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마가복음 5:4-6

4 그리고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안식일에 선한 일을 하는 것이 옳으냐? 악한 일을 하는 것이 옳으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옳으냐? 죽이는 것이 옳으냐?” 그들은 잠잠하였다.
5 예수께서 노하셔서, 그들을 둘러보시고, 그들의 마음이 굳어진 것을 탄식하시면서,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손을 내밀어라.” 그 사람이 손을 내미니, 그의 손이 회복되었다.
6 그러자 바리새파 사람들은 바깥으로 나가서, 곧바로 헤롯 당원들과 함께 예수를 없앨 모의를 하였다.

——————————————————————

어제 나누었던 본문이지만 이 사건과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우리가 깨닫고 버려야 할 죄에 대한 부분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안식일에 회당에 모인 사람들 가운데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예수님께서 고치시면 안식일을 범했다고 고발하려고 지켜보고 있는 바리새인들의 마음을 아시고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선한 일을 하는 것이 옳으냐? 악한 일을 하는 것이 옳으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옳으냐? 죽이는 것이 옳으냐?” 라고 그들의 마음을 찌르는 질문, 선한 길, 선한 마음으로 돌이킬 수 있는 질문을 하십니다.

하지만 그들은 반응하지 않았습니다. 돌이키시고 바로 잡으시고자 하시는 주님의 손길을 거부합니다. 그래서 그들이 대답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그들에 대해 예수님께서 분노하십니다. 그것이 5절의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노하셔서 그들을 둘러보시고 그들의 마음이 굳어진 것을 탄식하셨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마음이 굳어진 것을”개역성경에는 “그들의 마음이 완악함을 탄식하시고 분노하셨다”라고 합니다. 그들이 이런 악을 행하려고 하는 이유가 바로 그들의 마음이 굳어지고 완악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완악함이 갑자기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마가복음 2장을 보면 세 번이나 예수님이 행하시는 일에 대해서 바리새인들이 비난하는 사건이 나옵니다. 마가복음 2:13절부터 나오는 사건을 보면 예수님께서 세리였던 마태를 제자로 삼으십니다. 마태가 자기 집에 많은 친구 세리들을 불러 예수님과 식사를 합니다. 그러할 때 바리새인들은 어떻게 저런 죄인들과 함께 먹느냐, 교제하느냐? 라고 비난했습니다. 하지만 그때 예수님께서는 “나는 의인이 아닌 죄인을 부르러 왔다”라고 말씀하시며 하나님의 마음을 알려 주셨습니다.

두 번째 사건이 2:18절부터 나옵니다. 당시 바리새인들은 일주일에 이틀을 금식했습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과 제자들은 금식하지 않느냐고 비난했습니다. 원래 성경에는 일년에 한번 대 속죄일에만 금식을 명하셨습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스스로 금식일을 일주일에 두 번으로 정하고 금식했습니다. 하지만 금식할 때 사람들이 다 알 수 있도록 초췌한 모습, 씻지 않은 모습으로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사거리에 서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 아닌 사람들에게 자신들을 더 경건하게 보이려고 하는 금식과 기도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모습을 책망하셨습니다.

그리고 2:23절부터 예수님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이삭을 잘라먹었다고 해서 안식일을 어겼다고 비난했습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잉르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다”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안식을을 지키라고 너희에게 명령했지만 그것은 너희에게 쉼을 주기 위함이지 너희가 안식일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세 번이나 비난했지만 예수님께서 비난 받을 만한 일을 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대답을 통해서 도리어 예수님을 비난했던 자신들의 잘못과 무지만이 드러났습니다. 자신들이 하나님이 주신 율법 즉 말씀과 그 말씀 속에 담긴 하나님의 마음을 잘못 생각했고, 잘못 알았다는 것이 드러났을 때 그것을 인정하고 회개하고 바로 돌이키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자신들이 들고 나온 비난이 바른 비난이 아니라는 것을 보고 느꼈을 텐데 여전히 돌이키지 않고, 잘못을 인정하고 고치지 않고 자신들에게 무안을 준 예수님을 여전히 고발할 구실을 찾으려고 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성령님께서 잘못됨을 지적하시고 책망하실 때 나의 잘못을 인정하고, 회개하고, 고치려는 열린 마음, 부드러운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연약합니다. 잘못 생각하고, 잘못 판단할 수 있습니다. 나의 한계, 나의 잘못, 나의 실수를 인정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을 때 우리의 마음은 완악함이 자라갑니다. 갈수록 뽑을 수 없는 완악함의 뿌리가 마음에 깊이 자리를 잡습니다.

