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호세아 3:1-3

1 주님께서 나에게 또 말씀하셨다. “너는 다시 가서, 다른 남자의 사랑을 받고 음녀가 된 그 여인을 사랑하여라. 이스라엘 자손이 다른 신들에게로 돌아가서 건포도를 넣은 빵을 좋아하더라도, 나 주가 그들을 사랑하는 것처럼 너도 그 여인을 사랑하여라!”
2 그래서 나는 은 열다섯 세겔과 보리 한 호멜 반을 가지고 가서, 그 여인을 사서 데리고 왔다.
3 나는 그 여인에게 말하였다. “당신은 많은 날을 나와 함께 살면서, 창녀가 되지도 말고, 다른 남자와 관계를 맺지도 말고, 나를 기다리시오. 그 동안 나도 당신을 기다리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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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숭배를 하는 용서받을 수 없는 배신과 죄악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끝까지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무조건적이고 끈질긴 사랑, 변함없는 긍휼의 사랑을 호세아에게 명하시는 명령 가운데 깨닫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호세아 1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선지자 호세아를 부르셔서 음란한 여인 고멜에게 가서 그를 데려와 아내로 삼으라고 명하십니다. 사랑 받을 수 없는 여인, 결혼할 수 없는 낙인 찍힌 여인, 심판과 저주를 받아 버림받아야 할 여인을 하나님께서는 사랑하여 아내로 삼으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기준으로 볼 때는 이해할 수 없는 명령이었습니다. 세상의 기준으로는 순종할 수 없는 명령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그 명령은 하나님께서 죄인까지도 사랑하시는 긍휼과 은혜였습니다. 음란한 여인, 창녀로 살아가던 고멜의 입장에서 볼 때 하나님의 거룩한 선지자였던 호세아가 자신을 찾아와 자신의 아내가 되어 달라고 할 때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얼마나 말이 되지 않는 기쁜 소식이었겠습니까? “나 같은 자를 어떻게 아내로 삼으려고 하는가?” 라는 의문이 들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그러한 놀라운 청혼이 바로 하나님의 거룩하신 죄 없으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시는 하나님의 부르심과 같지 않습니까? 하나님과 원수되는 하나님과 상관없이 내 원함과 뜻대로, 내 법대로 마음대로 육신의 정욕과 뜻대로 죄 가운데 살고 있는 우리를 부르시고 십자가의 은혜로 손을 내미신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고멜은 그러한 놀라운 축복, 선지자 호세아와 결혼하여 가정을 꾸리고 세 자녀를 낳았음에도 불구하고 호세아를 버리고 외간 남자를 따라 가출합니다. 그리고 고멜의 상황은 자유를 잃어버린 빚진 노예로 사로 잡혀 살아갑니다. “배은망덕 하더니 꼴 좋다. 자기 무덤 자기가 팠다” 라고 비난받고 지탄 받아 마땅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하나님께서는 호세아에게 명하여 2절을 보면 은 열다섯 세겔과 보리 한 호멜 반을 가지고 가서 노예 신분이 되어 버린 고멜의 몸 값을 지불하고 데리고 오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의 사건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 값을 치루고 죄와 사망의 권세, 사단의 손 아귀에 잡혀 있던 우리를 속량하신 대속의 은혜와 사랑을 보여 주신 사건의 의미입니다.

본문에서는 어떻게 고멜이 호세아를 버리고 다른 남자를 따라가게 되었고, 어떻게 자유를 잃어버린 노예의 신분이 되었는지를 알려 주지 않습니다. 추측할 수 있는 것은 고멜이 따라간 남자가 악한 사기꾼이였을 것입니다. 사실 이러한 모습은 호세아 2:5절에 나옵니다. “그는 자랑하기를 ‘나는 나의 정부들을 따라가겠다. 그들이 나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을 대고, 내가 입을 털옷과 모시옷과, 내가 쓸 기름과 내가 마실 술을 댄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과 아세라, 그 외의 우상을 섬기고 따른 것이 동일한 이유입니다. 하나님보다 가나안 족속들이 섬기는 우상들이 눈에 보기에 좋아 보였습니다. 자신들이 원하는 육신의 정욕과 원함을 채워주고 만족을 줄 수 있어 보였습니다. 자신들을 축복해 주고 사랑해 주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사실 그 우상들은 그들을 사랑하고 축복하는 것이 아닌 오히려 착취하교 멸망시키는 어둠의 영이었습니다.

