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호세아 4:11
11 “나의 백성은 음행하는 일에 정신을 빼앗기고, 묵은 포도주와 새 포도주에 마음을 빼앗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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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읽은 호세아서나 다른 선지서들의 주된 내용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에 대해 책망하시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책망하시는 가장 큰 죄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는 죄입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는 것이 왜 가장 큰 죄입니까? 그것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의 관계,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사랑의 관계를 깨트린 영적 간음의 죄이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생명의 삶 성경공부 첫 시간에 질문합니다. 신앙생활 더 나아가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관계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그리고 이웃과의 관계입니다. 그런데 그 관계가 어떠한 관계가 되어야 하냐면 바로 사랑의 관계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사랑은 혼자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할 대상이 필요합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는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 속에 거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창조하신 이유 역시 하나님과 사랑의 관계를 맺기 위해서 창조하셨습니다. 사랑을 받고, 그 받은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는 관계 속에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행복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을 창조하신 후에 가정을 만드신 것도 가장 기본적인 남편과 아내가 사랑함으로 기쁨을 누리고 자녀를 낳아 기르는 사랑의 관계로 기쁨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이스라엘 백성을 택하신 이유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사랑하심으로 놀라운 축복을 부어주십니다. 그리고 사랑과 축복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온전히 따르고 순종하는 사랑의 관계 속에서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를 온 세상에 알리고 구원하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의 관계를 결혼의 관계로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이사야 54:5절을 보면 “너를 지으신 분께서 너의 남편이 되실 것이다. 그분의 이름은 만군의 주님이시다. 너를 구속하신 분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하나님이시다. 그분은 온 세상의 하나님으로 불릴 것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택하시고, 이집트의 노예 생활에서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으로 구원하여 주시고, 놀라운 인도하심과 채워 주심으로 40년 광야의 길을 지나 축복된 가나안 땅을 허락하셔서 나라를 이루게 하신 것, 더 나아가 내가 너의 남편이 되겠다고 하시며 축복의 언약을 맺은 것은 그들이 다른 어느 민족보다 뛰어나고, 순종하고, 특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연약하고, 부족하고, 힘없는 민족이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러한 놀라운 택함과 축복과 사랑과 은혜를 베풀어 주시며 원하신 단 한 가지가 바로 받은 사랑, 받은 은혜, 받은 축복을 깨달아 하나님만 사랑하고 따르는 민족이 되기를 원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그 놀라운 축복과 사랑, 채워주심과 보살핌에 만족하지 않고 세상에 눈길을 주고, 해서는 절대 안되는 우상 숭배와 하나님의 사랑과 뜻에서 벗어나는 죄를 짓는 영적 간음의 길로 나아갔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모습을 예레미야 3:19-20절 이렇게 책망하십니다. “나는 스스로 이렇게 생각하였다. 내가 너희를 나의 자녀로 삼고, 너희에게 아름다운 땅을 주어서, 뭇 민족 가운데서 가장 아름다운 유산을 받게 하면, 너희가 나를 ‘아버지!’라고 부르며 나만을 따르고, 나를 떠나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아! 마치 남편에게 정절을 지키지 않은 여인처럼 너희는 나를 배신하였다. 나 주의 말이다”
오늘 본문 11절은 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렇게 사랑하시고 축복하시고 아껴주심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는 죄를 지으며 그 죄 가운데서 벗어나지 못했는지 그 이유를 알려 주시는 말씀입니다. 11절입니다. “나의 백성은 음행하는 일에 정신을 빼앗기고, 묵은 포도주와 새 포도주에 마음을 빼앗겼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정복하기 위해 모압과 미디안 땅으로 들어갈 때 이스라엘 백성들을 망하게 하기 위해서 발락이 발람 선지자를 찾아갔을 때 발람이 제시한 방법이 무엇이었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싯딤에 머무를 때 모압 여인들을 보내어 이스라엘 남자들을 유혹하여 음행하게 한 것입니다. 단지 육적인 간음만이 아닌 음행 후에 모압 여인들이 이스라엘 남자들을 자신들의 신들의 제사에 초대하여 먹고 마시며 그 신들에게 머리를 숙이게 했습니다. 그것이 민수기 25장에 나오는 사건입니다. 그로 인하여 염병으로 음행과 우상숭배에 동참한 24,000명이 죽습니다.
