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에베소서 5:1-2

1 그러므로 여러분은 사랑을 받는 자녀답게, 하나님을 본받는 사람이 되십시오.
2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사랑하셔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향기로운 예물과 제물로 자기 몸을 내어주신 것과 같이, 여러분도 사랑으로 살아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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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5장은 가장 놀라운 명령으로 시작됩니다. 5:1절에 “그러므로 여러분은 사랑을 받는 자녀답게 하나님을 본받는 사람이 되십시오” 세상의 어떤 사람이 아닌 하나님을 본받으라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높은 기준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본받으라고 하시는 명령은 불가능한 명령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행하지 못할 명령을 하시지 않는 분이십니다. 우리를 누구보다 잘 아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1절의 말씀 속에서 우리가 하나님을 본받는 사람이 될 수 있는 이유를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사랑을 받는 자녀답게” 우리가 어떠한 존재들입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녀입니다. 사랑을 받는 자녀, 부모와 함께 동행하고 교제하며 살아가는 자녀는 누구를 닮아가게 되어 있습니까? 부모를 닮아가고 부모를 본받게 되어 있습니다.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1절에 나오는 하나님을 본받는 사람이 되라 라고 할 때 쓴 본받는 이라는 단어는 영어 단어인 mimic 즉 따라하다 라는 단어와 동일합니다. 다른 사람의 말이나 행동 또는 태도를 따라한다 라는 말입니다. 자녀들은 부모와 함께 살고 시간을 보내고 부모를 보고 자라기 때문에 부모의 말과 행동을 자연스럽게 배웁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하나님을 본 받으라”는 명령은 어려운 명령이 아닙니다. 하나님 곁에 꼭 붙어서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과 시간을 함께 보내며 그 사랑 가운데, 그 은혜 가운데 살아가면 자연스럽게 하나님을 본 받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내 힘과 노력으로 억지로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기 위해서 힘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더불어 시간을 보내고, 기도의 자리, 예배의 자리에 가까이 하려고 힘쓰면 자연스럽게 하나님을 닮아가고,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5장에도 예수님께서 열매를 맺는 비결을 이렇게 알려 주셨습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는 저가 내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느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어야 하는데 하나님의 어떠한 부분을 본받아야 합니까? 오늘 본문에서 사도바울은 단 하나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본받으라고 말씀합니다. 2절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사랑하셔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향기로운 예물과 제물로 자기 몸을 내어주신 것과 같이 여러분도 사랑으로 살아가십시오”사랑으로 살아가라 즉 사랑을 본받으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사랑의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라면 사랑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어떠한 사랑입니까?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목숨을 버리신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리스도를 통하여 사랑하신 것 같은 사랑을 하라는 것입니다. 2절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향기로운 예물과 제물로 자기 몸을 내어 주신” 사랑이셨습니다. 이 사랑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본받으라 하시고 행하라 명하시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하는 조건적인 사랑이 아니라 우리에게 보여주신 조건 없는 사랑으로 사랑의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사랑을 어떻게 본 받을 수 있습니까?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의 조건없는 사랑으로 사랑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까? 첫째는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사랑이라는 단어를 좋아하고 자주 사용하지만 사랑처럼 어려운 것이 없습니다. 이 세상에 어떤 사람도 저절로 사랑을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설사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지만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순간순간 화나는 것을 참고 인내할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말을 잘 듯고 방긋 웃을 때는 정말 사랑스러운데 고집 피우고 땡깡 피우면 얼마나 짜증나는지 사랑스러운 것과는 전혀 연관되지 않을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우리는 태생적으로 사랑할 수 없는 이기적인 존재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사랑 가운데 행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먼저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입어야 합니다. 사랑의 근본이신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본 자만이 하나님이 보여 주신 조건 없는 사랑을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1절에 “여러분은 사랑을 받은 자녀답게 하나님의 사랑을 본받는 사람이 되십시오”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을 체험하지 못했으면 사랑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교회를 아무리 오래 다녔어도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고,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 그 사랑을 가슴으로 느껴 보지 못했다면 다른 사람을 진정으로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랑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정말로 나를 사랑하셔서 나 같은 죄인, 나 같은 인간을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사랑하셨다는 것이 깨달아지고 내가 그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라는 것을 진정으로 체험한 사람들만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다른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고 입은 것을 깨달은 사람들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다른 사람들의 부족함, 연약함, 실수들에 대해 관대해진다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조건 없는 사랑을 입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그 사랑과 은혜에 감사하고 감격했을 때 세상이 달라 보이지 않습니까? 다른 사람이 변한 것이 아니라 내가 사랑과 은혜를 체험하면 상대방이 불쌍히 여겨지고, 내가 사랑해야 할, 내가 돌보아야 할 대상으로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상대방의 약점과 단점이 나를 힘들게 하면 그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의 감격에서 메말라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적으로, 인간적으로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힘은 다른 것에 있지 않습니다. 내가 사랑해야지, 내가 노력해야지 결단해서 될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입고 체험하고 받고 있을 때 가능한 일입니다.

