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창세기 18:22-29
22 그 사람들은 거기에서 떠나서 소돔으로 갔으나, 아브라함은 주님 앞에 그대로 서 있었다.
23 아브라함이 주님께 가까이 가서 아뢰었다. “주님께서 의인을 기어이 악인과 함께 쓸어 버리시렵니까?
24 그 성 안에 의인이 쉰 명이 있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래도 주님께서는 그 성을 기어이 쓸어 버리시렵니까? 의인 쉰 명을 보시고서도, 그 성을 용서하지 않으시렵니까?
25 그처럼 의인을 악인과 함께 죽게 하시는 것은, 주님께서 하실 일이 아닙니다. 의인을 악인과 똑같이 보시는 것도, 주님께서 하실 일이 아닌 줄 압니다. 세상을 심판하시는 분께서는 공정하게 판단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26 주님께서 대답하셨다. “소돔 성에서 내가 의인 쉰 명만을 찾을 수 있으면, 그들을 보아서라도 그 성 전체를 용서하겠다.”
27 아브라함이 다시 아뢰었다. “티끌이나 재밖에 안 되는 주제에, 제가 주님께 감히 아룁니다.
28 의인이 쉰 명에서 다섯이 모자란다고 하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다섯이 모자란다고, 성 전체를 다 멸하시겠습니까?” 주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거기에서 마흔다섯 명만 찾아도, 그 성을 멸하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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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어떤 물건을 살 때 가격 그대로 사야 하는 것이 있지만 어떤 물건들은 흥정을 해서 더 싸게 살 수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차를 살 때 그렇습니다. 가격표가 붙어 있지만 더 깍을 수 있습니다. 가격을 흥정합니다. 흥정이 오가면서 어느 시점에서 그럼 얼마에 하자라고 결정을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흥정을 하는 이유는 조금이라도 내게 이익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차를 사는 입장에서는 조금 덜 지불하겠다는 것이고 딜러 입장에서는 조금이라도 더 받겠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아브라함이 하나님과 흥정하는 모습이 나오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숫자를 낮추면서 여러번 흥정을 합니다. 50명에서 40명으로, 그리고 30에서 20명으로 그리고 마지막으로 10명이면 어떻겠냐고 흥정을 합니다. 한 두번 흥정은 그런대로 이해가 되지만 아브라함은 5번이나 숫자를 내리는 우리 표현으로 보면 얼굴에 철판을 깐 것처럼 최대한으로 숫자를 내리는 흥정을 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간청과 흥정은 자신의 이익을 위함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자신을 위함이 아니라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흥정이었다는 것입니다.
제가 흥정이라는 표현을 썼지만 그것은 아브라함의 기도였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 앞에 간구한 기도는 자신을 위한 기도가 아니었습니다. 롯을 살리기 위한 기도였고 더 나아가 소돔과 고모라의 시민들을 살리기 위한 기도였습니다.
아브라함을 찾아 오셨던 하나님은 소돔과 고모라 성의 죄악으로 인하여 그 성을 심판하여 멸망하시겠다는 것을 알려 주십니다. 소돔과 고모라 성이 죄악으로 인해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것, 사실 아브라함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이 아닙니까? 죄를 지었으면 심판을 받아야 마땅히 받아야 하는 것 아닙니까? 조카 롯도 어떻게 보면 배은망덕한 사람이 아닙니까?
그런데 아브라함은 그들의 죄악이 심해서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고 하는 아브라함과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소돔과 고모라의 백성들을 위해서 하나님 앞에 그들을 살리고자 아룁니다. 23-25절입니다. “아브라함이 주님께 가까이 가서 아뢰었다. “주님께서 의인을 기어이 악인과 함께 쓸어 버리시렵니까? 그 성 안에 의인이 쉰 명이 있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래도 주님께서는 그 성을 기어이 쓸어 버리시렵니까? 의인 쉰 명을 보시고서도, 그 성을 용서하지 않으시렵니까? 그처럼 의인을 악인과 함께 죽게 하시는 것은, 주님께서 하실 일이 아닙니다. 의인을 악인과 똑같이 보시는 것도, 주님께서 하실 일이 아닌 줄 압니다. 세상을 심판하시는 분께서는 공정하게 판단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브라함은 엎드려 하나님께 중보기도를 한 것입니다. 어떻게 하든 살리고자 하는 마음. 이것이 참된 신앙을 가진 사람, 하나님의 마음, 성숙한 신앙의 사람의 모습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죄로 인해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알자 간구합니다. 27절 “아브라함이 다시 아뢰었다. 티끌이나 재 밖에 안되는 주제에, 제가 주님께 감히 아룁니다” 참된 신앙은 내가 누구인가를 인식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진정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내가 무익한 자요, 낮고 천한 죄인이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영원한 지옥 형벌을 받을 수밖에 없는 철저한 죄인임을 깨닫습니다.
예수 믿기 전, 예수님을 개인적으로 만나기 전에는 나 스스로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삽니까? 나는 의인이요. 내가 제일 똑똑하고, 내 생각이 항상 옳고. 잘못한 것은 늘 상대방에게 있다고 비난과 원망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고, 성경을 통하여, 성령님의 감화감동을 받으면 내가 가해자이고, 내 잘못이고, 내 탓이었고, 나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받았고, 나처럼 교만하고, 나처럼 이기적이고, 나처럼 감사할 줄 모르고, 나처럼 원망 불평이 많고, 나처럼 비난하고 정죄하고 악한 자가 없었음을 깨닫지 않습니까? 이런 깨달음이 없다면 정말 내가 예수를 만났고 믿고, 구원 받은 자인지, 예수의 영이신 성령님이 내 안에 계시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 안에서 자신을 바로 알았기에 하나님께 기도하며 ‘티끌 같은 나’ 라고 자신을 칭합니다. 티끌이라는 것은 먼지입니다. 우리는 나름대로 폼 잡고 살지만 티끌 같은 존재들입니다. 티끌, 더러운 먼지입니다. 티끌 같다는 의미는 단지 우리가 작다는 것이 아닌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죄인 됨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예레미야 17:9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이 하나님께서 무엇인가를 간구할 수 없는 존재임을 분명히 인식하였기에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간구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열등감하고는 다른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이 티끌 같은 존재일지라도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고, 택하시고, 붙드시고 축복하시는 하나님, 기도하고 간구하면 반드시 기도를 들으신다는 분명한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티끌 같고 재 같지만 주님께 감히 아룁니다” 라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자세가 겸손하지만 하나님 앞에 믿음으로 담대하게 기도하는 기도의 사람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