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창세기 3:9-10
9 주 하나님이 그 남자를 부르시며 물으셨다. “네가 어디에 있느냐?”
10 그가 대답하였다. “하나님께서 동산을 거니시는 소리를, 제가 들었습니다. 저는 벗은 몸인 것이 두려워서 숨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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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잘못된 삶, 잘못된 방향으로 달려가고 있을 때, 즉 죄를 지었을 때 찾아와 질문하십니다. 오늘 본문에 첫 인간이었던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께서 금하신 선악과를 먹고 숨었을 때 찾아 오셔서 하신 첫 번째 질문이 바로 그 질문입니다. “아담아 아담아 네가 어디에 있느냐?” 이 질문에 많은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이 어디에 있는지 몰라서 묻는 질문이 아닙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은 죄, 불순종의 죄, 교만의 죄를 지은 것을 아시고 회개하고 돌이키게 하시기 위한 질문이셨습니다. 살리시기 위한 질문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우리들에게 “네가 지금 어디 있느냐?” 라고 물으십니다. 이 하나님의 질문은 “네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느냐? 어디에 초점을 맞추고 살아가고 있느냐? 네가 서 있는 자리가 있어야 할 자리냐? 네 마음에 품고 있는 것이 바른 것이냐? 네가 가는 발걸음이 좁은 길, 생명의 길, 내가 가라고 하는 길이냐?” 라고 물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물으시는 이 질문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질문에 지금 나의 모습, 나의 상태를 돌아보고 돌이키고 점검하고 다시 일어서야 합니다. 바른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의 수제자였던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너희가 다 나를 버릴것이다” 라고 하셨을 때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절대 주님을 버리지 않겠습니다. 죽기까지 따르겠습니다”라고 호언장담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잡히시자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합니다. 그리고 도망하고 숨어 지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죄책감과 수치심으로 갈릴리로 도망쳐서 어부로 돌아간 베드로를 찾아가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라는 질문을 하셨습니다. “어떻게 나를 모른다고 부인했냐? 네가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 책망하고 죽이려는 질문이 아닌 다시 회복시켜 사명을 주시려는 질문이셨습니다.
인간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다른 사람을 속이며 살았던 야곱을 하나님께서는 얍복강으로 찾아와 “네 이름이 무엇이냐?” 라고 질문하십니다. 더 이상 인간적인 방법, 자기 이익을 위해 남을 속이며 사는 야곱, 다른 사람 발꿈치를 붙잡고, 다리 걸어서 넘어트리는 인생이 아니라 “이스라엘”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찬양하며 살아가는 인생으로 회복시키기 위해서 찾아와 하신 질문이십니다. 베드로, 요나, 야곱은 하나님의 질문 앞에 돌이키고 회개함으로 회복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놀랍게 쓰임 받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과 질문은 우리로 회개함에 이르게 하시려는 뜻입니다. 우리를 회복시키시고 새롭게 하시 위함이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나의 죄를 깨닫고 회개함으로 나오는 사람이 있고 “내가 무슨 죄가 있느냐?”라고 교만함과 완악함으로 나오는 자가 있습니다. 가인이 그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네 아우가 어디 있느냐?” 라고 질문하셨습니다. 가인의 죄를 하나님께서 아시고 회개시키고 돌이키시기 위한 마지막 질문이셨습니다. 그런데 가인은 “내가 동생을 지키는 자입니까?” 라고 자신의 죄를 회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고개 뻣뻣이 들고 반박합니다.
