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창세기 6:15-22
15 그 방주는 이렇게 만들어라. 길이는 삼백 자, 너비는 쉰 자, 높이는 서른 자로 하고,
16 그 방주에는 지붕을 만들되, 한 자 치켜올려서 덮고, 방주의 옆쪽에는 출입문을 내고, 위층과 가운데층과 아래층으로 나누어서 세 층으로 만들어라.
17 내가 이제 땅 위에 홍수를 일으켜서, 하늘 아래에서 살아 숨쉬는 살과 피를 지닌 모든 것을 쓸어 없앨 터이니, 땅에 있는 것들은 모두 죽을 것이다.
18 그러나 너하고는, 내가 직접 언약을 세우겠다. 너는 아들들과 아내와 며느리들을 모두 데리고 방주로 들어가거라.
19 살과 피를 지닌 모든 짐승도 수컷과 암컷으로 한 쌍씩 방주로 데리고 들어가서, 너와 함께 살아 남게 하여라.
20 새도 그 종류대로, 집짐승도 그 종류대로, 땅에 기어다니는 온갖 길짐승도 그 종류대로, 모두 두 마리씩 너에게로 올 터이니, 살아 남게 하여라.
21 그리고 너는 먹을 수 있는 모든 먹거리를 가져다가 쌓아 두어라. 이것은, 너와 함께 있는 사람들과 짐승들의 먹거리가 될 것이다.”
22 노아는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다 하였다. 꼭 그대로 하였다.
———————————————————
하나님께서는 대홍수로 죄악으로 가득한 세상을 심판하시고자 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가운데 구원의 길을 노아를 통하여 방주를 만들게 하셨습니다. 어제 함께 나누었듯이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만들라고 하신 방주는 몇 사람만 겨우 들어갈 수 있는 방주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만들라고 명하신 방주는 모든 사람들이 다 들어갈 수 있는 넉넉한 방주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 받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렇기에 성경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는다고 알려 주시면서 ‘누구든지’ 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오직 한 길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그렇기에 방주로 들어갈 수 있는 문은 단 하나였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 속에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만들라고 명하신 방주의 특징을 살펴보겠습니다. 노아의 방주는 3층으로 되어 있습니다. 16절에 보면 “위층과 가운데층과 아래층으로 나누어서 세 층으로 만들어라”라고 알려 줍니다. 노아가 만든 방주는 1층,2층, 3층으로 되어 있고 창문이 있었는데 동서남북에 하나씩 제일 위층 밑에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그 창문은 안에서만 열수 있도록 만들어졌습니다.
방주가 3층으로 되어 있고 창문은 3층에 있었으니까 가장 햇빛을 받아 환했던 곳이 몇층이었겠습니까? 분명히 3층이었을 것입니다. 2층은 조금 희미했을 것 같고 제일 아래층은 아마 어둡고 캄캄했을 것 같습니다.
이 시대의 방주인 교회를 봐도 3층으로 나누어져 있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교회 안으로는 들어는 왔는데 어떤 성도는 3층, 어떤 성도는 2층, 어떤 성도는 1층에 삽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비춰주시는 은혜의 빛을 받으며 구원의 방주에 탄 하나님께 감사하며 “주와 같이 길 가는 것 즐거운 일 아닌가. 나와 동행하시고 모든 염려 아시니 나는 숲의 새와 같이 기쁘다” 라고 매일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만끽하며, 묵상하며 찬송과 감사의 생활을 하는 성도님들이 있습니다. 설교를 들을 때도 기뻐하며 듣습니다. 찬송하는 모습을 봐도 기뻐하는 모습이 있습니다. 좋은 일이 있을 때도 혹은 어려운 일이 생겨도 그것을 인내하며 기쁨으로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훈련시키시려나 보다. 나를 축복하시려나 보다” 모든 환경 속에서 하나님의 도우심과 임재하심과 선하심을 믿고 맡겨진 일들을 기쁨으로 수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분들을 만나면 마음이 시원해집니다. 함께 있고 싶습니다. 든든합니다. 3층에 사는 성도들입니다.
그러나 내 기분이 좋으면 기뻐하고 내 기분이 상하면 우울해 하고 어떤 때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다가 상황이 나빠지면 금방 원망하는 성도들. 전에는 같이 죽고 같이 살 것 같이 지내다가 내 자존심을 건들어 놓으면 철천지 원수로 변하는 성도들. 이랬다 저랬다 변죽이 심한 그저 그렇게 믿음 생활을 하는 성도들 2층에 사는 성도들입니다.
