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에베소서 6:19-20
19 또 나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내가 입을 열 때에,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셔서 담대하게 복음의 비밀을 알릴 수 있게 해 달라고 하십시오.
20 나는 사슬에 매여 있으나, 이 복음을 전하는 사신입니다. 이런 형편에서도, 내가 마땅히 해야 할 말을 담대하게 말할 수 있게 기도하여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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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는 바울이 로마 감옥에 갇혀 있는 상황 속에서 에베소에 있는 교회와 성도들을 위해 영적인 눈이 열려 구원의 복음, 십자가의 복음에 담겨 있는 놀라운 하늘의 축복과 하나님께서 주신 놀라운 능력을 바로 알고 복음의 합당한 삶, 즉 하나님의 자녀답게 새로운 삶을 살라고 중보기도하며 쓴 편지입니다. 하나님의 자녀, 빛의 자녀, 악한 영의 공격을 이기는 승리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주신 영적 갑옷인 진리의 허리띠와 구원의 투구, 복음의 신발, 정의의 가슴막이, 믿음의 방패, 그리고 성령의 검, 즉 말씀을 가지고 온갖 기도와 간구로 승리하라고 알려 주신 편지입니다. 그 내용이 1-6장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은 편지를 끝맺으면서 에베소 교회 성도들에게 자신을 위해 기도해 달라는 부탁의 내용입니다. 로마 감옥에 갇혀 있는 상황에 있는 바울이 에베소 교회 성도들에게 부탁한 기도 제목이 무엇이겠습니까? 저와 여러분이라면 그 상황에서 어떠한 기도를 부탁하겠습니까? 물어 볼 것도 없이 빨리 감옥에서 나올 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고, 억울하게 잡혀 있는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기도해 달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놀랍게도 바울은 그러한 기도를 부탁하지 않습니다. 19-20절입니다. “또 나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내가 입을 열 때에,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셔서 담대하게 복음의 비밀을 알릴 수 있게 해 달라고 하십시오. 나는 사슬에 매여 있으나, 이 복음을 전하는 사신입니다. 이런 형편에서도, 내가 마땅히 해야 할 말을 담대하게 말할 수 있게 기도하여 주십시오”
바울이 로마 감옥에서 보낸 골로새 교회에 보낸 편지 속에서도 똑같은 기도를 부탁한 내용들이 있습니다. 골로새서 4:2-3입니다. “하나님께서 전도의 문을 우리에게 열어 주셔서, 우리가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할 수 있도록, 우리를 위해서도 기도하여 주십시오. 나는 이 비밀을 전하는 일로 매여 있습니다. 그러니 내가 마땅히 해야 할 말로 이 비밀을 나타낼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바울이 자신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부탁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에 담겨 있는 구원의 비밀을 담대하게 전할 수 있도록 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에 중요한 것은 ‘담대하게’ 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복음의 비밀을 알았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이 모든 인류의 죄, 우리의 죄 값을 대속하시기 위한 대속의 죽으심이요, 의를 위해 죽음에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여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는 구원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주가 되시는 주님이심을 알았습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과 은혜를 나를 위해 주신 하나님의 구원의 길이신 구원자요 주님으로 믿고 영접하기만 하면 죄 용서함을 받고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원한 천국에 이르는 특권을 받는 기쁜 소식임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 복음의 비밀을 전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비밀을 알지 못하는 자들, 어둠의 영에 눈이 가리워져 있던 유대인들, 그래서 예수를 시기하여 십자가에 죽게 한 유대인들은 예수를 그리스도시오 메시야 구원자이심을 전하는 것을 핍박하였습니다. 바울을 죽이려고 잡아서 때리고, 돌을 던지고, 감옥에 던졌고, 사형권이 없기에 사형 선고를 얻어내기 위해서 온갖 거짓 증인과 압박을 가했습니다.
