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에베소서 2:8-10
8 여러분은 믿음을 통하여 은혜로 구원을 얻었습니다. 이것은 여러분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아무도 자랑할 수 없습니다.
10 우리는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선한 일을 하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미리 준비하신 것은, 우리가 선한 일을 하며 살아가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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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프로그램 중에 골동품들을 감정해 주고 가격을 알려주는 것이 있습니다. 오랫동안 집에서 보관해 온 물건일수도 있고 벼룩시장 같은 곳에서 단돈 몇불에 산 것도 있습니다. 가구나, 그림, 칼이나 보석 같은 것을 가격이 얼마나 되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가져 오는 사람들에게 전문가들이 감정해서 지금 팔면 어느정도 시세가 되는지를 알려 줍니다.
어떤 사람은 가문 대대로 간직해 온 도자기, 그림이라고 수천, 수만불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가지고 나왔는데 감정 결과 위조나 짝퉁이라고 몇십불, 혹은 몇 백불 밖에 되지 않는다고 실망하고 돌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볼품없는 그림이고 오래된 가구인데 감정사가 보고는 이 가구의 모양이나 형태, 혹은 그 속에 잘 보이지 않는 문구를 보고 어느 시대에 유명한 작가의 몇 개 안되는 작품이라고 하거나, 그림을 보고 우리도 들어서 알고 있는 렘브란트, 고호 같은 화가가 그린 그림이라고 수십만 어떤 것은 수백만 달라가 넘는다는 평가를 하기도 합니다.
그림이나 물건의 가격이 얼마나 잘 만들어졌느냐, 예쁘게 그렸느냐가 아니라 그 물건을 명품으로 인정하는 것은 그 그림을 그린 화가가 누구냐가 중요합니다. 그것을 만든 사람이 누구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물론 유명한 화가나 작가는 그 그림 속에 우리는 잘 알지 못하지만 명품이라고 할 수 있는 화법이나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10절에서 사도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를 향해 “우리는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라고 선포합니다. 영어로 말한다면 Master Piece 즉 명품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드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를 가격으로 친다면 천하보다 더 귀한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귀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사시기 위해 치루신 가격이 예수님의 생명입니다. 우리가 어떤 물건을 샀을 때 얼마를 주고 샀기에 “얼마짜리” 라고 말하듯이 구원 받은 우리는 “예수님짜리” 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만드신 하나님의 작품이요 우리를 독생자 아들을 십자가에서 죽게까지 해서 사신 목적이 있습니다. 단지 벽에 붙여 놓은 그림이 아니라 오늘 본문 10절에 “선한 일을 하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미리 준비하신 것은, 우리가 선한 일을 하며 살아가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라고 하십니다. 즉 나를 통해 하나님이 나타나고, 나를 통해 보이시려는 하나님의 성품이 드러나는 것이 하나님의 작품 된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작품으로 하나님을 드러내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첫째, 믿음으로 하나님의 선물인 구원을 받았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살아야 합니다. 8절 “여러분은 믿음을 통하여 은혜로 구원을 얻었습니다. 이것은 여러분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어제 함께 나눈 말씀이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작품으로 만들기 위해서 우리에게 은혜로, 선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구원, 죄에서 사함을 받는 구원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처음 창조하셨을 때 우리의 모습은 작품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고 내가 하나님의 자리에 올라가서 내 뜻대로, 내 마음대로 사는 죄를 지음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우리는 깨어지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선물로 구원을 받았다는 것을 설명한다면 우리는 원래 고려청자와 같이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값으로 환산할 수 없는 작품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고려청자가 땅에 떨어져 산산 조각이 나버린 것입니다. 우리는 나름대로 그 깨진 조각을 모아 다시 원상태로 돌려놓으려고 노력해 봅니다. 착하게 살아보려고 하고 나름대로 선한 일을 해서 다시 원래의 고려청자로 만들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가능합니까? 가능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습니다.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되어 보겠다고 내 힘으로 살려고 합니다. 깨어진 그릇을 맞추려고 하는 것입니다. 아닙니다. 우리의 문제는 수선해서 될 문제가 아닙니다. 깨진 그릇이 붙여 질 수 없듯이 깨진 성품은 회복이 불가능합니다.