교회라는 구원의 방주에 탔으면서도 언제나 우울하고 불평과 불만을 가지고 사는 성도들이 계십니다. 모든 일에 부정적입니다. 항상 험담에 동조합니다. 다른 사람을 깍아 내리고 비판하고 남들 웃을 때 혼자 웃지 않는 사람. 시한폭탄 같은 성도들. 이런 성도들은 1층 바닥에 사는 성도들입니다. 그곳에 있지 마십시요. 구원의 방주인 교회에서 우리가 함께 생활하는데 기뻐해야 되지 않겠습니다. 우리 헤이워드 성도님들은 모두 3층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빌립소서 4:4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예수를 믿는 우리는 기뻐할 충분한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는 구원받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영원한 천국을 소유한 사람입니다. 하늘 시민권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원의 방주에 탄 사람들,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은 기쁨이 충만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목회도 기쁘게 해야 하고, 교회를 섬길때도 기쁨으로 섬겨야 하고 식당 봉사를 해도 기쁘게 충성해야 합니다. 그런 삶이 3층에 사는 성도의 삶입니다.
넷째, 노아의 방주는 선장이 없고 키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방주를 만들라고 한 청사진을 보면 배에 운전대가 없습니다. 돗대가 없습니다. 노가 없습니다. 키도 없고 운전대로 없습니다. 그래서 키가 없고 돗대도 없고 노가 없기 때문에 배가 아니라 방주, 영어로 Ark 라고 부릅니다. 방주는 상자입니다. 하나님의 십계명이 새겨진 두 돌판과 아론의 싹난 지팡이, 그리고 만나 항아리를 담고 있는 것을 법궤라고 합니다. 영어로 The Ark of Covenant 라고 부릅니다. 노아의 방주는 앞도 뒤도 없고, 노도 삿대도 돛대도 없는 그저 사각형의 방주입니다.
그러나 돛도 없고 키도 없는 방주가 정확하게 안전하게 항해해서 어디에 도착합니까? 아라랏산 정상에 안착합니다. 이 배의 선장은 누구였습니까? 노아였습니까? 아닙니다. 바로 하나님이셨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이 지으라고 하신 대로 방주를 만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으라고 하신 대로, 목적대로 순종했더니 보기에는 상자 같고 키도 돛도 없는 볼품없는 방주였지만 그 방주를 하나님께서 운행 하셔서 물에서 구원하시고 안전하게 아라랏 산에 도착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교회의 선장은 누구이십니까? 하나님이십니다. 교회의 머리는 누구이십니까? 예수님이십니다. 노아는 단지 하나님께서 지으라고 한 방주를 그대로 지은 사람이었습니다. 그저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순종한 종이였습니다. 노아의 직업은 평범한 농부였습니다. 목수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농사꾼이 만든 방주가 40일 주야로 쏟아지는 빗줄기와 파도, 그리고 약 1년 이상 바다에 떠 있었는데도 아무런 탈없이 완전했습니다. 목수가 아닌 농사꾼이 어떻게 그런 튼튼한 방주를 만들 수 있었습니까? 노아의 재능이 뛰어나서, 솜씨가 좋아서 그랬습니까? 아닙니다. 노아의 방주가 튼튼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설계대로 지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잣나무로 지으라고 해서 노아는 잣나무를 재료로 방주를 지었습니다. 내가 편하다고 대나무나 소나무로 만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명하신 나무를 재료로 방주를 지었다는 것입니다. 역청으로 그 안팎을 칠하라고 했을 때 노아는 왜 냄새나는 역청, 손에 대기도 싫은 역청을 바르라고 하냐고 불평하면서 대충하지 않았습니다. 정성껏, 성실히 하나님의 명하신 대로 물이 스며들지 않도록 방주의 안팎을 정성껏 칠했습니다. 내 맘대로, 내 생각대로, 내 법대로 방주를 만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규정하신 규격대로 길이 150m 넓이 25m 높이 15m 로 지었습니다. 창을 내라고 한 곳에 창을 내었고 삼층으로 지으라고 해서 삼층으로 지었습니다.
지금 배를 설계하는 전문가들이 말하는 것은 성경에 하나님께서 명하신 방주의 규격이 배가 높은 파도에도 전복하지 않는 가장 안전한 규격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과 제가 아무리 똑똑하고 재주가 좋아도 하나님의 방법대로 인생이 방주를 짓지 않는다면 그 인생의 방주는 오래가지 않아 전복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삶, 더 나아가 우리 교회가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해서 세우지 않는다면 오래가지 않아 전복될 것입니다. 또한 우리의 인생이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해서 순종하지 않는 삶, 인생의 배를 탄다면 우리의 삶은 오래가지 않아 물이 새고 전복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무리 무능해도 하나님의 명하신대로 순종하며 나아간다면 어떠한 풍랑과 거센 파도가 수없이 부딪혀도 안전하고 견고하게 마지막 때에 아라랏 산에 도착해서 구원의 기쁨을 영원히 누릴 것입니다. 저는 성도 여러분들의 삶이 노아의 삶과 같이 구원의 방주를 만들어 구원을 이루는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