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에베소서 3:1-2
1 그러므로 이방 사람 여러분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로 갇힌 몸이 된 나 바울이 말합니다.
2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위하여 일하도록 나에게 이 직분을 은혜로 주셨다는 것을, 여러분은 이미 들었을 줄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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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 에베소서 3장에서 바울은 자기 자신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1절입니다. “그러므로 이방 사람 여러분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로 갇힌 몸이 된 나 바울이 말합니다” “갇힌 몸이 되었다” 라는 말을 문자적으로 들으면 답답하고, 억울하고, 힘들다는 말입니다. 갇혔다는 말은 내가 하고 싶은대로 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내 자유가 빼앗겼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1절에 “나는 그리스도 예수의 일로 갇힌 몸이 되었다” 라는 고백은 답답하고, 억울하고, 힘들다는 말이 아니라 오히려 감사하고 기쁘다는 말입니다. 2절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위하여 일하도록 나에게 이 직분을 은혜로 주셨다는 것을, 여러분은 이미 들었을 줄 압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이방 사람들, 즉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예수께서 죄 용서함을 주신 대속의 구세주시오, 주님으로 믿고 마음에 영접하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메시야임을 전하는 사도로 택하여 주신 그 부르심과 받은 직분이 얼마나 귀하고 놀라운 축복인지를 알았습니다.
스스로 하나님을 안다고 하고, 율법을 지킴으로 의롭고 당연히 구원 받은자인줄 알았고, 더 나아가 하나님을 위하여 예수 믿는 성도들과 교회를 핍박했는데 그 모든 것이 착각이요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한 죄악들이었음을 깨달았을 때 바울은 절망했습니다. 절대 하나님께 용서 받지 못할 죄인이요 영원한 지옥 형벌을 받아야 마땅함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먼저 바울을 찾아가 주셨고, 그의 회개함을 받아 주시어 죄를 용서하시고 구원하여 주셨고 놀랍게도 바울을 자신처럼 착각하고 살아가는 유대인들과 더 나아가 예수를 알지도 못하는 이방인들에게 이 구원의 복음, 십자가의 복음,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사도의 직분을 주신 것입니다.
그렇기에 바울은 자신이 그 놀라운 죄 용서함의 은혜, 구원의 은혜, 더 나아가 자격으로는 절대 받을 수 없는 복음의 사도로 세워 주신 그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그 복음의 사명을 수많은 고난과 어려움, 환난과 핍박 가운데서도 충성되이 감당했던 것입니다. 예수의 일, 즉 십자가의 복음에 합당한 삶과 복음을 전하는 삶에 갇혀 있는 몸이 되었지만 그것이 바울에게는 기쁨이요, 감격이요, 축복이었던 것입니다.
저는 바울의 1절의 고백 “그리스도 예수의 일로 갇힌 몸이 된 나 바울” 이라는 고백 “나에게 이 직분을 은혜로 주셨다”는 고백이 저와 여러분들의 고백이 되기를 원합니다. 저와 여러분 역시 영원한 지옥의 형벌을 받아야 할 하나님을 대적하는 죄 가운데 살았던 자들이었습니다. 이 세상 욕심과 정욕을 따라 살았던 죄와 허물로 죽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받고 들어 믿음으로 죄 용서함을 받았고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원한 천국을 기업으로 받은 축복을 받은 자가 되었습니다. 평생 갚아도 갚을 수 없는 얼마나 큰 은혜요, 축복입니까?
그 놀라운 구원의 은혜와 동시에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구원을 받게 된 놀라운 그 십자가의 복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아직 구원 받지 못한, 지옥으로 달려가는 영혼들에게 전하라는 복음의 사명, 사도의 직분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어 구원 받았다는 것은 단지 구원 받은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라는 말씀처럼 우리가 받은 그 놀라운 구원과 복음을 전하는 자로 택함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와 복음의 사명을 분명하게 깨달았습니다. 그렇기에 이제 자신의 삶은 그 구원의 복음, 십자가의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기로 결단한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2:20절의 말씀과 같이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이제 살고 있는 것은 내가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살고 계십니다. 내가 지금 육신 안에서 살고 있는 삶은, 나를 사랑하셔서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내어주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라는 고백과 같이 주님을 위해 사는 삶, 내 속에 거하시는 예수님을 나타내고 전하는 삶을 살겠다는 것입니다.
바울의 삶을 보면 1절의 고백과 같이 그리스도 예수의 일로 갇힌 몸이 되어 살았습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는 힘들고 어려운 삶이었습니다. 억울하고 답답한 일이었습니다. 육체적으로도 고난과 아픔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하나님께 받은 은혜, 받은 구원, 받은 사명이 그 어떠한 것보다 큰 은혜요 축복임을 알았기에 예수의 일로 갇힌 몸이 된 것을 원망하거나, 후회하거나,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오늘 바울의 고백을 통해서 우리가 질문해야 할 질문이 이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바울과 동일한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 죄 용서함의 은혜, 놀라운 하늘나라의 기업을 받는 은혜를 받은 자인데 무엇에 갇힌 몸으로 살아가고 있냐는 것입니다. 무엇이 이끌림을 받고 살아느냐는 것입니다. 무엇을 위해 나의 감정을 절제하고, 하고 싶은 것을 누르고 살아가느냐는 것입니다. 무엇을 삶의 목적으로 추구하며 살아가느냐는 것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복음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 때문에, 복음의 사명 때문에 나의 편함, 나의 원함, 나의 감정까지도 내려놓는 예수의 일에 갇힌 자로 살아가기를 도전합니다. 그것이 진정 영원한 하늘의 상을 받을 수 있는 길입니다. 바울이 자신의 영적 아들이라고 불렀던 디모데 역시 그러한 삶을 살았습니다. 빌립보서 2:21절을 보면 바울이 디모데에 대해 말하면서 “저희가 다 자기 일을 구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지 아니하되 디모데는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며 연단을, 즉 고난과 어려움을 받으며 감당했다” 라고 말합니다.
이 시대를 보면 많은 사람들이 예수에 묶인 삶이 아닌 돈에, 자기 생각과 고집에, 자기 편함에, 먹고 사는 일에, 술, 도박, 드라마와 자기 욕심에 사로 잡혀 살아갑니다. 참된 성도들은 하나님의 일, 예수의 일, 복음의 일을 구합니다. 그 일에 스스로 묶이고 갇힌 삶을 삽니다. 영적인 눈이 열려 우리를 부르신 그 하나님의 은혜와 사명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 복음의 삶, 예수의 삶을 살 때 이 땅에서 누리는 기쁨과 편함, 즐거움과 비교할 수 없는 놀라운 하늘의 상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바울의 고백인 “그리스도 예수의 일로 갇힌 자, 나에게 복음과 구원의 사명을 전하는 직분을 은혜로 주셨습니다” 라는 고백으로 살아가는 자, 그러한 교회가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