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호세아 7:14-16

14 그들이 나에게 부르짖으나, 거기에 진실이 없다. 오히려 침상에 엎드려 통곡한다. 곡식과 포도주를 달라고 빌 때에도 몸을 찢어 상처를 내면서 빌고 있으니, 이것은 나를 거역하는 짓이다.
15 그들의 두 팔을 힘 있게 기른 것은 나였지만, 그들은 나를 해치려고 음모를 꾸몄다.
16 허망한 것에 정신이 팔린 자들, 느슨하게 풀어진 활처럼 쓸모 없는 자들, 대신들은 함부로 혀를 놀렸으니, 모두 칼에 찔려 죽을 것이다. 이것이 이집트 땅에서 조롱거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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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는 호세아 선지자를 통하여 7장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며, 세상을 쫓아가는 죄악 된 모습을 8절에 “여러 민족 가운데 혼합 된 뒤집지 않은 전병” 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따라 영적으로, 도덕적으로, 성적으로 깨끗함을 보여야 할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민족의 우상숭배를 쫓고 그들이 행하는 더럽고 추한 육신의 정욕을 따라 사는 삶을 살아가는 죄를 지으며 겉으로는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긴다고 하는 모습을 책망하신 것입니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11절에 “어리석고, 줏대 없는 비둘기” 라고 비유하시며 책망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이 놀라운 능력으로 이집트 노예 생활에서 구원하시고 홍해를 갈라 마른 땅으로 건너가게 하시고, 메마른 광야에서 40년간 먹고 마실 수 있게 하시며 지키시고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셨고, 가나안의 강한 많은 민족들을 정복하도록 이끄신 하나님을 버리고 주변의 강대국의 눈치를 보며 그들에게 의존하고 있는 모습을 하나님께서 한탄하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의 삶이 세상과 혼합된 신앙이 아닌 거룩하고 구별된 하나님만 바라는 신앙으로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세상의 다른 것을 의지하고 바라는 신앙이 아니라 구원자이요 능력의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믿음으로 살아가는 신앙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14절부터 마지막 절에 이어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잘못된 신앙과 죄악들을 더 열거하시며 책망하십니다. 14절입니다. “그들이 나에게 부르짖으나, 거기에 진실이 없다. 오히려 침상에 엎드려 통곡한다. 곡식과 포도주를 달라고 빌 때에도 몸을 찢어 상처를 내면서 빌고 있으니, 이것은 나를 거역하는 짓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앗시리아 제국의 침략을 받아 멸망당하는 상황에 처했을 때 결국 하나님을 찾습니다. 하나님께 구원해 달라고 부르짖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부르짖음에 대하여 그 부르짖음이 진정한 회개가 아니라 단지 어려움과 환난을 피하기 위한 부르짖음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한 모습은 한 두번이 아닌 계속되어 온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는 죄,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을 버리고 육신의 생각과 욕심대로 행하는 죄로 인해 하나님께서 징계하심으로 고난을 당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울부짖었습니다. 그러한 부르짖음에 하나님께서 그 징계를 거두시고 그들을 구원하시고 회복시키셨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해결되고 고난이 지나가면 얼마 되지 않아 이스라엘 백성들은 또 다시 우상 숭배와 세상을 따르는 죄악 된 길로 들어갔습니다. 참된 회개는 잘못된 길에서 돌이키는 것입니다. 바른 길로 끝까지 걸어가는 것입니다. 죄의 유혹과 공격이 있지만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담대하게 물리치며 의의 길로 가려고 애쓰는 것입니다. 그것이 참된 회개입니다.

