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호세아 9:1-4

1 이스라엘아, 너희는 기뻐하지 말아라. 이방 백성들처럼 좋아 날뛰지 말아라. 너희는 하나님에게서 떠나서 음행을 하였다. 너희는 모든 타작 마당에서 창녀의 몸값을 받으며 좋아하고 있다.
2 그러나 타작 마당에서는 먹거리가 나오지 않고, 포도주 틀에서는 새 포도주가 나지 않을 것이다.
3 에브라임이 주님의 땅에서 살 수 없게 되어 다시 이집트로 돌아가고, 앗시리아로 되돌아가서 부정한 음식을 먹을 것이다.
4 이방 땅에서는, 주님께 포도주를 제물로 부어 드릴 수 없고, 그들이 바치는 제물이 주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도 없을 것이다. 그들이 먹는 것은 초상집에서 먹는 음식과 같아서, 그것을 먹는 사람들마다 부정을 타게 될 것이다. 그들이 먹는 것은 허기진 배나 채울 수 있을 뿐, 주님께서 계신 집으로 가져다가 바칠 것은 못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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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아서의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는 죄에 대한 책망과 그 결과로 심판과 멸망이 있을 것임을 강하게 경고하시는 말씀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본문 9장의 말씀도 우상숭배를 하며 죄악에서 회개하지 않고 살아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돌이킬 수 있도록 다시한번 그들의 죄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 죄로 인하여 어떠한 심판과 징계를 받게 될 것인지를 알려 주시는 말씀입니다.

1절입니다. “이스라엘아, 너희는 기뻐하지 말아라. 이방 백성들처럼 좋아 날뛰지 말아라. 너희는 하나님에게서 떠나서 음행을 하였다. 너희는 모든 타작 마당에서 창녀의 몸값을 받으며 좋아하고 있다” 타작 마당이란 추수가 끝난 후에 모여서 축제를 벌이는 시간이요 장소입니다. 한해동안 수고하여 얻은 곡식과 열매를 추수한 후에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아, 너희는 기뻐하지 말아라” 라고 명하십니까? 그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닌 곡식과 열매를 주신 분이 하나님이신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기뻐하며 감사하며 제사를 드리며 즐거워 한 것이 아닌 이방 사람들처럼, 가나안 민족들처럼 바알과 아세라 우상 앞에서 감사 제사를 드리고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전에도 말씀드렸듯이 가나안 민족들은 바알과 아세라가 풍요의 신으로 섬기고 있었고 제사를 드릴 때마다 성적인 음행을 신전의 여 사제들과 종교적 의식으로 했던 것입니다. 그것을 1절에서 하나님께서는 “너희는 모든 타작 마당에서 창녀의 몸값을 받으며 좋아하고 있다” 라고 죄에 대해 고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추수의 축복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알려 주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보리의 첫 수확 후에 드리는 초실절 즉 맥추절과, 밀의 첫 이삭을 드리는 칠칠절, 즉 오순절, 그리고 모든 추수가 끝나고 드리는 초막절, 즉 추수 감사절과 같은 절기를 정하여 주셨습니다. 모든 곡식과 열매를 주시는 분이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알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뻐하라는 명령이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추수한 타작 마당에서 공급자이신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에게 그 감사의 제사를 드리며 음행하며 기뻐하며 즐거워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얼마나 큰 죄악입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와 축복을 받았는데 마땅히 감사를 드려야 할 하나님이 아닌 우상 앞에 감사하다고 엎드려 절하며, 하나님께서 증오하시는 음행의 죄를 지으며 기뻐하며 춤추고 있다면 그 결과가 어떠하겠습니까? 우리가 잘 알듯이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능력으로 이집트 노예생활에서 자유함을 얻고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가기 위해 광야로 들어간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산 아래 머물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야 할 하나님의 계명을 받기 위해 모세가 시내산 위에 올라간 사이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자신들을 구원하고 인도할 하나님이라고 숭배하며 춤추며 뛰어 논 사건이 출애굽기 32장에 나옵니다.

