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에베소서 3:14-21

14 그러므로 나는 아버지께 무릎을 꿇고 빕니다.
15 아버지께서는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이름을 붙여 주신 분이십니다.
16 아버지께서 그분의 영광의 풍성하심을 따라 그분의 성령을 통하여 여러분의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여 주시고,
17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여러분의 마음속에 머물러 계시게 하여 주시기를 빕니다. 여러분이 사랑 속에 뿌리를 박고 터를 잡아서,
18 모든 성도와 함께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사랑의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한지를 깨달을 수 있게 되고,
19 지식을 초월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되기를 빕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온갖 충만하심으로 여러분이 충만하여지기를 바랍니다.
20 우리 가운데서 일하시는 능력을 따라,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더욱 넘치게 주실 수 있는 분에게,
21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무궁하도록 있기를 빕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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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누구도 이 땅에 사는 8-90년의 인생이 쉽다고 말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살아가면서 생각지 않은 많은 어려움과 문제들을 만나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그리스도인으로 이 땅을 살아간다는 것, 신앙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더 더욱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에서 구원받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는 과정에도 홍해가 가로 막혀 있었고, 광야와, 목마름과 위험들이 있었고, 높은 여리고의 성들과 수많은 전쟁이 이기고 가나안 땅에 들어간 것처럼 우리가 구원을 받고 천국에 들어가기 까지 이 땅에서의 삶은 수많은 유혹과 핍박, 고난과 어려움, 시험을 이겨야 합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이 땅에서 신앙의 삶을 살 때 한숨과 원망, 좌절과 어쩔 수 없이 끌려가는 신앙생활을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 땅에서 승리자의 삶, 시냇가에 심기운 나무처럼 열매 맺는 삶, 더 나아가 충만한 삶, 기쁨의 삶을 살기 원하십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이 바로 그 부분을 말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담대하게 승리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과 힘을 줄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습니까?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을 통해 이 땅에서 충만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첫째, 우리의 속사람이 강건해져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16절 “아버지께서 그분의 영광의 풍성하심을 따라 그분의 성령을 통하여 여러분의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여 주시고”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 성도들이 충만한 삶을 살기 위해서 속사람이 강건하기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보통 속사람이 강건하기를 위해 애쓰기보다 겉 사람이 강건하기를 위해서 애씁니다. 요즘 사람들이 얼마나 겉사람을 위해서, 육체의 건강을 위해서 애씁니까? 건강에 좋은 음식만 가려서 먹으려고 노력합니다. 몸에 좋다는 건강 보조 식품들을 사서 먹습니다. 건강을 위해서 운동합니다.

건강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 필요합니다. 그러나 의학계에서는 음식과 운동이 우리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약 25%라고 말합니다. 나머지 75%는 마음이라고 합니다. 다시 말해서 속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몸에 좋은 음식을 먹고 운동을 해도 마음이 고민과 스트레스, 외로움과 미움으로 가득 차 있으면 면역이 약해지기에 결국 겉사람이 약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속사람이 강해질 때 우리의 건강도 강해집니다.

그런데 우리 마음 안에 기쁨과 평강, 감사함이 사라지고 분노, 답답함, 근심과 걱정이 가득할 때가 있습니다. 그 이유를 우리는 어떤 안 좋은 사람 때문에, 안 좋은 어떤 일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속사람이 강건하면 화가 날 일을 당해도 감당할 수 있습니다. 기뻐할 수 있고 감사할 수 있고 넘어갈 수 있습니다. 내 마음에 불을 지르는 사람이나 환경이 아니라 내 마음이 중요합니다. 내 속 사람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 우리는 옆에 사람을 탓합니다. 환경을 탓합니다. 내가 지금 힘들고 어렵고 살맛이 나지 않고 불행한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닙니다. 속사람이 약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속사람이 어떻게 강건해 질 수 있습니까? 다른 것이 없습니다. 성령을 통하여 여러분의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여 주신다고 말씀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바울은 16절에 “아버지께서 그분의 영광의 풍성하심을 따라 그분의 성령을 통하여 여러분의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여 주시고”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17절에“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여러분의 마음속에 머물러 계시게 하여 주시기를 빕니다”라고 에베소 교회를 위해 사도 바울이 기도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성령의 능력으로 속사람이 강건해지기 위해서는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우리 마음의 머물게 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했을 때 예수님은 영원히 우리 안에 함께 거하십니다. 그런데 왜 그리스도께서 마음속에 머물게 기도하라고 기도했을까요? 그것을 알려면 ‘머물다’라는 단어의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너희의 속사람이 강하게 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를 머물게 하라 라고 할 때 사용된 머물다 라는 단어는 ‘카토이케오’ 라는 단어입니다. 이것은 영원히 그 집에 사는 사람이 머물 때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또 다른 머물다 라는 단어가 있는데 그것은 파이로케오 라는 단어입니다. 그것은 나그네가 잠시 머물 때 쓰는 단어입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할 때 예수님께서 내 안에 와 계십니다. 그러나 정도의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어떻게 머물고 계시느냐가 중요합니다. 집 안에 주인처럼 머무시며 나와 교제하시며 인도하시고 계시느냐 아니면 나그네처럼 모시고 있느냐의 차이입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 속사람을 강건하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늘 마음에 거하시게 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의 영이신 성령님이 나를 다스리게 해야 합니다.