고멜이 그러했던 것입니다. 호세아 보다 더 사랑해 주는 자인 줄 알았고, 자신을 더 높여주고, 채워주고, 행복하게 해 줄 것으로 알고 따라갔는데 알고보니 고멜이 가진 것을 착취하는 자였고, 더 나아가 그녀를 노예로 팔아 버리는 일을 자행한 것입니다. 고멜은 호세아를 떠나 그 남자를 따라가면 더 많은 것을 누릴 줄 알았는데 결과는 참담했고 몸까지 종으로 팔려 빠져나오지 못하는 매임을 당하여 착취당하는 최악의 상황이 된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버리고 세상을 사랑하여 따라 가면 당하는 결과입니다. 고멜의 불행의 원인이 신실한 남편인 호세아를 배신하고 떠난 것에서부터 시작된 것처럼 사실 인간의 불행의 시작은 하나님을 배신하고 떠난 것에서부터 시작 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과 세상과 죄를 따라갔다면 그에 마땅한 심판과 보응, 저주를 영원토록 받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더 이상 소망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 죄를 어떻게 용서 받을 수 있고, 용서를 구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놀랍게도 하나님께서는 그런 고멜을 대속하시고 다시 부르시기 위해 호세아를 보내십니다. 그리고 묶여 있는 그 노예의 몸값을 대신 치루십니다. 고멜이 자신의 죄를 깨닫고 먼저 찾아와 용서를 구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물론 노예가 되어 묶이고 고통 받으며 모든 것을 빼앗기며 살아가는 고통 가운데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후회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스스로 그 죄와 잘못, 그 저주와 심판의 자리에서 스스로 구원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 죄의 묶임과 저주와 형벌에서 건져줄 구원자가 필요한 것입니다. 죄의 몸값을 지불할 속량자가 필요한 것입니다. 종이 된 사람을 일정한 값을 치루고 데리고 오는 것을 성경적으로 속량, 혹은 대속이라고 부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 호세아를 보내는 것입니다. 대속할 몸값을 지불하고 그 고멜을 사서 데리고 오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어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 값을 대속하여 치루어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요 사랑인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구원자, 대속자로 믿고 영접하는 이유인 것입니다.

호세아가 자신을 버리고 다른 남자를 따라가는 간음을 하고 노예가 되어 살아가고 있는 상황 속에서 은 15세겔과 그리고 보리 한 호멜 반을 가지고 고멜을 대속하기 위해서 찾아간 것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전 재산을 다 가지고 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속하시기 위해서 자신의 생명을 내어 주신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렇게 대속하여 구원하시려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3절입니다. “당신은 많은 날을 나와 함께 살면서, 창녀가 되지도 말고, 다른 남자와 관계를 맺지도 말고, 나를 기다리시오. 그 동안 나도 당신을 기다리겠소” 다른 것을 요구한 것이 아니라 나와만 사랑하는 관계로 살아가자는 것입니다. 남편인 나만을 사랑해 달라는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모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명하신 하나님의 가장 큰 명령과 계명이 구약에 신명기 6:5절인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이고 예수님께서 이 구절을 인용하여 마태복음 22:37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다” 라고 알려 주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호세아를 통하여 고멜에게 보여 주신 그 사랑, 그 대속, 그 은혜를 아는 자들입니다.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속량의 제물로 생명을 버리시고 구속하여 주심을 알고 믿는 자들입니다. 그렇게 하신 하나님의 뜻, 우리에게 바라시고 요구하는 것이 다른 것이 아닌 하나님을 향한 온전한 사랑이요,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없는 거룩과 순결임을 알아야 합니다. 거룩과 순결, 즉 하나님의 뜻대로 이 세상과 구별된 삶, 죄의 유혹을 분별하고 말씀으로 이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삶이 우리에 베풀어 주신 그 놀라운 강권하신 은혜와 사랑에 이끌려 우리 또한 그러한 사랑과 헌신의 삶을 살아가는 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Category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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