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에베소서 6:9
9 주인 된 이 여러분, 종들에게 이와 같이 대하고, 위협을 그만두십시오. 그들의 주님이시요 여러분의 주님이신 분께서 하늘에 계신다는 것과, 주님께서는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여러분은 아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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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9절의 말씀은 누군가를 고용하여 일을 시키는 고용주가 된 성도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종업원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한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9절을 다시 한번 보겠습니다. “주인 된 여러분 종들에게 이와같이 대하고 위협을 그만두십시오. 여러분의 주님이신 분께서 하늘에 계신다는 것과, 주님께서는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여러분은 아십시오”
9절을 보면 “주인 된 여러분 종들에게 이와 같이” 라고 명하십니다. “이와같이” 라는 말은 종들이 주인에게 순종하듯이 주인도 종들에게 순종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종이 주인에게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명령할 수 없고 주인이 그 말을 듣고 순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라는 말의 의미는 종이 된 자들에게 명령하신 6절에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들처럼 눈가림으로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답게 진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십시오” 라는 명령의 끝에 “그리스도의 종답게 진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십시오” 의 명령과 같이 라는 뜻입니다.
즉 주인된 자들 역시 하나님의 종됨을 기억하고 다른 사람을 고용하여 일을 시키는 고용주에 있지만 여전히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하나님의 뜻을 행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 하나님의 뜻을 9절에 위협을 그치라는 것입니다. 종들을 위협한다는 말의 의미는 단지 “일 잘못하면 자른다. 봉급 깎는다” 라는 위협이 아닌 주인으로서의 귄위를 오용하거나 남용하여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행동과 모습입니다.
그 당시 로마제국이 행하는 노예 제도는 주인이 종에 대해 절대적인 권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좋은 주인들은 종들을 가족과 같이 대우하며 자신의 자녀들을 가르치는 교사로도 세웠지만 대부분의 주인들은 종들과 노예를 학대하고 착취하며 물건 취급하듯 대했습니다.
그러한 태도는 하나님을 믿는 성도요, 그리스도의 종 된 그리스도인으로 합당하지 않다며 그러한 위협, 그러한 무시, 그러한 학대를 그치라고 명하신 것입니다. 그 이유를 9절 하반절에 “그들의 주님이시요 여러분의 주님이신 분께서 하늘에 계신다는 것과, 주님께서는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여러분은 아십시오”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노예와 종된 이들의 주인이 되시고 노예와 종들의 주인으로 있는 자들의 주인임을 분명히 알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시지 않으신다는 것을 알라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의 신분이나 인종에 관계없이 차별하지 않으시고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과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이심을 기억하고 주인 된 자들 역시 종들과 노예들에게 그렇게 대하라는 명령인 것입니다.
그렇기에 바울이 빌레몬의 종이었던 도망쳐 온 오네시모를 다시 돌려 보내면서 보낸 편지인 빌레몬서 1:16절에 이렇게 권면합니다. “이제부터는 그는 종으로서가 아니라, 종 이상으로 곧 사랑 받는 형제로 그대의 곁에 있을 것입니다. 특히 그가 나에게 그러하다면, 그대에게는 육신으로나 주님 안에서나 더욱 그러하지 않겠습니까?”
오네시모의 주인이었던 빌레몬은 도망했던 종 빌레몬을 주인으로서 벌할 수 있었습니다. 그 당시 정당한 권리였습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성도요 오네시모의 주인인 빌레몬에게 바울은 그를 종이 아닌 형제로 받으라고 권면합니다. 그것은 바울이 오네시모에게 복음을 전하여 구원을 받게 했기 때문만이 아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의 의미를 바로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5:15절을 보면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 예수님의 종이라고 할 수 있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제부터는 내가 너희를 종이라고 부르지 않겠다. 종은 그의 주인이 무엇을 하는지를 알지 못한다. 나는 너희를 친구라고 불렀다. 내가 아버지에게서 들은 모든 것을 너희에게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 하늘의 주인이시오 모든 만물의 왕이요 주인되신 예수님께서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제자들, 종된 우리를 향하여 종이라 부르지 않고 나의 친구라고 부르겠다고 하셨다면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이라면 그가 세상적으로는 어떠한 위치에 있는지, 주인이 되었든 종이 되었던 형제처럼, 친구처럼 대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들에게는 사실 종업원을 대할 때 권위를 내세우고, 억압하는 태도가 아닌 친구처럼 대하라는 명령이 그렇게 거부감 없이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 주인과 종, 주인과 노예 관계속에 있었을 때 하나님께서 하신 9절의 명령은 쉽게 받아 들이고 순종하기 어려운 혁명적인 명령으로 들렸을 것입니다.
주인된 자들에게 종들과 노예들을 위협하지 말고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처럼 대하라는 명령만이 그 당시 세상적으로는 놀랍고 혁명적 명령이 아니라 우리가 이미 나누었던 “교회가 그리스도께 순종하듯이, 아내도 모든 일에 남편에게 순종하십시오. 아내를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셔서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내주심 같이 하십시오. 각각 자기 아내를 자기 몸 같이 사랑하고, 아내도 자기 남편을 존중하십시오. 여러분의 부모에게 순종하십시오. 부모를 공경하십시오. 여러분의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주님의 훈련과 훈계로 기르십시오” 라는 하나님의 명령 역시 그러한 명령들이었습니다.
남존 여비 사상이 편만했고 주인과 종의 상하관계가 강했던 시대에 하나님께서 부부간에, 가정에, 더 나아가 직장 속에서 주신 명령들이 쉽게 받아들이고 지키기 어려운 명령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명령들이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마땅한 삶이고, 그렇게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는 삶을 통하여 세상을 변화시키기를 원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것입니다.
다시 본문 9절로 돌아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 가운데 비즈니스를 하며 종업원을 두고 일하는 주인의 삶을 살아가는 분들은 ” 위협을 그만두십시오. 그들의 주님이시요 여러분의 주님이신 분께서 하늘에 계신다는 것과, 주님께서는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여러분은 아십시오” 라는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형제처럼 사랑으로 대하는 주인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더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와 주님으로 믿어 구원받은 우리는 그리스도의 종임을 늘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주가 되신 예수님은 어느 누구도 차별하지 않으시고, 그를 불쌍히 여기고, 그를 살리고, 세우시기 위해 자신의 권위를 사용하셨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섬기는 자가 아닌 자기 생명을 내어 주시기까지 섬기며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신 주인 되신 예수님을 우리는 본 받아야 합니다.
다시 한번 직원으로 일하는 자,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녀로서 하나님께서 주신 명령을 기억하고 그 명령대로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나라와 의가 드러나는 삶, 세상을 변화시키는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하나님의 종의 삶을 살아가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