이 세상을 사는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방법과 내 지혜로 사는 방법이 있습니다. 야곱은 평생 자기 잔꾀로 살았습니다. 겉으로는 하나님을 믿는 모습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자기의 꾀로 살았습니다. 자기 방법과 지혜로, 속임수도 쓰고 거짓말도 하고. 교회도 나오지만 예배도 드리지만 필요하면 자기 방법대로 삽니다.

성경에 그러한 삶을 살았던 대표적인 인물이 야곱입니다. 그 결과가 어떠합니까? 바로가 야곱에게 나이를 묻자 “내 나이 130인데 험악한 세월을 보냈나이다” 라고 자신의 삶을 표현합니다. 믿음으로 살지 않는 자의 삶의 모습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자신의 생각과 꾀로 살아가 험악한 인생을 살아가는 자가 아닌 요셉과 같이 주님을 모시고 동행하심으로 형통한 인생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속사람이 강건해 지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충만해져야 합니다. 17절 후반절 “여러분이 사랑 속에 뿌리를 박고 터를 잡아서 모든 성도와 함께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사랑의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한지를 깨달을 수 있게 되고 지식을 초월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되기를 빕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온갖 충만하심으로 여러분이 충만하여지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우리 삶의 뿌리를 박고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알게 되면 성령으로 충만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성령으로 충만하면 우리의 삶이 충만해 지면 어떤 일이 생길까요? 조용하고 차분하고 겸손해집니다. 여러분 병에 물을 조금만 담고 흔들면 시끄러운 소리가 납니다. 그러나 그 물병에 물을 꽉 채우면 아무리 흔들어도 조용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충만한 사람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조용합니다. 작은 시냇물은 소리를 냅니다. 조금만 높은데서 떨어져도 물소리가 커 집니다. 그러나 강물은 소리를 내지 않습니다. 강물 속에도 안보이는 큰 장애물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소리 없이 지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 충만하면 조그마한 어려움, 고통 그냥 지나가는 것입니다. 소리 없이 강물이 지나가듯이 말입니다. 좋을 때는 한없이 좋다가 힘들 때는 참지 못하고 냄비처럼 복달하는 인생이 아니라 깊은 물처럼, 깊은 강처럼 그런 삶을 살고 싶지 않습니까? 그런 신앙의 삶을 살아가는 삶이 축복된 삶이고 충만한 삶입니다. 그런 충만한 부모를 만난 자녀는 축복된 자녀입니다. 그런 남편, 그런 아내를 만난 배우자는 축복입니다. 그런 목회자, 그런 성도, 그런 교회에서 신앙생활하는 것이 축복입니다.

우리의 속사람이 강건함을 오늘 본문에서는 두 가지로 비유했습니다. 하나는 농사의 비유와 건축의 비유입니다. 17절을 보면 “여러분이 사랑 속에 뿌리를 박고 터를 잡아서…” 우리의 속사람이 강건해 지려면 하나님의 사랑 안에 뿌리를 깊이 박아야 합니다. 뿌리 깊은 나무가 흔들리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향한 사랑, 나와 함께 하시고 지키시고 보호하시며 누구보다 나를 귀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있다는 진리에 뿌리를 깊이 박을 때 어떠한 상황, 어떠한 일, 어떤 사람에게도 사랑으로 대할 수 있는 속사람이 강한 자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집을 지을 때, 건축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이 기초입니다. 터를 잡아 기초를 든든히 하지 않고 외모에만 겉에만 신경 쓰면 얼마가지 않아 결국 기울어지고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사랑에 뿌리를 깊이 박고 그 하나님의 사랑 위에 기초를 든든히 세우라고 우리에게 권면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충만하면 이 세상에 두 사람 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첫 번째 사람은 내게 사랑스러운 사람이고 두 번째, 내가 사랑해 주어야 야 할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 두 사람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아직도 남의 잘못이 보이십니까? 못마땅한 사람이 있습니까? 꼴 보기 싫은 사람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의 사랑이 충만하지 못한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이 충만하면 나에게 잘못한 사람이 나쁜 사람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불쌍하게 보입니다. 그래서 그럼엗 불구하고 사랑으로 인내하고 축복하고 기도해 주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헤이워드 성도님 한분 한분이 먼저 속사람이 강건해 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마음에 믿음으로 마음에 머물게 하고 하나님의 사랑의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를 알고 그 사랑에 뿌리를 박고 기초를 세워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기뻐하며 감사하며 다른 영혼을 사랑하는 겉사람은 후패하나 속사람은 날로 새롭도다 라는 고백이 넘치는 자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ategory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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