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창세기 13:5-16
5 아브람과 함께 다니는 롯에게도, 양 떼와 소 떼와 장막이 따로 있었다.
6 그러나 그 땅은 그들이 함께 머물기에는 좁았다. 그들은 재산이 너무 많아서, 그 땅에서 함께 머물 수가 없었다.
7 아브람의 집짐승을 치는 목자들과 롯의 집짐승을 치는 목자들 사이에, 다툼이 일어나곤 하였다. 그 때에 그 땅에는, 가나안 사람들과 브리스 사람들도 살고 있었다.
8 아브람이 롯에게 말하였다. “너와 나 사이에, 그리고 너의 목자들과 나의 목자들 사이에, 어떠한 다툼도 있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한 핏줄이 아니냐!
9 네가 보는 앞에 땅이 얼마든지 있으니, 따로 떨어져 살자. 네가 왼쪽으로 가면 나는 오른쪽으로 가고, 네가 오른쪽으로 가면 나는 왼쪽으로 가겠다.”
10 롯이 멀리 바라보니, 요단 온 들판이, 소알에 이르기까지, 물이 넉넉한 것이 마치 주님의 동산과도 같고, 이집트 땅과도 같았다. 아직 주님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시기 전이었다.
11 롯은 요단의 온 들판을 가지기로 하고, 동쪽으로 떠났다. 이렇게 해서 두 사람은 따로 떨어져서 살게 되었다.
12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서 살고, 롯은 평지의 여러 성읍을 돌아다니면서 살다가, 소돔 가까이에 이르러서 자리를 잡았다.
13 소돔 사람들은 악하였으며, 주님을 거슬러서, 온갖 죄를 짓고 있었다.
14 롯이 아브람을 떠나간 뒤에, 주님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너 있는 곳에서 눈을 크게 뜨고, 북쪽과 남쪽, 동쪽과 서쪽을 보아라.
15 네 눈에 보이는 이 모든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아주 주겠다.
16 내가 너의 자손을 땅의 먼지처럼 셀 수 없이 많아지게 하겠다. 누구든지 땅의 먼지를 셀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너의 자손을 셀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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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3장의 내용은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으로 함께 왔던 롯과의 갈등이 생겼을 때 그 갈등을 해결한 사건에 대한 내용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으로 아브라함과 롯의 가축들이 너무 많아져서 가축을 돌보는 목자들 사이에 서로 초목이 있는 땅으로 가축을 방목하려고 의도치 않았던 다툼이 일어났습니다. 그로 인하여 아브라함과 롯의 관계에도 갈등이 시작된 것입니다.
우리도 살아가면서 여러 관계 속에서 생각지 못한, 원하지 않았던 갈등의 문제가 생깁니다. 모르는 사람과의 갈등이 아닌 사랑하고 아껴야 할 사람들과의 관계입니다. 아브라함과 롯, 삼촌과 조카의 관계입니다. 가축이 더 많아진 축복 속에서 생긴 갈등입니다. 갈등과 긴장은 언제나 생길 수 있는 일들입니다. 부부관계, 부모와의 관계, 자녀와의 관계, 친구와의 관계, 직장 동료와의 관계, 교회 안에 성도 간에도 갈등이 있습니다. 문제는 갈등 자체가 아니라, 그 갈등을 어떻게 해결하느냐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모습을 통하여 그러한 갈등의 문제를 해결하는 믿음의 모습을 보여 주십니다. 아브라함은 조카 롯과의 갈등, 서로 많은 가축으로 인해 일어나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합니까? 8-9절입니다. “아브람이 롯에게 말하였다. “너와 나 사이에, 그리고 너의 목자들과 나의 목자들 사이에, 어떠한 다툼도 있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한 핏줄이 아니냐! 네가 보는 앞에 땅이 얼마든지 있으니, 따로 떨어져 살자. 네가 왼쪽으로 가면 나는 오른쪽으로 가고, 네가 오른쪽으로 가면 나는 왼쪽으로 가겠다”
아브라함은 조카 롯에게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라고 양보합니다. 아브라함은 롯보다 연장자였습니다. 롯의 아버지 하란이 일찍 죽었기에 사실 아버지처럼 롯을 돌보고 키운 사람이었습니다. 어떤 면을 보아서는 선택권은 아브라함에게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롯에게 먼저 원하는 땅을 선택하도록 양보합니다.
이것이 참된 믿음의 모습인 것입니다. 왜 아브라함이 조카 롯에게 양보하며 먼저 선택하라고 했을까요? 아브라함은 하나됨의 관계를 물질보다, 자신의 이익보다 더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아브라함은 눈에 보이는 땅보다 하나님의 약속을 더 신뢰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이미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사람입니다. 땅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지, 사람이 먼저 차지한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참된 믿음은 손해 볼 수 있는 용기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은 계산하지 않습니다.