요한복음 3장을 보면 바리새인이요 그 당시 국회의원이었던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찾아 왔습니다. 바리새인이라면 그 당시 하나님의 율법을 철저하게 지킨 사람이었습니다. 니고데모는 또한 성경을 가르치는 선생이었습니다. 나름대로 착하게 살아 보려고 노력했고, 율법을 지키려고 노력했고, 예배를 빠지지 않고 헌금생활 철저히 했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으로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의 마음을 예수님께서 아시고 하시는 말씀이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고는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다시 말해서 깨어진 모습을 수선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구원은 내가 노력해서, 선한 일을 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깨진 그릇을 수선해서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떤 은혜로 우리가 구원을 받습니까?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우리의 죄 값을 대신하여 달려 죽으신 은혜로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그 구원은 우리의 노력으로 얻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베푸신 십자가의 은혜로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작품이 되기 위해서는 그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으로 받아 새로운 피조물이 될 때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작품으로 하나님을 드러내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둘째, 겸손으로 하나님을 높여 드려야 합니다. 신앙생활을 오래하면 할수록 빠지기 쉬운 함정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나를 내세우는 교만입니다. 9절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아무도 자랑할 수 없습니다” 신앙생활을 처음 시작한 사람, 교회 처음 온 사람은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기도도 못하고 성경도 모릅니다. 교회에 대해서도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성경 공부를 할 때도 잘 받아들이고 성경 공부하라고 하면 해야 하는 것인 줄 알고 잘 순종합니다.
그런데 교회 생활을 오래하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교만하게 될 때가 많습니다. 처음에는 하나님의 은혜로 겸손하게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에 감사하여 봉사하기 시작합니다. 배우기 시작합니다. 열심히 섬깁니다. 그러다가 어느정도 시간이 흐르고 신앙의 연수가 쌓이면 내가 한 일들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내가 애쓴 봉사, 내가 드린 헌금의 액수, 그래도 내가 섬기고 봉사했기 때문에 교회가 이정도 되었다는 마음이 듭니다. 누군가 나를 알아주지 않고, 내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섭섭한 마음, 더 나아가 분노하는 교만한 마음을 갖습니다.
그러한 교만한 마음이 들기 시작하는 순간 신앙은 타락합니다.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이었던 사울 왕이 그러했습니다. 백성들이 사울을 왕으로 뽑았을 때 그는 나 같은 자가 어떻게 왕이 되겠냐고 숨었습니다. 그렇게 겸손했던 사울이 왕이 되고 시간이 흐르면서 자신의 업적을 드러내고 하나님의 명령보다 자신의 뜻과 생각대로 행동합니다. 그러한 사울 왕을 향해 선지자 사무엘이 말합니다. 사무엘상 15:17 “왕이 스스로 작게 여길 때 여호와께서 왕에게 기름을 부어 왕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이제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시나이까?”사울 왕이 교만하여 자신을 드러내고 하나님의 뜻과 말씀이 아닌 자신의 생각과 뜻을 고집하여 불순종의 죄를 저지르기 시작했기 때문에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내가’라는 마음이 들고, 내가 한 일, 내가 얼마나 중요한 사람이고, 내 생각이 옳다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나야” 라고 알리는 순간 추락하게 되는 것입니다. 교만한 마음이 드는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작품으로 하나님을 드러내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겸손한 마음을 늘 가져야 함을 늘 상기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작품으로 하나님을 드러내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세 번째 선행으로 하나님을 나타내야 합니다. 에베소서 2:8-9 “여러분은 믿음을 통하여 은혜로 구원을 얻었습니다. 이것은 여러분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선한 행위로는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받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를 은혜로 구원하신 목적은 선한 일을 위함입니다. 10절을 보십시오. “우리를 구원하신 것은, 우리가 선한 일을 하며 살아가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선한 일이 구원의 방법이 될 수 없지만 선한 일이 바로 구원의 목적입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으로, 하나님의 조건없는 사랑과 은혜로 받았고 놀라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에 이 땅을 살면서 예수님의 은혜와 사랑을 드러내는 선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선한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한마디로 말하면 사랑하는 삶입니다. 내 옆에 있는 사람들, 내 가족, 내 남편과 아내, 내가 알고 지내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전하는 섬김의 삶, 사랑의 삶, 기뻐하는 삶, 믿음의 삶, 희생하는 삶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하나님의 작품으로 새롭게 구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작품으로 만드신 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의도,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와 구원의 길을 보여 줌으로 믿고 감격과 감사를 전하는 작품이 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가정에서 교회에서, 직장에서 사회에서 선한 일을 통하여 하나님을 드러내는 감동을 주는 작품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인생을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작품으로 만드셨습니다. 갈보리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 죽으심으로 작품으로 새롭게 하셨습니다. 여러분의 삶 속에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구원의 감격으로 맡겨준 영혼들을 하나님의 마음으로 섬기며 사랑함으로 그들이 우리를 보고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는, 하나님의 모습을 드러내는 영광스러운 작품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