요한일서 4:10 “사랑은 이 사실에 있으니 곧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자기 아들을 보내어 우리의 죄를 위하여 화목제물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로마서 5:8 “그러나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이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실증하셨습니다”이러한 말씀들이 내 마음에 감동으로 감격으로 물결쳐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산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지 못하고는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풀 수 없다는 것을 알려 주시기 위해서 말씀해 주신 비유가 바로 마태복음 18장에 나오는 일만 달란트 빚진 자의 비유입니다. 예수님의 비유를 우리가 잘 압니다. 한 사람이 왕에게 일만 달란트를 빚졌습니다. 일만 달란트를 지금의 돈으로 환산하면 20만년동안 벌어야 하는 값을 수 있는 돈입니다. 수천억입니다. 절대 갚을 수 없는 돈입니다. 그런데 왕이 그 사람을 불쌍히 여겨서 그 빛을 아무 조건 없이 탕감해 주었습니다. 웬 은혜입니까? 얼마나 놀라운 축복을 받은 것입니까?

그런데 그 사람이 갚을 길 없는 수천억의 돈을 탕감 받고 돌아오는 길에 100데나리온 약 100일정도 일해야 하는 돈을 꿔준 친구를 만납니다. 그리고 당장 100 데나리온을 갚으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친구가 당장 갚은 돈이 없어서 엎드려 간청을 합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그 친구의 멱살을 잡아서 빚진 돈을 갚을 때까지 감옥에 갇혀 있게 합니다. 그 소식을 들은 왕이 그 사람을 다시 불러 들여 그를 책망하고 꾸짖고 빚진 것을 다 갚을 때 까지 감옥에 가두게 하였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비유입니다.

일만 달란트를 탕감 받은 그 사람이 왜 자신의 동료, 친구에게 용서의 마음을 베풀지 못했습니까? 자기가 탕감 받은 사실을 가슴으로 느끼지 못한 것입니다. 그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 몰랐던 것입니다. 수천억, 평생 갚아도 값을 수 없는 빚을 탕감 받았다는 사실을 깊이 깨닫고 감사했다면 한 만불되는 돈을 갚지 않은 사람을 친구를 용서하지 못하겠습니까? 우리가 사랑 가운데 행하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사랑을 입었는데도 깨닫지 못하고 살기 때문입니다. 일만 달란트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그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과 용서를 받았는데도 이 땅에 살면서 우리는 백 데나리온도 안되는 잘못과 실수를 범한 친구, 성도, 가족들을 용서하지 못하고 미워하고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입지 못했거나 그 사랑을 깨닫지 못하고 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녀 같이 하나님의 사랑을 입기 바랍니다. 내가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받은 자임을 확신하고 잊지 않고 살아가는 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Category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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