그렇기에 이스라엘의 부르짖음은 진정한 회개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14절에 “그들이 나에게 부르짖으나, 거기에 진실이 없다” 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14절 후반절에 “오히려 침상에 엎드려 통곡한다. 곡식과 포도주를 달라고 빌 때에도 몸을 찢어 상처를 내면서 빌고 있으니, 이것은 나를 거역하는 짓이다” 라는 말씀은 엎드려 통곡하고 있지만 죄에 대한 잘못을 깨닫고 회개하는 눈물이 아닌 받고 있는 고통과 손해에 대한 한탄의 눈물이라는 것이니다. 곡식과 포도주를 달라고 비는 것도 단지 풍요와 물질적 필요를 채워달라는 육적인 욕심으로부터 나오는 기도였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자신의 죄를 깨닫고 그러한 죄를 저지르고 있었던 자신을 돌아보며 슬퍼하며 애통하는 눈물의 기도가 아닌 자신들의 죄로 인해 받고 있는 고난과 어려움에 대한 단지 고통으로 인해 신음하고 아파하며 빨리 회복되기만을 바라는 자기중심적인 기도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그러한 기도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위한 기도, 나 자신을 바로 돌아보아 하나님께 돌이키는 하나님을 향한 참된 회개의 기도가 아니라 단지 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이기적인 기도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기적인 부르짖음의 기도는 듣지 않으십니다.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마음을 다한 진실한 회개의 기도를 들으시고 진정한 회복과 구원을 허락하십니다.

15절 말씀입니다. “그들의 두 팔을 힘 있게 기른 것은 나였지만, 그들은 나를 해치려고 음모를 꾸몄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집트 노예 생활에서 구원하셨고, 가나안 땅을 차지하게 하여 큰 민족, 강한 민족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러한 하나님의 은혜를 잊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닌 하나님을 거역하는 우상 숭배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그러한 이스라엘의 죄를 나를 해치는 음모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와 축복들을 깨닫지 못하고 우상과 세상에 혼합되어 살아가는 모습을 16절에 “허망한 것에 정신이 팔린 자들, 느슨하게 풀어진 활처럼 쓸모 없는 자들” 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민족들을 따라 우상숭배를 한 것에 대해 ‘허망한 것에 정신이 팔렸다’ 라고 하십니다. 허망하다는 말은 겉보기에는 있어 보이지만 실제로는 아무런 실속이나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우상이 축복을 주고, 행복을 주고, 그들을 지켜 주고, 보호해 줄 것처럼 보이지만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은, 사단은 세상의 것을 쫓으면 행복해 질 것 같아 보이게 합니다. 하나님을 떠나 세상의 흐름대로 살아가면 자기 마음대로 자유를 마음껏 누리며 즐겁게 살 것 같아 보이게 합니다. 세상의 성공과 돈과 명예가 영원할 것처럼,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처럼 보이게 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정신이 팔려 세상의 것을 추구하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그것이 허망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공허와 허탈과 후회함과 망함으로 이끄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느슨하게 풀어진 활처럼 쓸모 없는 자들이라고 표현하며 개역성경에는 “속이는 활” 이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기대와 목표에서 빗나가는 인생을 살아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시고, 부르시고, 구원하신 것은 우리에 대한 기대와 목표가 있는데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엉뚱한 방향으로 달려갔다는 것입니다. 사실 성경에서 말하는 죄라는 헬라어 원문인 ‘하마르티아’ 라는 단어는 ‘과녁에서 벗어난 것’ 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도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세상과 혼합되어 사는 죄, 하나님의 말씀을 타협하는 죄, 하나님이 아닌 세상의 것을 의지하는 죄, 하나님이 뜻과 기대, 목표에서 벗어나는 죄를 짓고 있지 않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의 은혜, 택하심의 은혜, 축복의 은혜를 받은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받고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그렇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하나님을 배신하는 죄,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나 세상을 추구하는 자리에 서거나 앉지 말아야 합니다. 죄를 멀리하고 하나님을 가까이 하며, 죄에 대해 진심으로 회개하는 마음과 하나님만 진심으로 바라며 순종하는 믿음의 삶을 살기를 간절히 바라며 기도하는 삶이 되기를 원합니다.

Category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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