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시편 86:12-16

12 주 하나님, 내 마음을 다하여 주님께 감사드리며, 영원토록 주님의 이름에 영광을 돌리렵니다.
13 나에게 베푸시는 주님의 사랑이 크시니, 스올의 깊은 곳에서, 주님께서 내 목숨을 건져내셨습니다.
14 하나님, 오만한 자들이 나를 치려고 일어나며, 난폭한 무리가 나의 목숨을 노립니다. 그들은 주님을 안중에도 두지 않습니다.
15 그러나 주님, 주님은 자비롭고 은혜로우신 하나님이시요,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사랑과 진실이 그지없으신 분이십니다.
16 내게로 얼굴을 돌려주시고, 내게 은혜를 베풀어 주십시오. 주님의 종에게 힘을 주시고, 주님께서 거느리신 여종의 아들에게 구원을 베풀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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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이 사용하는 말 가운데 “저 사람 철이 들었다, 아직 철이 덜 들었다”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사람이 철이 들었다는 것은 나 중심의 생각에서 다른 사람의 입장과 다른 사람의 필요와 마음을 이해하기 시작할 때, 섬김을 받고자 하는 마음에서 상대방을 섬기고자 하는 마음을 가질 때 철이 들었다는 말을 합니다. 반대로 철이 없다 라는 말은 다른 사람들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내 입장만 생각하는 사람, 이기적인 사람을 철이 없다 라고 말합니다.

보통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 철이 듭니다. 우리가 보통 철이 언제 드는가를 생각할 때 부모님의 은혜를 깨달을 때 철이 드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젊을 때는 몰랐는데 특별히 결혼하여 아이를 낳고 키우는 고생을 경험하며 나를 낳아 주시고 키워 주신 부모님의 은혜가 깨달아 질 때 “아 부모님이 나를 위해 정말 고생하셨구나. 내가 정말 부모님의 마음에 상처가 되는 일과 말을 하고 살았구나. 부모님께 감사하지 않고 살았구나”깨달아지기 시작하면서 철이 듭니다. 그때에 부모님을 생각하고 섬기려는 마음을 갖고 “어떻게 하면 부모님의 은혜를 보답할까” 라는 마음으로 돌보고 연락하고 섬기는 행동을 할 때 철이 들었다고 말합니다.

우리의 신앙과 연관시켜 보면서 우리의 신앙이 철이 들고 성숙해 지는 때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은혜가 깨달아지기 시작할 때입니다. “아 내가 정말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 받았구나, 내가 정말 하나님의 은혜로 살았구나” 이것이 깨달아지기 시작할 때 신앙이 철이 드는 것이고 성숙해 지는 것입니다. 어려서 철이 없을 때는 “내가 잘라서 이만큼 컸지”라는 마음으로 살았지만 철이 들면서 내가 아니라 부모님의 수고와 고생으로 내가 이정도 되었구나 라는 마음이 드는 것처럼 지금까지 내가 잘라서 이만큼 살아 온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과 긍휼하심과 은혜 때문에 살았다는 것이 깨달아 질 때 신앙이 철이 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깨달아질 때 우리의 삶에 하나님에 대한 감사가 나옵니다. 하나님을 향한 찬양이 나옵니다. 하나님께 헌신과 순종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깨달아 질 때 우리의 신앙이 성숙해지고 삶이 성숙해지기 시작합니다. 우리의 신앙이 성숙해지지 않는 것은 다른 것보다 하나님의 은혜를 진정 깨닫지 못하고 신앙생활하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12절에 “주 하나님, 내 마음을 다하여 주님께 감사드리며, 영원토록 주님의 이름에 영광을 돌리렵니다” 라고 결단합니다. 왜 다윗이 이런 결단을 합니까? 그 이유를 13절에 “나에게 베푸시는 주님의 사랑이 크시니, 스올의 깊은 곳에서, 주님께서 내 목숨을 건져 내셨습니다”라고 말합니다. 내가 지금까지 산 것이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하나님의 도우심 때문에 살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누가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습니까? 누가 하나님께 감사하며 영원토록 하나님의 영광이 되는 삶을 살겠다고 결심하고 순종하는 철든 신앙생활합니까? 바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깨달은 사람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매일 깨닫고 감사하는 마음이 들 때 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가슴속에 느껴질 때 말씀대로 믿음으로 순종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은 억지로 내 결단과 노력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주님을 따라 가는 삶, 좁은 길로 가는 신앙의 삶은 우리의 의지만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이유를 14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 오만한 자들이 나를 치려고 일어나며, 난폭한 무리가 나의 목숨을 노립니다”