아말렉 족속을 완전히 멸하고 돌아오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전쟁에 나갔던 사울 왕이 그 명령에 순종하지 않고 아말렉 왕 아각을 포로로 잡아오고 수많은 가축들을 전리품으로 잡아옵니다. 하나님께서 사무엘 선지자를 통하여 사울 왕에게 “내 귀에 들리는 이 가축들의 소리는 무엇이냐?” 라고 질문했을 때 아말렉을 완전히 전멸시키지 않고 좋은 것을 가져온 불순종을 회개하게 하시려는 하나님을 질문에 사울 왕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려고 가져온 것입니다” 라고 변명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우리들에게 회개와 회복을 위해 질문하십니다. 언제, 어떻게 우리에게 질문하십니까?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말씀을 듣고, 읽고 공부하며 묵상할 때 들려 주십니다. “내게 말씀하여 주옵소서. 내가 듣겠나이다. 제가 말씀대로 순종하겠습니다”라는 마음으로 성경 말씀을 가까이 읽을 때,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할 때,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성령님을 통해서 마음에, 양심을 통해 느껴지고, 감동하게 하시고, 들려주시는 질문과 말씀이 있습니다. 이것이 참된 신앙생활입니다. 하나님의 소리와 질문, 성령께서 마음속에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소리와 질문을 듣고 회개함과 순종함으로 나아가 용서함을 받고 살림을 받는 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소리를 듣지 못한다 라고 변명하지만 기본적으로 우리는 영적인 것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어떤 상황, 누군가의 말, 어떤 일을 통해서 “내가 이러면 안되지. 이렇게 하면 큰일나지” 라는 하나님께서 지적하시는 죄와 말과 행동을 문득 자각하게 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런데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것을 무시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소리, 하나님의 질문을 가인처럼, 사울왕처럼 변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소리는 우리들이 잘못 살았을 때 들려옵니다. 9절에 아담이 범죄하고 에덴동산에 숨었을 때, “아담아 어디 있느냐?”고 부르셨습니다. 우리들이 잘못할 때 회개하고 돌아오라고 하나님이 부르시는 사랑의 음성입니다. 잘못 살았을 때도 용서해 주시려고 들려오는 소리입니다. 하나님의 소리를 들었을 때 아담처럼 숨는 자가 되지 마십시오. 가인처럼 반박하지 마십시오. 사울 왕처럼 변명하지 마십시오. 다윗 왕처럼 “내가 하나님 앞에 죄를 지었습니다” 엎드러지십시오. 베드로처럼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제가 연약하여 넘어졌습니다” 라고 엎드러지십시오. 하나님 앞으로 나와 잘못했노라고 고백하십시오. 이것이 사는 길이다.
하나님의 소리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려고 애쓰고 힘쓸 때 들려옵니다. 주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것 쉽지 않은 일입니다.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 쉽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사명대로 사는 길 십자가를 지는 길입니다. 낙심되는 일, 답답한 일, 고통스러운 일을 만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가 그 십자가, 말씀, 하나님의 뜻과 명령을 놓지 않고 살려고 애쓸 때 평안으로, 때로는 위로함으로, 새로운 힘으로, 격려의 말씀을 주십니다. 그래서 승리할 수 있게 하십니다. 고린도후서 4:8-10절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되지 아니하며 거꾸러 뜨림을 당하여 도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성경에 나오는 신앙의 선배들의 모습을 보십시오. 그들도 낙심했습니다. 좌절했습니다. 두려워하고 의심의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충성된 마음으로 살 때 하나님께서 찾아와 주시고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한다. 내가 너를 지키리라. 내가 이루리라” 라는 말씀을 주셨을 때 다시 일어나 주님의 길을 가고 결국 주님의 뜻을 이루는 승리를 봅니다.
에덴동산에 들려온 소리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도 끊임없이 들려오는 소리입니다. 사단의 소리, 육신의 소리, 우리를 유혹하는 소리가 있습니다. 그 소리에 넘어가 믿음에서 떠나고, 말씀을 타협하고, 사단이 원하는 멸망의 길로 가기 쉬운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기도함 속에 하나님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살리시고 회복시키시고, 회개케 하시려는 “아담아 네가 어디에 있느냐?”라는 하나님의 질문의 소리에 회개와 돌이킴이 있기를 바랍니다. 또한 충성되이 믿음으로 살려고 할 때 낙심과 좌절될 때 하나님의 위로의 음성, 하나님의 격려의 음성, 약속의 말씀으로 힘을 얻어 힘 있게 일어서서 승리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