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깨우리로다” (시편 57:1-11)
시편 57편은 사무엘상 22장에 나오는 다윗이 사울 왕을 피하여 메마른 광야에 있는 아둘람 굴에서 찬양한 시편입니다. 다윗이 처한 상황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포기합니다. 좌절합니다. 절망합니다. 신세를 원망하고 상황을 원망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그 상황 속에서 놀랍게도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힘 있게 일어나겠다고 선포합니다. 8절에 “내 영혼아 깨어나라 거문고야 수금아 깨어나라 내가 새벽을 깨우련다”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절망스러운 상황 속에서 “내가 새벽을 깨우련다” 라는 고백은 첫째,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을 때 가능한 고백입니다. 1절 “참으로 하나님,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내 영혼이 주님께 피합니다. 이 재난이 지나가기까지 내가 주님의 날개 그늘 아래로 피합니다” 절망과 좌절 속에 있는 다윗이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라고 외친 것은 내가 숨을 곳, 피할 곳, 나를 구원해 줄 믿는 구석이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분명 자기를 보호하고 지켜 주시고 구원해 주실 것임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나의 목자로, 나의 피난처로, 나의 반석으로 나의 구원자로 믿었기에 아람굴속에서도 담대함과 감사함과 찬양으로 내가 새벽을 깨우리라고 외칠 수 있었습니다. 다윗의 “새벽을 깨우리로다” 라는 외침이 우리의 외침이 되기를 원합니다.
둘째, 새벽을 깨우리로다 라고 외치는 고백은 삶의 이유를 알고 살아갈 때 가능합니다. 언제 잡혀 죽을지 모르는 목숨을 위해 도망하고 좇기며 살고 있는, 더 이상 숨을 곳이 없어 가장 험난하고 메마른 광야에 있는 아둘람 굴에 숨어 지내고 있는 상황에 있는 다윗은 자기가 살아가는 이유, 고통 속에서도 새벽을 깨우겠다고 담대하게 말하는 이유는 자기가 옳다는 것을 밝히려는 교만도, 사울 왕에게 복수하려는 미움도, 자기의 왕국을 세워 보려는 욕심도 아니었습니다. 다윗의 삶의 이유는 한 가지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개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의 삶이 이유와 목적이 내가 잘되고, 내가 편하고, 내가 복 받는 것을 위해 사는 것이 내가 섬겨야 할 영혼들이, 교회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영광을 드리는 삶을 살게 하는 일임을 기억하고 어떠한 상처와 어려움 속에서도 다윗과 같이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라고 담대히 외치며 살아가는 강한 하나님의 용사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