그 모습을 보신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시려고 했습니까? 하나님께서 분노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모두 진멸하시고자 하셨습니다. 그러할 때 모세가 세 가지 이유를 들어 중보기도를 합니다. 첫째, 하나님께서 직접 구원하여 내신 백성들을 하나님의 손으로 진멸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것입니다. 둘째, 그렇게 진멸시키시면 이방인들의 조롱거리가 된다는 것입니다. 셋째,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깨트리는 것이기에 하나님의 성품에 합당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모세의 중재 기도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진멸하지 않으셨지만 3000명이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분노가 얼마나 큰지를 알려 주는 사건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이 시내산 아래에서 금송아지를 하나님이라고 하며 제사 드리고 춤추며 기뻐하는 모습이 바로 호세아 9장 1절에서 하나님께서 타작 마당에서 바알과 아세라 앞에서 추수한 곡식과 열매를 감사하며 춤추며 음행하며 기뻐하는 모습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 그 죄악에 대한 대가로 2-3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타작 마당에서는 먹거리가 나오지 않고, 포도주 틀에서는 새 포도주가 나지 않을 것이다. 에브라임이 주님의 땅에서 살 수 없게 되어 다시 이집트로 돌아가고, 앗시리아로 되돌아가서 부정한 음식을 먹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더 이상 그 땅에서 먹거리가 나오지 않도록 기근과 가뭄으로 벌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더 이상 추수의 기쁨, 풍년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도록, 포도주 즙틀에서 포도주를 만들 수 없도록 하겠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주님의 땅에서 살 수 없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하시어 주신 가나안 땅에서 더 이상 살지 못하도록 나라가 이웃 강대국에 패하고 망하여 노예로 종으로 끌려가 종살이 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이집트로 다시 돌아가고, 앗시리아로 되돌아가서 부정한 음식을 먹을 것이다” 라는 말씀입니다.

앗시리아로 되돌아가서 부정한 음식을 먹을 것이라는 말씀의 의미는 결국 이방 나라로 끌려가서 하나님께서 율법으로 정하여 먹지 못하는 음식, 즉 이스라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갖게 하는 율법을 지키려고 해도 더 이상 지킬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부정한 음식을 먹고 살아야 하는 하나님과 완전히 단절된 비참하고 강제적이고 치욕스러운 삶을 사는 죄의 대가를 치루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러한 비참한 죄의 대가를 치루는 모습을 4절에서 이렇게 표현합니다. “이방 땅에서는 주님께 포도주를 제물로 부어 드릴 수 없고, 그들이 바치는 제물이 주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도 없을 것이다. 그들이 먹는 것은 초상집에서 먹는 음식과 같아서, 그것을 먹는 사람들마다 부정을 타게 될 것이다. 그들이 먹는 것은 허기진 배나 채울 수 있을 뿐, 주님께서 계신 집으로 가져다가 바칠 것은 못 된다”

“이방 땅에서는 주님께 포도주를 제물로 부어 드릴 수 없다” 라는 말의 의미는 구약의 모든 제사는 제사의 마지막에 제사장이 포도주 잔을 들고 나와서 제물 위에 그 포도주를 붓는 것입니다. 그래야 제사가 끝났습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디모데후서 4:6절에 “나는 이미 부어드리는 제물로 피를 흘릴 때가 되었고, 세상을 떠날 때가 되었습니다”라고 표현하며 자신의 삶이 주님께 온전히 드려져서 마칠 때가 되었음을 표현한 것입니다.

하나님께 포도주를 부어 드리는 전제는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깊은 상징을 지니는 제사의 모습니다. 첫째는 포도주는 성경에서 기쁨과 축복의 상징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 포도주를 부어드린다는 것은 단순히 음료를 드린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께 받은 은혜에 대한 기쁨과 감사를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포도주를 붓는다는 것은 자신의 것을 완전히 비워드린다는 의미입니다. 즉, 하나님께 모든 것을 쏟아 붓는 헌신을 드린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죄의 대가로 앗시리아에 패하고 나라가 망하여 이웃 나라로 노예와 종으로 끌려가 종노릇하며 살아야 하는 처절한 상황에 던져져서 더 이상 기쁨과 감사를 드릴 수 없고, 하나님을 섬기려고 해도 더 이상 예배하고, 섬기고, 따를 수 없는 상태로 살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껏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삶을 산다는 것이 얼마나 귀하고 행복한 삶인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놀라운 축복들, 일상의 축복들을 깨달을 수 있는 영적인 눈과 분별력을 가지고 하나님께 감사와 기쁨의 예배를 드리며, 하나님께 헌신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포도주를 부어 드리는 전제의 예배를 드릴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축복이요 그것이 진정한 신앙의 모습인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그러한 하나님을 바로 알고 예배하는 삶을 살지 못하도록 우리를 유혹하고 휩쓸어 가려는 가나안의 영성이 어느때 보다 강한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참된 신앙과 믿음, 하나님을 믿고 따르고 말씀대로 살아가기 어려운 시대 속에서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할 때 더욱 하나님을 아는 일에 힘쓰며, 영적으로 깨어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와 사랑과 축복,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으로 인해 주 안에서 하나님을 기뻐하는 삶,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 더 나아가 부정한 것을 먹는 것이 아닌 정결하고 깨끗한 구별된 삶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ategory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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