완악한 마음을 가진 바리새인들은 손이 오그라든 사람의 고통은 전혀 아랑곳 하지 않습니다. 완악한 마음을 가진 사람의 특징은 다른 사람의 희생, 아픔, 고통, 어려움 상관하지 않습니다. 완악한 사람의 마음에는 남을 배려할 마음이 전혀 없습니다. 내가 원하는 뜻만 이루면 된다는 이기적인 생각으로 살아갑니다. 하지만 긍휼의 마음을 가진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이 고발하기 위해 안식일 회당에서 손 오그라든 사람을 고쳐 주나 안 고쳐 주나 만을 주시하고 있는데 그들의 비난 앞에서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바로 부르시고 그의 손을 고쳐 주십니다. 치유와 회복, 살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하나님의 마음이고 그것이 안식일과 참된 믿음의 모습이기 때문입다.

오늘 본문의 말씀과 사건, 예수님의 하신 일 속에서 우리에게 알려 주시는 말씀은 하나님의 마음을 바로 알고 살리는 일을 하라는 것입니다. 뒤집어서 말하면 완악한 바리새인의 길에서 돌아서라는 것입니다. 진정한 안식일을 지키는 사람, 진정한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이라면 완악함을 버리고, 고발하려는 마음을 버리고, 죽이려는 마음을 버리고 살리는 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긍휼함으로 선을 행하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완악한 마음으로 고발하려고, 죽이려고 예수님이 손 마른 자를 고쳐 주시는가 아닌가를 지켜 보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예수님께서 바른 하나님의 마음과 안식일의 의미를 알려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돌이키지 않고 잠잠히 자신들의 자존심을 지키며 대답하지 않는 자들에 대해 예수님의 마음이 어떠하셨는지를 5절에 이렇게 표현하십니다. “예수께서 노하셔서 그들을 둘러보시고 그들의 마음이 굳어진 것을 탄식하셨다” 개역성경에는 “그들의 마음이 완악함을 탄식하시고 분노하셨다”

예수님께서 노하셨습니다. 분노하셨습니다. 부인할 수 없는 진리를 들었고 책망을 받았음에도 완악함으로 이를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고 있는 자들을 향한 공의로운 분노였습니다. 그런데 또한 탄식하셨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원어는 슬퍼하다, 괴로워하다라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구원하러 온 하나님의 아들이자 그리스도인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고, 하나님의 마음도 깨닫지 못하고 형식적인 율법에 사로잡히고, 자신들의 의에 사로 잡혀 하나님의 뜻과 반대되는 일을 하는 회개하고 돌이키지 않는 바리새인들의 어리석음을 깊이 한탄하고, 분노하고 불쌍히 여기심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분노하셨다는 것은 분노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불의와 사악함을 보고도 분노하지 않는 것은 병든 것입니다. 정당한 분노는 건강한 것입니다. 하지만 분노의 감정만큼 쉽게 죄를 짓게 하는 것이 없습니다. 비록 그것이 정당한 분노라 할찌라도 우리 인간이 인격적인 결함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분노가 말과 행동, 마음으로 죄를 짓는 분노가 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4:26-27절에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라고 한 것입니다. 분노하고 화를 낼 수 있지만 죄와 연결되지 않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분노의 상태 가운데 계속 있게 되면 마귀에게 틈을 주게 된다는 것입니다. 분노는 하되 죄는 짓지 말라. 이것은 난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분노하셨지만 그들로 인해 깊이 슬퍼하셨습니다. 그들이 돌이키지 않고 완악함에 있는 모습을 불쌍히 여기고 슬퍼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분노를 하면서도 우리의 마음이 그 이상 죄를 향하지 않도록 다스릴 수 있습니다.

바리새인들도 분노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분노는 공의로운 분노가 아니었습니다. 시기에 의한 분노였습니다. 또한 자신들의 잘못이 드러남으로 인한 분노였습니다. 자신들의 계획대로 되지 않은 분노였습니다. 악한 분노, 완악함의 분노였습니다. 그런 분노는 결국 어디로 향합니까? 6절 “그러자 바리새파 사람들은 바깥으로 나가서 곧바로 헤롯 당원들과 함께 예수를 없앨 모의를 하였다” 완악함으로 나오는 분노는 결국 사람을 죽이는 일에 가담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미움, 험담, 비난, 그 영혼을 죽이는 악한 사단의 죄에 가담합니다.

내 안에 그러한 완악한 마음이 없는지 돌아보고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성령님으로 완악한 마음을 지적하실 때 고치려는 마음, 회개하고 돌이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완악함으로 나의 판단, 나의 기준, 내 자존심에 사로잡혀 사람을 사람을 죽이는 악을 행하는 자가 아닌 완악함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 선을 행하며 사람들을 살리는 일을 행하시는 성도들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Category말씀 묵상
Follow 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