바울 역시 사람이었습니다. 아무리 교회를 핍박했던 자신을 부르시고 용서하시고 복음의 사도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지만 받는 그 고난과 핍박으로 인해 순간 순간 좌절하고 낙심하고 두려움에 빠지는 것이 당연했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삶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과 그 속에 담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 구원 받은 자들입니다. 십자가의 비밀을 아는 자들입니다. 전하려고 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그 복음의 비밀을 알고 그 복음에 합당한 삶, 복음을 전하는 삶이 쉽습니까? 어렵습니다. 복음에 합당한 삶,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하여 주시기 위해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여 십자가를 지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신 삶을 살아가는 것 어려운 일입니다. 더 나아가 복음을 전하는 삶 어렵습니다. 복음을 전해도 받지 않습니다. 복음이 아니라 이 시대에 교회에 나오라고 권면하는 것조차 어렵습니다.
사단은 우리로 하여금 복음을 전하고, 교회로 나오라고 권면하는 것조차 두려운 마음을 줍니다. 주저하는 마음을 줍니다. 입을 열지 못하게 합니다. 더 나아가 복음을 직접 전하는 선교는 더 그렇습니다. 단기 선교를 나갈 때 교회 안에서도 성도들 가운데 “꼭 그렇게 멀리 가야 되냐? 가까운 곳에서 하면 되지 비싼 비행기 티켓에 시간까지 효율적이지 않다. 지금 우리 교회에 더 집중해야 할 때다. 나갈 사람이 없지 않냐? 너무 나이 들었다. 시간이 없다” 라는 말로 변명하고, 미루고, 더 나아가 나가려고 하는 것까지 반대하며 막는 모습을 봅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교회에, 믿는 우리 모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명하신 하나님의 지상 사명이요 명령입니다. 마태복음 28:19-20절에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예수님께서 믿는 자들과 교회에 주신 지상사명입니다. 교회가 존재해야 할 목적입니다.
디모데후서 4:2절에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많은 성도들이 담대함이 없기에 복음의 비밀을 알면서도 그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지 못하고, 그 복음의 비밀을 알리고 전하는 일을 하지 않고 신앙생활합니다. 복음을 받았고, 복음의 비밀을 알고 있어도 그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는 것과 힘 있게 증거하며 전하는 삶을 사는 것은 다른 차원입니다.
왜냐하면 이 시대에도 마찬가지로 복음에 합당한 삶,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나아가는 삶에는 어려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불편함이 있습니다. 사단의 속임수와 자신이 그렇게 하지 못하는 삶을 변명하고 정당화 시키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지금 로마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인간적으로 복음을 전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자유롭게 나가서 전할수 없는 상황입니다. 만나고 싶은 사람을 찾아 갈수도 없는 상황입니다.복음을 전하다가 최악의 상황에 처한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 좌절하고 낙심하고 더 나아가 원망하며 지내야 할 상황입니다. 언제 처형을 당할지 모르는 죽음을 기다리는 상황입니다.
그렇다면 복음을 전하는 것을 내려 놓아도 누가 뭐라고 할 사람이 없습니다. 아니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산 것을 후회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 상황, 그 자리, 그 형편에서 자신이 갇힌 것에 대한 원망함이나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혀 복음을 전하는 것을 중단할까봐 에베소 교회와 골로새 교회 성도들에게 기도 부탁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20절에 “나는 사슬에 매여 있으나, 이 복음을 전하는 사신입니다. 이런 형편에서도, 내가 마땅히 해야 할 말을 담대하게 말할 수 있게 기도하여 주십시오” 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형편에서도 내가 마땅히 해야 할 말을 담대하게 말할 수 있게 기도하여 주십시오”
이 기도가 저와 여러분의 기도가 되기를 원합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하고, 이런 상황에서도 주 안에서 기뻐하고 감사하고, 이런 상황에서도 믿음으로 순종하며, 이런 상황에서도 더욱 담대히 십자가의 비밀을 전하는 자로, 교회로 세워지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