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베드로전서 5:8-9
8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으십시오. 여러분의 원수 악마가, 우는 사자 같이 삼킬 자를 찾아 두루 다닙니다.
9 믿음에 굳게 서서, 악마를 맞서 싸우십시오. 여러분도 아는 대로, 세상에 있는 여러분의 형제자매들도 다 같은 고난을 겪고 있습니다.
————————————————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을 창조하셨을 때 육체만이 아닌 영적인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우리는 동물과 같이 육체만 소유하여 본능적으로 살다가 죽어 없어지는 존재가 아닙니다. 이 땅에서 육체를 가지고 짧게 80-90년 살지만 우리의 영은 새로운 몸을 입고 영원히 살아가는 영적인 존재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 살면서 영적인 삶에 더욱 초점을 맞추고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동행하심대로 살아야 합니다. 영원한 세상을 준비하는 영적인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땅에서 정신없이 먹고 사는데 바쁘게 살다보니 이 중요한 진리를 잊고 삽니다. 그러한 우리를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의 영을 깨우시기 위해서 영적인 위기를 허락 하십니다. 영적인 위기는 우리가 살면서 여러 가지 형태로 다가옵니다. 육체의 아픔으로, 관계가 깨짐으로,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영적인 위기를 깨닫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로 영적으로 깨우시려고 직접 시련을 주시기도 하시고, 우리의 실수나 불신앙, 무지를 통해서 어려움과 고난의 문제를 만나게 하시고, 또한 사단의 시험을 허락도 하십니다. 그러한 고난과 위기의 시간을 통해 영적으로 깨어날 수 있는 시간을 주십니다. 그러한 영적인 위기를 만날 때 ‘아 하나님께서 나의 영을 깨우시기 위해서 이런 일을 허락 하셨구나’ 깨닫고 영적인 잠에서 깨는 사람이 복된 사람입니다. 그러한 어려움이나 시련을 만날 때 “나의 영적인 삶이 어떠한가?”를 돌아보며 영적으로 깨어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다’ 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마귀는 존재하고 마귀는 끝없이 우리를 영적으로 넘어트리고 영적인 것을 생각지 않게 하기 위해서 일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영적인 삶보다는 세상적으로 바쁘게 하고 세상에 관심을 가지게 함으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일에,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에 무관심하도록 합니다.
이 시대를 돌아보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사단의 유혹과 공격으로 인해 영적인 것에는 관심 없이 사는지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든 관심이 어디에 있습니까? 나에게 있습니다. 돈에 있습니다. 자녀 교육에 있습니다. 편안함에 있습니다. 바쁘게 살아가는 것에 있습니다. 먹고 사는 일에 있습니다. 그런 것이 필요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영적인 눈으로 우리의 삶을, 우리의 인생을 돌아볼 때 과연 최선을 두고 살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깨달아야 하고 지금 내 영적인 상태가 어떠한지를 돌아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단은 언제 우리를 공격합니까? 첫째, 우리의 신앙이 나태해졌을 때 여지없이 공격합니다. 우리의 신앙상태가 나태해 지면 마귀의 표적 대상이 되어 영적 위기를 당하게 됩니다. 영적으로 죽게 되어 있습니다. 사자나 늑대, 하이에나, 표범과 같은 포식자들이 노루나 사슴, 들소 같은 동물을 사냥할 때 아무것이나 잡으려고 달려 들지 않고 잡으려고 하는 표적을 정합니다. 그리고 그 표적은 무리 중에서 가장 약해 보이는 것, 주변을 살피지 않고 먹는데 정신없는 것이 사냥감의 표적이 됩니다.
