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하박국 3:1-3, 18

1 이것은 시기오놋에 맞춘 예언자 하박국의 기도이다.
2 주님, 내가 주님의 명성을 듣습니다. 주님, 주님께서 하신 일을 보고 놀랍니다. 주님의 일을 우리 시대에도 새롭게 하여 주십시오. 우리 시대에도 알려 주십시오. 진노하시더라도, 잊지 마시고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3 어찌하여 나로 불의를 보게 하십니까? 어찌하여 악을 그대로 보기만 하십니까? 약탈과 폭력이 제 앞에서 벌어지고, 다툼과 시비가 그칠 사이가 없습니다.
18 나는 주님 안에서 즐거워하련다.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 안에서 기뻐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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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의 말씀은 하박국 선지자의 기도입니다. 1절에 시기오놋에 맞춘 기도라고 되어 있는데 시기오놋이란 문학용어 혹은 음악용어라고 할 수 있는 슬픔의 노래, 애조를 띠어 브르는 노래 형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박국 선지자의 기도는 자신의 생활 속에 어려움이 아닌 이스라엘 나라가 무너지게 될 것을 알고 슬퍼함 속에 하나님께 질문하며 드린 기도입니다.

하박국이 살던 남 유다는 요시아 왕이 종교 개혁을 일으켜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을 섬기는 나라로 회복되는 것 같았지만 요시아 왕이 죽은 후 그의 아들 여호아하스, 여호야김, 여호야긴, 시드기야 시대로 이어지면서 우상숭배, 폭력, 사회적 불의가 넘쳐났습니다. 부패한 나라와 사회를 보면서 하박국은 하나님께 왜 이런 죄악을 가만히 보고만 계시냐고 하박국 1:3절에 항의하는 기도를 합니다. “어찌하여 나로 불의를 보게 하십니까? 어찌하여 악을 그대로 보기만 하십니까? 약탈과 폭력이 제 앞에서 벌어지고, 다툼과 시비가 그칠 사이가 없습니다. 율법이 해이하고, 공의가 아주 시행되지 못합니다. 악인이 의인을 협박하니, 공의가 왜곡되고 말았습니다”

그러할 때 하나님께서 바벨론 나라를 통하여 남 유다를 망하게 할 것이라고 하박국에게 알려 줍니다. 그 당시 바벨론 나라가 점점 강성해지면서 느니웨 즉 앗시리아의 수도를 정복하고, 이집트까지 제압합니다. 그러나 바벨론 나라 역시 잔혹하고 폭력적인 악한 제국이었습니다.

처음에 하박국은 하나님께 “왜 악한 죄를 짓고 살아가는 남 유다를 가만히 두십니까? 왜 죄에 대한 심판이 없이 악인들이 잘 살아갑니까?” 라고 질문하며 기도했는데 하나님께서 남 유다 보다 더 악한 나라인 바벨론을 들어서 남 유다를 심판하시겠다고 하시자 “어떻게 더 악한 바벨론에게 남 유다를 넘기십니까?” 라고 질문합니다. 하지만 바벨론에 사로잡혀 고통을 당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상황 속에서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는 것을 깨닫게 하시고 그 깨달음을 가진 하박국 선지자가 우리가 잘 아는 “비록 무화과나무가… 없어도, 외양간에 소가 없어도 … 나는 주님으로 즐거워한다” 라고 찬양함으로 하박국 선지서가 마칩니다.

나라가 망하여 고통 중에 있고, 소망이 없는 상황에 들어갔을 때 하박국이 하나님을 향하여 기도한 기도가 본문의 기도입니다. 하박국 3:1-2 “시기오놋에 맞춘바 선지자 하박국의 기도라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일을 수년내에 부흥케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