음행의 유혹은 너무 강합니다. 그렇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간 후에 음행의 죄를 늘 반복됩니다. 솔로몬 왕도 사실 하나님께서 금지한 이방 여인과의 결혼을 통하여 마음이 빼앗겨 결국 우상숭배의 길로 들어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바알과 아세라 우상을 섬기게 된 것 역시 바알과 아세라 신을 섬기는 제사 후에 있는 음행의 유혹에 넘어갔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에도 사단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으로부터 정신과 마음을 빼앗는 수많은 음행, 그리고 묵은 포도주와 새 포도주 즉 영적 분별력과 양심을 흐리게 하여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에서 벗어나게 하고, 타협하게 하고, 불순종하게 하여 영적 음행을 범하게 하는 수많은 것들이 있습니다. 물질,·쾌락, 성공, 내 뜻을 이루기 위한 고집,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의롭다는 교만함 … 등 무엇이든 하나님보다 우선시될 때 그것이 영적 간음, 영적 음행이 되는 마음과 정신을 빼앗기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마음을 지키라고 명하십니다. 잠언 4:23절에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마음을 빼앗기면 우리의 육신, 말과 행하는 일들과 결정들이 망하는 죄된 것들을 행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세상에 마음을 빼앗겨서는 안됩니다. 누가복음 16장에 “하나님과 돈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 라고 말합니다. 돈에 마음을 빼앗기고, 분노와 미움에 마음을 빼앗기고, 욕심에 마음을 빼앗기고, 세상의 일에 마음을 빼앗기고, 유흥과 음행에 마음을 빼앗기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세상으로부터 지켜야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음으로 분별하여 사단의 유혹과 공격에서부터 지켜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바로 아는 일에 힘쓰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쌓아가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음행을 저지르고 우상숭배를 하며, 세상의 포도주에 취해갔던 이유는 바로 하나님에 대해서 바로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호세아 4:6절에 하나님께서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내 백성이 나를 알지 못하여 망한다” 라고 우상 숭배를 하며 세상에 취하여, 죄악에 취하여 사는 원인을 알려 주십니다. 하나님을 바로 아는 참된 영적 지식이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을 안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고, 하나님을 예배한다고 하지만 정작 하나님이 아닌 우상을, 세상을, 자신의 욕심과 원함을 따라 사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집트 노예생활에서 구원 받아 홍해를 건너 광야로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산 앞에 도착했을 때 하나님께서 모세를 시내산 위로 부르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택한 백성, 구원 받은 백성으로 가나안 땅에서 거룩한 삶을 살게 하기 위해 율법을 주십니다. 모세는 올라가기 전에 자신이 내려 오기 전까지 기다리라고 명합니다.
하지만 40일이 되도록 시내산에서 모세가 내려오지 않자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론에게 몰려가서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로 인해 아론이 백성들에게 금으로 만들 귀고리들을 받아 금송아지를 만듭니다. 그러자 출애굽기 32:4절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금송아지를 보고 “이는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하나님이다” 라고 외칩니다. 그리고 그 금송아지 앞에서 주님의 절기를 드리자라고 하며 번제를 드리고 먹고 마시며 뛰놉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진짜 금송아지를 하나님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 금송아지가 하나님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금이나 은이나 돌이나 나무로 하나님의 형상을 만들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금송아지를 하나님이라고 불렀지만 그것은 그들의 욕심과 착각이 만들어낸 우상이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바로 알지 못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마음과 뜻, 명령을 바로 알지 못하면 내가 바라고 원하는 하나님을 금송아지처럼 만들어 놓고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기고 따른다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바리새인들과 제사장들, 유대인들처럼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기도하고, 율법을 지킨다고 하지만 하나님이 아닌 자신들의 위한 종교요, 자신들을 높이고, 의롭다고 드러내기 위한 교만함의 종교생활이 되었기에 예수님께서 “화 있을진저 회칠한 무덤아, 맹인된 인도자여, 외식하는 자여, 불법이 가득한 자여” 라는 책망을 하신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 역시 하나님에 대해, 또한 나의 신앙에 대해 착각하고 있는 것이 있는지, 잘못된 신앙생활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지 분별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성령님의 감찰하심을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시고 하나님의 마음이 어떤지 우리가 그런 것들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가지고 있다면 세상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습니다. 사단의 유혹과 공격에 넘어가지 않습니다. 사단에 쓰임 받는 자가 아닌 하나님께 쓰임 받는 자로 설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마음을 바로 아는 참된 지식,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와 사랑을 깊이 깨달음으로 마음을 지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랑과 성실, 그리고 하나님의 뜻과 명령, 사명을 감당하는 참된 신앙의 삶, 참된 교회가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