마귀도 마찬가지 입니다. 신앙생활에 확실하고 열심을 가진 사람들을 표적으로 하지 않습니다. 꾸준히 영적인 삶에 힘쓰는 기도와 말씀과 순종하는데 힘쓰는 자들을 목표로 삼지 않습니다. 그럴 때는 관망만 합니다. 그러다가 기도 생활과 말씀 생활이 나태해지기 시작하면 그 틈을 타서 공격하고 그 나태함이 계속 이어지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그러한 예를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26장에 보면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씩이나 모른다고 부인하는 사건이 나옵니다. 그때 베드로는 어디에 있었습니까? 58절 말씀을 보면 “베드로가 멀찍이 예수를 좇아”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그것도 수제자였습니다. 항상 앞장섰던 제자였고 가장 예수님 곁에서 따르던 제자였습니다. 그런데 본문을 보니까 예수님의 뒤를 멀찍이 따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베드로가 사탄에게 농락당하는 이유였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예수님께 늘, 꼭 붙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초점 맞추어야 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있어야 하고, 영적 갑옷으로 무장하고 늘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사도행전 20장을 보면 바울이 드로아에서 말씀을 강론할 때 유두고 라는 청년이 3층에서 떨어져 죽었습니다. 그 청년이 왜 떨어졌습니까? 졸다가 떨어졌습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깨어있지 못하면, 영적으로 졸고 있으면 우리의 영적은 상태는 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 베드로는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근신하라 깨어라” 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사단이 우리를 공격할 때는 우리가 교만하고 스스로 과신할 때 입니다. 우리가 나는 이정도면 되었다. 내가 집사인데, 내가 신앙생활 이정도인데 나는 더 이상 배울게 없다, 다 안다 라는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할 때 넘어집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시고 세워주시지만 교만하고 과신하는 자를 외면하신 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사단도 그것을 잘 압니다. 그래서 사단은 교만한 자를 흔듭니다. 공격합니다.
교만하고 스스로 과신하는 사람들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잘 하는 말이 무엇입니까? “내가 내가, 내가” 입니다. 내가 누군데, 내가 과거에 어떠한 일을 했는데, 내가 얼마나 교회를 오래 다녔는데, 내가 어떤 직분을 받았는데. So what?
우리가 사는 것이 누구의 은혜입니까?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오늘 내가 건강한 몸으로 교회에 나왔지만 하나님께서 한번 건드시면 움직이지도 못하는 것이 우리 인생 아니십니까? 사울왕이 왕이 된 것 누구의 은혜였습니까?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전쟁에서 승리를 주시는 것 누구 때문이었습니까? 하나님의 도우심과 은혜였습니다. 그런데 처음에는 겸손했던 사울왕이 내 힘으로 승리한 줄 알고 자기가 잘 난줄 알고 아말렉과 싸움에서 이기고 돌아오면서 자기 이름을 내세우기 위하여 승전 돌비를 세웁니다. 하나님의 명령보다 자기의 생각에 더 좋은 대로 행동합니다. 결국 어떠한 결과를 맞이합니까? 비참한 최후를 맞이합니다.
그가 교만해 지기 시작했을 때 그 안에 악령이 들어가 그의 삶을 조종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사단은 교만한 사람의 마음을 가장 좋아합니다. 우리가 조금만 교만하면 그 틈새로 사단이 공격합니다. 그 다음은 감당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면 자기 과신과 자기에 대해 과대평가를 하기 시작하고 다른 사람이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여호수아가 여리고성을 무너트린 후에 자신만만해졌습니다. 기도하지 않고 아이 성이 작다고 3천명의 군대만 풀었습니다. 결과가 어땠습니까? 참패를 당했습니다.
사단은 교만한 사람을 공격합니다. 교만한 사람이란 “나”를 중심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이정도면 되었다고 안주하는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보다 내가 우선이 되어야 하고 다른 사람이 나를 알아주어야 하고 나를 인정해 주어야 하고 내 힘으로 내 뜻으로 내 생각대로 사는 사람입니다.
사단의 공격에서 맞서 싸우기 위해서 겸손함으로 깨어서 기도해야 합니다. 모든 일을 결정할 때, 어떠한 말을 할 때 , 어떠한 행동을 할 때, 어떤 결정을 할 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기도하며 물어야 합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내 감정대로, 내 욕심대로, 내 교만함으로 행동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약속하신 말씀과 명령하신 말씀을 굳게 붙들고, 기도함으로 깨어서 사단의 유혹과 공격을 맞서 이겨 승리하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서시기를 축원합니다.