하박국의 기도의 내용은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는 기도를 했습니다. 구약성경에는 하나님의 진노라는 단어가 375번이나 등장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오래 참으시고 기다리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또한 의로우시고 거룩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죄에 대해서, 거룩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 추하고 죄악된 것에 대해서는 진노하시고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렇기에 북 이스라엘이 주전 722년에 앗시리아 제국에 망했습니다. 그 망한 이유에 대해서 수많은 선지자들이 하나님을 떠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고 우상을 숭배했기 때문이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남 유다는 태연했습니다. 자신들에게는 예루살렘 성전이 있고 북 이스라엘 백성들에 비해서 자신들은 더 종교적이고 더 도덕적인 삶을 살고 있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유다 백성들의 겉모습에는 종교성이 있었습니다. 나름대로 제사를 드리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삶에는 방종과 간음과 하나님의 말씀에 반대되는 삶을 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죄를 인정하지도, 깨닫지도 못하고 회개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한 남 유다를 하나님께서 바벨론 제국을 통하여 죄의 심판을 진노 가운데 하시겠다고 하박국 선지자에게 알려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을 들은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의 하시는 방법이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1장의 하박국의 기도는 “어찌하여” 라는 단어를 반복적으로 쓰면서 질문합니다. “하나님, 어찌하여 그 악하고 포악한 바벨론 나라가 강대국이 될 수 있습니까? 저들은 악을 행하고 우상을 섬기는 나라입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그 나라에게 그래도 하나님이 택하신 나라인 남 유다를 넘기시려고 하십니까?‘이건 불합리하지 않습니까?” 이런 기도를 합니다.

그러다가 3장의 들어가서 기도가 바뀝니다. 오늘 읽은 본문을 보면 ‘맞습니다. 이 백성이 바벨론 나라에 짓밟히고 겁탈을 당하고 패하게 된 것이 당연합니다. 그동안 이 민족의 죄와 부도덕과 타락을 하나님께서 오래 참으셨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진노하시는 것이 당연합니다’ 라는 기도가 나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박국이 기도하는 기도는 이것입니다. “하나님 이 백성이 하나님의 진노를 당하는 것 당연합니다. 아무런 이의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 민족을 불쌍히 여기시고 긍휼을 베풀어 주십시오”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에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에 호소함으로 구원해 달라는 것입니다. 한번 더 기회를 달라는 것입니다.

알렉산더 대왕 시대에 한 병사가 탈영을 하다가 잡혔다고 합니다. 그는 한번이 아니라 벌써 두 번째 탈영을 하다가 잡힌 것입니다. 한번 탈영은 감옥에 들어가 고생하다가 나오지만 두 번 탈영은 사형에 처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를 사형하려고 하는데 그의 어머니가 알렉산던 대왕 앞에 울면서 자신의 아들을 살려 달라고 호소하는 것이었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이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의 아들은 이미 두 번이나 탈영을 했기에 법에 의해서 사형을 하는 것이다. 죽이는 것이 의로운 일이 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어머니가 말하는 것은 “제가 대왕님께 호소하는 것은 의에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대왕님의 긍휼함에 호소하는 것입니다”

하박국이 기도한 것은 법대로 하면 당연히 유다 민족이 망하고 벌을 받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긍휼하심에 호소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2절에 “하나님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 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그리고 하박국 선지자가 기도한 것은 “주의 일을 수년 내에 부흥케 하옵소서. 이 수년내에 나타내시옵소서” 라는 기도입니다. 부흥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부흥이라는 말은 본래 ‘다시 살린다’ 라는 뜻입니다. 하박국 선지자가 하나님께 매달리며 부흥케 해달라고 한 것은 이런 것입니다. “하나님, 이 민족이 죄로 인해 심판을 받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완전히 멸하지 마시고 한번 살려 주십시오. 다시 기회를 주십시오. 매를 맞는 것 당연합니다. 마땅합니다. 그러나 이 민족을 아주 버리지 마시고 긍휼히 여기셔서 한번만 더 기회를 주십시오. 다시 민족이 일어 설수 있는 재건의 기회를 주시옵소서”

우리가 지금도 기도해야 할 부분이 이것이라고 믿습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기도해야 합니다. 내 자신을 돌아보면 얼마나 부족합니까? 얼마나 악합니까? 하나님의 의로우심으로만 우리를 대한다면 우리는 당장에 멸망당해야 하는 인생이 아닙니까?

그리고 단지 우리의 어려움에서 건져 주시고 살려달라는 긍휼함을 구하는 것을 넘어서 우리로 부흥하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하신대로 바른 신앙, 바른 모습으로 세워져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부흥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2025년을 보내고 2026년 새해를 맞이하는 연말에 저와 여러분들의 삶에, 그리고 우리 교회에 하박국의 기도처럼 “주님의 일을 우리 시대에도 새롭게 하여 주십시오. 우리 시대에도 알려 주십시오. 진노하시더라도, 잊지 마시고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 라는 기도를 통하여 부흥이 있기를 원합니다. 그로 인하여 18절의 결론과 같이 “나는 주님 안에서 즐거워하련다.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 안에서 기뻐하련다.” 라는 역사하심과 찬양함이 넘치기를 축원합니다.

Category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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