반면에 롯은 눈에 보이는 땅, 당장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것을 선택합니다. 사실 삼촌 아브라함이 “네가 먼저 택해라” 라고 제안했지만 그동안 받은 은혜와 사랑, 축복을 생각하면 “아닙니다. 삼촌이 먼저 택하셔야죠” 라고 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롯은 그런 예의, 그런 믿음이 없었던 것입니다. 롯의 선택은 당장 눈에 좋아 보이는 것을 택한 것입니다. 이것이 보통 세상 사람들의 모습인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대로, 내 이익과 편함을 따라 결정합니다.
그런데 그러한 롯의 선택속에 성경은 의미심장한 구절을 덧붙입니다. 10절입니다. “롯이 멀리 바라보니, 요단 온 들판이, 소알에 이르기까지, 물이 넉넉한 것이 마치 주님의 동산과도 같고, 이집트 땅과도 같았다. 아직 주님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시기 전이었다” 그리고 13절에 “소돔 사람들은 악하였으며, 주님을 거슬러서, 온갖 죄를 짓고 있었다”
육신의 눈에 좋아 보이는 것의 위험성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는 말씀입니다. 롯은 요단 지역, 소돔과 고모라 땅을 바라봅니다. 그 땅은 물이 넉넉했고, 마치 에덴동산 같았습니다. 롯은 육신의 눈에 보이는 조건을 따라 선택합니다. 육신의 눈에 보이지 않는 소돔과 고모라이 영적 죄악과 어두움을 보지 못한 것입니다.
롯은 세상적인 눈에 보이는 풍요를 택한 것입니다. 하지만 결국 그 선택은 소돔과 고모라 성 안으로 점점 가까이 들어가게 되는 잘못된 발걸음이 된 것입니다.
우리가 롯의 선택에서 배우는 교훈이 있습니다. 눈에 좋아 보이는 것이 항상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물질적 풍요와 편함, 잘됨이 영적 안전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내가 선택하는 선택이 하나님을 더 가까이 하는, 십자가를 더 가까이 하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선택인지, 나의 욕심과 원함, 내 뜻과 편함, 이익과 고집을 추구하는 선택인지를 분별해야 합니다.
롯의 인간적이고 육적인 선택이 결국 점점 소돔을 향해 옮겨가는 발걸음이 되었고 결국 그 끝이 얼마나 비참하고, 안타까운 결과에 다달았는지 우리를 압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기도해야 할 것이 영적인 눈으로, 당장 눈 앞에 보이는 이익과 감정과 욕심, 분노함으로 말하고 행동하고 선택하는 미련함을 버리고 영적인 눈으로 비록 희생과 고통, 어려움이 있지만 좁은 길, 십자가의 길,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길을 선택하는 믿음의 선택이 되기를 기도하기 원합니다.
롯은 눈에 보이는 좋은 땅을 선택하여 나아갑니다. 아브라함은 인간적으로 손해 본 것입니다. 그동안 애를 써서 돌보고 인도해 주었는데 어떤 면에서는 뒤통수를 맞은 것입니다. 왜 인간적인 마음에 씁씁함이 없었겠습니까? 롯이 떠난 후,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다시 말씀하십니다. “너는 눈을 들어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놀랍게도 아브라함이 인간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계산하지 않고 먼저 양보하고 희생하자 하나님께서 더 큰 복을 주시겠다고 분명하고 확실하게 약속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잃는 것 같지만, 결국 더 큰 것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습니다. 믿음은 먼저 순종하고, 희생하고 나중에 보상을 받습니다. 로마서 8:18절에도 “현재 받는 고난은 장차 나타날 영원하고 비교할 수 없이 큰 하나님의 영광과 위로에 비할 수 없습니다” 라고 약속합니다.
오늘 본문의 사건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는 신앙의 원리는 갈등 속에서 평화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 나의 이익, 나의 자존심을 내려 놓고, 인간적으로 볼 때는 손해와 희생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자를 하나님께서 더 크게 축복하십니다.
그리고 육신의 눈이 아닌 영적인 눈으로 판단하고 분별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세상은 “좋아 보이는 것”을 말하지만, 믿음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묻습니다. 손해 보는 듯해도 하나님을 신뢰하라는 것입니다. 영적인 분별을 구하여 눈에 보이는 것을 선택하는 미련한 자가 아닌 영원한 것, 하나님의 것을 선택하는 지혜로운 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