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호세아 1:2-3

2 주님께서 처음으로 호세아를 시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말씀하실 때에, 주님께서는 호세아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너는 가서 음란한 여인과 결혼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아라! 이 나라가 주를 버리고 떠나서, 음란하게 살고 있기 때문이다.”
3 호세아가 가서, 디블라임의 딸 고멜과 결혼하였다. 고멜이 임신하여, 호세아의 아들을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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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버리고 세상의 풍요와 눈에 보이는 육신의 욕망과 이익, 편함을 채우는 우상숭배의 죄 가운데 살아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돌이키게 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호세아 선지자를 택하시고 부르시어 말씀하십니다.

2절입니다. “주님께서 처음으로 호세아를 시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말씀하실 때에” 라고 시작합니다. 2절을 개역성경에는 “여호와께서 비로소 호세아로 말씀하시니라” 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주님께서 처음으로, 비로서 호세아로 말씀하셨다” 라는 말의 의미는 하나님께서 그동안 기다리셨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기다리셨겠습니까? 그들이 죄악에서 돌이키고, 우상을 섬기는 죄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자로 돌이키기를 기다리신 것입니다. 베드로후서 3:9절에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기다리시는 것이 아니라 돌이키게 하시기 위해, 죄를 회개하고 돌아오도록 하나님의 사람을 보내시어 선포하게 하고, 책망하게 하고, 깨닫게 하십니다. 그래서 구약을 보면 계속해서 끊임없이 선지자를 택하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호세아를 통하여,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시기 시작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호세아 선지자에게 명하신 첫번째 말씀과 명령이 무엇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서 죄를 회개하고 돌이키라는 선포가 아니었습니다. 호세아 선지자에게 가서 음란한 아내를 취하여 음란한 자녀를 낳으라는 것이었습니다. 2절입니다. “너는 가서 음란한 여인과 결혼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아라”

음란한 여인이란 문자적으로 본다면 말 그대로 부정한 삶, 성적으로 문란한 여인입니다. 그리고 상징적 의미로 본다면 하나님을 배신하고 우상을 섬긴 이스라엘을 상징합니다. 음란함이란 하나님을 떠나 바알과 같은 우상 숭배에 빠진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렇다고 하나님께서 호세아에게 음란한 여인을 취하여 음란한 자식을 낳으라고 한 것이 단지 상징적이고 은유적인 표현으로 한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3절을 보면 “호세아가 가서, 디블라임의 딸 고멜과 결혼하였다. 고멜이 임신하여, 호세아의 아들을 낳았다” 라고 말합니다. 성경에서 누구의 아들, 누구의 딸이라고 누군가를 소개할 때는 실제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기에 호세아가 하나님의 명령하신대로 음란한 여인과 결혼하라고 하신 명령을 듣고 고멜과 결혼을 합니다. 신학자들은 고멜이 창녀였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고멜에 대해 후에 더 나오지만 고멜은 결혼 전에도 그리고 호세아와 결혼한 후에도 음란한 생활을 계속하는 여자였습니다. 그리고 고멜이 아이를 낳지만 그 아이를 향하여 음란한 자식이라고 말합니다. ‘음란한 자식’은 누가 아비인지 모르는 사생아를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호세아에게 이러한 명령을 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이유를 2절에 “이 나라가 주를 버리고 떠나서, 음란하게 살고 있기 때문이다” 라고 분명하게 말씀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향하여 “이 나라” 라고 말합니다. ‘이 나라’ 라고 하는 말은 해서는 안되는 말과 행동을 계속할 때, 그래서 마음이 상했을 때 쓰는 말입니다. 부부 간에도 자식이 속을 썩이고 문제를 일으키고, 말을 안들을 때 배우자에게 내 자 식이라고 하지 않고 ‘당신 아들, 당신 딸’ 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뉘양스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칭하실 때 늘 내 백성이라고 부르셨습니다. 모세를 이집트로 보내 바로에게 “내 백성을 보내라” 라고 명하셨습니다. 말씀을 전하실 때도 “내 백성아 내게 경청하라. 내게 귀를 기울이라” 라고 칭하셨습니다.

그런데 2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나라를 향하여 ‘내 나라’ 라고 하지 않으시고 ‘이 나라’ 라고 부르십니다. 그 이유가 ‘주를 버리고, 나를 버리고 떠나서 음란하게 살고 있기 때문이다’ 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의 삶이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 ‘내 아들, 내 딸, 내 백성, 내 나라’ 라고 부르는 것을 자랑스러워하는 거룩한 삶, 구별된 삶, 믿음의 삶, 순종의 삶을 살아가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호세아에게 음란한 여인 고멜과 결혼하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런데 레위기 21:7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제사장에게 금하신 일이 있습니다. “그들은 부정한 창녀나 이혼 당한 여인을 취하지 말지니 이는 그가 여호와 하나님께 거룩함이니라”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하는 제사장이나 선지자들은 부정한 여인, 음란한 여인, 즉 고멜과 같은 여인과 결혼을 금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호세아 선지자에게 음란한 여인인 고멜과 결혼하라는 것입니다. 음란한 여인은 사실 돌로 쳐서 죽여야 할 죄인입니다. 경멸하고, 정죄함을 받아 마땅한 여인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호세아 선지자에게 음란한 여인, 고멜과 결혼하라고 명하신 것입니까?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그만큼 사랑하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사랑을 받을 만한 모습도, 자격도, 행실도 되지 않는 죄인 중의 죄인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내치지 않고 그를 찾아가시고, 사랑하심으로 돌이키고 회개함으로 회복되게 하시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랑은 세상에서 볼 수 없는 사랑입니다. 세상의 사랑은 자격을 따지고, 내게 어떻게 대하는지를 따지는 조건이 붙는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더 이상 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내 뜻대로 따르지 않으면, 내가 원하는대로 하지 않으면, 내 기준에 벗어나는 행동들을 하면 내치는 것입니다. 비난하고, 정죄하고, 비판하고, 면박을 주고, 다투고, 싸우고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그러한 조건들을 뛰어 넘는 사랑입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을 호세아를 통하여, 음란한 여인 고멜을 사랑하라고 하시고, 결혼케 하시며 더 나아가 그 결혼 언약을 깨고 다른 남자와 바람나서 도망쳤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되찾아 오는 사랑을 호세아에게 명하신 것입니다.

호세아서에서 우리에게 알려주는 중심 주제는 변함없이 사랑하시는 하나님과 그 사랑에 배반하는 이스라엘 백성 간의 관계입니다. 사랑 받는 자라면 마땅히 부부의 관계와 계약에 신실함과 충성됨을 보여야 함이 마땅한데 부정하고 음란하게 그 사랑을 배반한 영적 간음의 죄까지도 오래 참고 기다리며 여전히 사랑하기 위해서 그 음란한 여인에게로 가는 사랑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놀라운 변치 않는 오래 참음의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셨음을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더 나아가 우리가 그 사랑과 은혜를 받았기에 음란한 여인 고멜을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세상이 할 수 없는 그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랑 받지 못할 사람까지 사랑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 사랑을 하라고 명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함 속에 나에게 부어주신 그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깨달아 고멜을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거저 받은 사랑, 넘치는 은혜와 사랑이 내 삶에 흘러나가기를 기도하기 원합니다.

Category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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