우리는 날마다 영적인 공격을 받으며 삽니다. 어려움이 있습니다. 문제를 만납니다. 좌절하게 하고, 낙심하게 하고, 열 받게 하고, 힘 빠지게 합니다. 사단은 우리가 말씀대로 살려고 할 때 말씀이 짐처럼 느껴지게 하고 말씀대로 살지 못하도록 공격하고 유혹하고 의심의 마음을 심어 줍니다. 세상의 것을 보게 하고 편함을 추구하도록 유혹합니다.

이 땅에서 말씀대로 믿음으로 순종하며 살아가는 삶이 녹녹치 않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쉽게 흔들립니다. 우리의 감정, 우리의 결단 쉽게 흔들립니다. 우리의 마음은 그리 강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고 사는 길 밖에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를 바로 깨닫고 사는 길 밖에는 없습니다. 그래서 15절에 다윗이 무엇이라고 고백합니까? “그러나 주님, 주님은 자비롭고 은혜로우신 하나님이시요,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사랑과 진실이 그지 없으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은혜란 사랑받을 수 없는, 용서 받을 수 없는 자격이 되지 않는 자에게 베푸는 사랑과 용서입니다. 진노를 받아야 하는 자에게 선함으로 대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떠한 존재입니까? 구원받을 자격이 되지 않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받지 못한 죄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변함없는 사랑과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그 은혜로 구원 받았습니다. 죄 용서 받았습니다. 죄의 값을 탕감 받았습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얼마가 큰 은혜입니까?

그 큰 은혜를 깊이 깨달을 때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따르고 순종하는 믿음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은혜의 삶을 베풀며 살 수 있습니다. 그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았기 때문에, 그 하나님의 선하심을 깨달았기에 요셉이 자신을 노예로 판 형들을 용서하고 그들에게 가장 좋은 땅을 주고 그들의 가정과 자녀들까지 돌본 은혜를 베풀 수 있었던 것입니다. 진정 하나님의 은혜 받은 것을 깨달은 자가 은혜를 베푸는 자, 용서를 베푸는 자, 악을 선으로 갚을 수 있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철든 신앙의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떤 상황에도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순종하는 삶을 살 것입니다.

15절입니다.“그러나 주님, 주님은 자비롭고 은혜로우신 하나님이시요,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사랑과 진실이 그지 없으신 분이십니다”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체험한 사람은 노하기를 더디 합니다. 기다려 주고 기회를 줍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진실이 그지 없으신 것을 깨달은 사람은 삶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으로 인해 일어서고 달려 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택하고 순종하며 섬기고 희생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다시 한번 우리의 눈을 하나님께 돌리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다윗이 기도한 것처럼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16절 “내게로 얼굴을 돌려주시고, 내게 은혜를 베풀어 주십시오. 주님의 종에게 힘을 주시고, 주님께서 거느리신 여종의 아들에게 구원을 베풀어 주십시오”

이 기도를 우리의 기도로 바꾼다면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깨닫게 하시고 그 깨달음으로 나에게 힘을 주시어 주님께서 은혜를 베푸는 삶, 노하기를 더디하는 삶, 모든 삶 속에 영적인 승리를 할 수 있는 힘을 주옵소서” 일 것입니다. 이 기도가 우리의 기도가 되어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강건하여 문제보다 더 큰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 승리하며 찬양하며 감사하며, 기쁨으로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Category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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