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기준과 세상의 기준이 엄청나게 다릅니다. 하나님을 알기 전에,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알기 전에는 세상의 기준으로 판단하고, 세상의 기준을 따라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성도는 하나님의 기준을 알고 하나님의 기준과 판단에 따라 세상을 살아야 합니다. 비록 하나님을 위한다는 좋은 의도, 좋은 생각도 하나님의 기준과 방법이 아니라면 그것은 악한 일이 됩니다. 다윗이 법궤를 예루살렘 성으로 가져 오려고 했던 것은 자신과 많은 백성들이 함께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한 좋은 의도였습니다. 웃사가 하나님의 법궤를 실어 가기 위해서 새 수레를 준비해서 가져갔던 것 좋은 의도였습니다. 사람의 기준, 세상의 기준으로는 옳은 것이고 맞는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이 하나님의 기준과 방법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 알아야 하는 것이 첫째, 좋은 의도보다 앞서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방법과 기준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왜 하나님께서 웃사를 죽이셨습니까? 웃사는 레위인으로 하나님의 말씀과 기준을 바로 알고 그 기준과 방법대로 따르고 순종해야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법궤에 대한 분명을 지침을 주셨습니다. 첫째, 만지지 말라. 둘째, 들여다보지 말라. 셋째, 옮길 때는 레위 지파 제사장들이 메고 옮기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죽는다 라고 민수기 4장에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웃사는 하나님의 방법대로 법궤를 운반했어야 합니다.

그런데 웃사는 법궤를 운반하기 쉽게, 보기 좋게, 힘 좋은 소들이 끄는 새로 만든 수레를 만들어서 보내면 훨씬 더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나름대로는 좋은 생각이고, 좋은 의도였지만 가장 중요한 것이 빠진 것입니다.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기준과 방법대로가 자기 생각, 자기 방법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방법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 방법, 편리함을 따라간 것입니다.

우리 또한 신앙생활을 하면서 웃사의 실수를 범할 수 있습니다. 나름대로 하나님을 위한다고, 교회를 위한다고 생각해서 나름대로는 좋은 의도로 하는 행동들이 하나님의 기준과 방법이 아닐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하는 일이 좋은 일이냐 형편에 맞는 일이냐가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냐, 하나님의 방법과 기준과 뜻을 바로 알고 그대로 행해야합니다. 이 시대에 우리가 회복해야 할 것이 하나님의 말씀과 기준을 바로 알고 신앙생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경외하는 마음으로 신앙생활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정말 두려움과 경외하는 마음으로 순종하는 성도들을 찾으십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을 바로 알고 내 생각, 내 뜻과 고집, 편함을 버리고 온전하게 순종하기 위해 애쓰는 성도를 찾으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배우고 공부하여서 하나님의 뜻과 기준, 방법을 바로 알고 하나님의 뜻과 기준대로 살아가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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