로, 아무것도 가지고 떠나갈 수 없습니다” 우리는 더 많은 것을 필요하다고, 더 편한 것을 채우려고 몸부림치는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채워주시는 은혜로 말미암아 만족하는 인생이 되기를 바랍니다. 마땅히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주신 것들, 주 안에 생각하는 법을 배워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내 뜻을 주님의 뜻에 내려놓고 살 수 있는 참된 성도의 삶, 참된 자유와 축복의 삶을 살아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ategory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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